플로깅 35번째
프리랜서로 일해온지 7년. 생계를 위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인지 집중력이나 인내심을 좀 잃었다. 집중력,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 세상 어디 있겠냐만은, 나의 주업은 집중력, 인내력이 관건일 때가 종종 있는데, 나이도 들고 해서인지 요사이 1-2년간 부쩍 힘에 부친다. 예전에는 끼니도 거르고 장시간 책상에 잘 앉아 있었는데, 요즘에는 책상 앞에서 안절부절 못할 때가 있다.
서류 한 장을 쓰는 데에도 집중을 못해 딴짓을 하다가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날이 있다. 몇 년 전 육친이 돌아가신 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인데, 좀 힘이 든다. 그래서 얼마 전 성인 ADHD 지침서 책을 읽었다. (ADHD진단을 받은 이들을 위한 지침서이긴 한데, 그렇지 않은 이들, 주변에 ADHD인 사람을 둔 이한테 도움이 되는 조언이 나온다.)
주의가 산만한 때는 시간을 정해두고 일부러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 정리 작업을 하면 좋다고 한다. 의도적으로 느긋하게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좋다. 우리말로 ADHD는 영어를 그대로 풀어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라 하는데, 이 말은 그 특성을 잘 나타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몸을 한시도 쉬지 못하고 움직이는 '다동성', 생각한 바를 바로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충동성' 이 두 가지가 ADHD의 핵심특성인데, 이런 점을 잘 포착하지 못하니까.
책에서 얻은 조언을 따라, 35번째 플로깅을 시작한다. 오늘은 딱 15분만으로 시간을 정해두고서, 동네 골목 쓰레기터로 향한다. 깊게 호흡하며 느긋한 마음가짐으로 나간다.
역시 예상과 다르지 않다. 배출요일이 아닌데도, 빗자루며 ㅎㅎ 음식물쓰레기며, 1인용텐트, 이불 , 가구부품 목재 등이 나와 있고 주변에 행인들이 버리고 간 자잘한 쓰레기들이 있다. 왜 이 쓰레기터와 이곳 길은 주워도 주워도, CCTV를 달아도, 안내판을 달아도, 별 변화가 없지?
나의 플로깅에서 블랙홀과도 같은 이 곳. 오늘은 특이한 쓰레기를 발견했다.
꽃다발 2개. 꽃다발 하나 중 안개꽃은 많이 시들었고, 나머지 하나는 덜 시든 장미꽃 다발이다. '아니 왜 길바닥에 이렇게 꽃다발을 버리고 가나.' 매우 천천히 중얼거리고 난 뒤, 정리해서 치우기 전 사진을 찰칵.
한 컷을 찍고서 앗 촛점이 흔들렸나 싶어서 한 컷을 또 찍는데......두둥..! 찰칵하는 소리에 놀란 길냥이가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나타났다.
눈을 동그랗게 뜬 길냥이. 귀염둥이 길냥이가 놀란 두 눈을 하고서 나를 보고 있다. "앗, 놀랐냐. 미안, 미안!" 나는 평소에 동물에 대해 의인화된 표현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이유: 인간중심사고에서 내가 벗어나고 싶어서임), 그렇지만 아뉘, 아뉘, 이건 너무 귀엽잖아!!!
사진 속 주인공 냥이는 내가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친 냥이인데, 저 장소에 자주 나타난다. 냥이밥(사료)이며 간식이며 잘 챙겨주시는 동네 캣맘이 계셔서 평소 배불리 밥을 먹기 때문에, 평소에 사람들의 음식물쓰레기를 뒤지거나 음식물쓰레기봉투를 뜯지 않는다. 그런데 워낙 사람들이 배출일이 아닌 날 음식물쓰레기들을 날 것 그대로(봉투에 넣지 않고) 버려대니까, 심심할 때면 한 번씩 쓰레기터에 들르는 것 같다.
우리동네 배출요일은 월수금이다. 가령 배출요일이 아닌 화요일 정오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다음날 수요일 자정무렵까지 쓰레기가 36시간 동안 쓰레기가 방치된다. 토요일 정오에 내놓으면, 쓰레기수거일이 그 다음주 월요일 자정이기 때문에 총 60시간 동안 쓰레기가 방치된다. 더욱이, 배출요일을 지키지 않는 쓰레기는 거의 대부분 배출방법을 지키지 않고 막 버리는 것들이다.
냥이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버린 피자상자 속 오이피클 국물을 햝아보기도 하고, 피자를 찍어먹는 치즈소스도 햝는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염분이 많기 때문에 고양이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으면 장에 해를 입어서 안 된다고 한다.
우리 이웃 몇몇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은 피자를 음식물쓰레기봉투에 안 버리고, 그것도 꼭 쓰레기 배출일도 아닌 요일에, 피자를 배달 받은 상자 그대로 피자만 먹고 그대로 버리는지... 중얼중얼대면서 내가 피자 쓰레기를 치우려 하는데, 냥이가 피자 치즈소스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엄청 아쉬운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소스를 한 번 더 햩고 간다. "소스 치워서 미안, 추위에 떨면서 이런 거 먹고 하니까 평균수명 2-3년밖에 안 된다며. 안 돼. 안 돼"
자비심 없고 위선적인 이웃...
자기는 쓰레기를 함부로 내다버리면서, 동네캣맘분한테 고양이한테 밥준다면서 역정을 낸 이웃을 알고 있다. 이 이웃분이 작심한 듯 재작년 여름에 버럭버럭 고함을 치며 소동을 일으킨 날이 있었다. "왜 고양이 밥을 주고 그래! 밥 주지 마!!"
재작년 여름 일요일 오후던가? 동네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봤더니, 이 이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길냥이가 발정기가 되어 소음을 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캣맘을 길에 세워놓고 꾸짖는데, 와우! 내가 듣기에는 냥이의 발정기 소음보다 본인 소음이 훨씬 더 심했다. 그러다가 이웃은 뒤죽박죽 명언을 선보이셨다. "무슨 고양이가 쥐를 잡나? 나는 그런 건 보지도 못했어!" 사람이 자기논리에 자아도취되면, 저렇게 누구나 다 아는 먹이사슬도 순간적으로 헛갈리는 법이다. ㅎㅎ
이 이웃이 난리법석을 일으키기 전, 동네캣맘들이 인삼음료를 사들고 가서, 고양이 특성을 찬찬히 이야기하면서 양해를 구하려 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길냥이가 너무 어려서 아직 TNR(중성화) 수술을 못 시켜서 죄송하다고, 곧 시킬 터이니까 조금만 참아달라고 찾아갔다는데, 애초에 말이란 게 도통 통하지 않는 분이라고 했다. TNR을 하면 발정기에 나타나는 소음을 내지 않는다.
와우,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 모아놓고 길냥이 사료그릇을 발로 차고 밟고...(이 행위는 이미 불법인 행위입니다.)그러다가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만류하던 사람들도 때리려 하고.. 자비심 없는 이 이웃은 사실 쓰레기도 매번 배출법도 배출일도 지키지 않고 내놓는다. 게다가 시도때도 없이 시끄럽게 짖는 반려견을 키우는데, 정작 주변에서 그런 걸 관대하게 참아주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 언행이 참으로 난감....(언젠가 자비심 없는 나의 이 이웃분께서 본인이 받고 있는 관대함을 돌아보실 날이 있기를 기도한다.)
여튼 이 분의 무자비한 마음 때문에 한동안 캣맘이 인적이 드문 새벽과 한밤중에 밥을 몰래 줬다. 소동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캣맘이 사비를 털어서 중성화 수술을 완료했다. (구에서 실시하는 중성화 수술에는 신청자가 많아 마감되어서 사비를 털었다고 하셨다. )
난감한 이웃분 머리 속 기저에는, 고양이한테 밥을 주면 개체수가 늘어난다고 여기는 무지가 깔려 있다. 고양이의 특성을 모르면 개체수를 줄일 수가 없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밥을 안 준다고 해서 (고양이가 늘어나는 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늘의 정리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사진만 찍고 싶은데, 아, 오늘도 또 이웃험담? 아니, 세태한탄으로 마무리 되네? ㅎㅎ
그래도 브런치에 기록을 남기는 덕분인지, 이렇게 기록을 쓰고나면 한 번씩 꼭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브런치에 들러보게 된다. 멋진 문장, 그림,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시는 구독작가님들의 빛나는 감성으로 힐링을 받는다.
꽃은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것이니까, 종량제봉투에 담고 오늘의 플로깅을 마무리. 끝!
고양이의 특성상 당장 문제를 일으킨 고양이를 눈앞에서 치운다고 하더라도 그 장소에는 금방 다른 고양이가 나타나서 채워지거든. 이런 식의 해결(안락사 등)은 같은 문제를 반복되게 할 뿐이야. 고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양이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해. 고양이는 무리를 짓는 동물이 아니고 저마다 자기의 영역을 갖고 사는 동물이어서 다른 고양이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하지. (중략)
영국의 야생동물학자인 로저 테이버는 실험지역에서 기존의 야생 고양이 군락이 제거되면, 주변에 있는 개체군들이 먹이를 찾아 비어 있는 지역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개체 수가 증가하게 된다는 것을 밝혀냈어. 이렇게 고양이가 다른 지역에서 빈 지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진공효과'라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느 지역의 고양이를 잡아서 안락사시키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또 고양이를 매번 잡아서 안락사시키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로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문제가 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해결 방법은 TNR(중성화 수술)이란다. TNR은 고양이를 포획(Trap)하여 불임 수술(Neutuer)을 한 후 다시 원래 살던 곳에 놓아주는 것(Return)을 말해.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해를 그리며 박종무 지음, 리수 출판, 2014년 59~62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