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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Feb 28. 2022

먹구름  

플로깅 36번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마음이 심란하다. 밤에 줌으로 할 일을 있어서, 비가 쏟아질 것 같지만, 해저물기 전 동네 산책 겸 플로깅에 나섰다. 잔뜩 찌푸린 하늘 그리고 먹구름...바람이 불어서 쓰레기가 이쪽저쪽으로 휘날리고 있다. 한두 개 쓰레기를 줍다가 포기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 1월 10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 10만 병력을 배치했다는 뉴스를 듣고서, 소름이 끼쳤다. 이제는 전쟁이 발발했다. 사람들이 죽고 있다. 최소 5만 명의 희생자와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 한다. 


더욱이 우크라이나에 가동중인 원전만 13기이다.(2월 23일 현재 우크라이나 전체 15기 원전 중 13기 가동중) 산소 없이 타오를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전은 지금 당장 가동을 멈춰도 냉각에 시간이 걸린다. 끔찍해서 상상도 하기 싫고 또 그러지 않아야겠지만. 만에 하나 원자로격납용기에 미사일이 부딪히면 대형참사가 될 것이다. 1986년 원전 사고가 난 이래 석관으로 덮혀 있긴 하나 방사성물질이 아직 대량으로 남아 있는 체르노빌에는 벌써 전투가 벌어졌고, 러시아가 체르노빌을 점령했다. 


심숭생숭 마음으로 동네 산책. 먹구름 낀 하늘.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는 불리하다. 러시아의 경제구조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자원에 크게 의존하므로, 이 때문에 러시아는 흑해 앞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수 없다. 참고로 우크라이나는 주기율표에 나오는 거의 모든 원소의 광물자원을 갖췄다고 하는 지역이다. (러시아의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그런 소리가 절대 아니고 현 사태의 배경 중 그저 단 한 가지를 설명하고 싶어 쓴 문장이니 혹시나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흑해 앞 크림반도, 러시아의 서쪽과 유럽 사이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우크라이나 북쪽)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근현대유럽사에서 전쟁으로 극심한 상처를 입은 지역이기도 하다. 지난 2014년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점령당했다.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 중에 우크라이나 거주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략하여,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통합됐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우크라이나계 벨라루스인 알렉시예비치 스베틀라나(Alexievich Svetlana)의 르포에 가까운 문학작품을 보면, 잠이 안 올 정도로 참혹한 비인간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이 파기되면서, 독일이 모스크바로 진격하기 위해 벨라루스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크림반도로 남하해 진격로를 우회하면서 우크라이나쪽으로 들어갔다. 이런 소련 변방 지역(비러시아)에서는 대량 주민학살과 강간이 일어났으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냉전질서하 소련으로부터 나치의 점령지였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 (나는 국내에 번역된 알렉시예비치의 책을 여러 권 갖고 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읽지 못한 책이 아직도 책장에 있다. )   


2021년에 나온 <피에 젖은 땅>(티머니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글항아리 출판, 2021년)을 보면,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동안 유럽의 킬링필드 -폴란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연안국- 등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책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자그만치 1천400만 명이다. <피에 젖은 땅>은 책소개만 봐도 참으로 끔찍스러운 내용이 담겨 있어서, 읽어야지 하면서도 여태껏 손을 대지 못했다. 그렇지만 작금의 세계를 관통하는 현대사의 진실을 담아낸 책이기 때문에 곧 읽어보려 한다. 전체주의 지도자라는 점이 공통적인 히틀러와 스탈린을 보면, 현재 러시아 푸틴의 정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참고로 히틀러와 스탈린은 서로 싸웠지만, 처음에는 전쟁의 동맹관계였다.)


지금부터는 내가 전에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유강은 옮김, 부키 출판, 2019년 한국어판 간행)를 읽고 당시 서평을 써 둔 것을 참조해서, 그 내용을 좀 풀어서 이야기하려 한다. 이 책은 좀 두껍기는 하지만, 러시아의 현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또 현대세계의 정치사회적 지형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매우 뛰어나고 구체적인 역사책이다. 유럽의 킬링필드 역사 그 근간에 놓인 정치철학을 살펴보고, 나아가 한국사회를 포함해 전세계에 ‘혐오’ 정서가 횡횡하는 현대의 세계사적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표지


소수자 혐오, 절멸로 나아가는 '가짜 민주주의' 

저자는 홀로코스트 연구자로 저명한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이다. 이 책에서 티머시는 소련 붕괴 후 안정적 독재정권 기반을 만들어온 푸틴의 대유라시아 정책을 살펴보면서, 매우 중요하게도, (푸틴이나 러시아 네오나치 '스킨헤드'로 대변되는) 현재 러시아의 지배적 극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온 정치철학의 기원을 파헤쳤다. 이 정치철학은 위에서 언급한 나치의 경우처럼, 근대 유럽에서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는 종류의 것이다. 


푸틴의 정치적 행위 근간에는, 일린의 정치철학이 있다. 일린(Ivan Ilyin, 1883~1954)은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린 볼셰비키 혁명(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즘에 맞설 사상으로 기독교 파시즘을 들고나온 창시자이자 우파 정치철학자이다. 일린의 사상은 유태인 절멸(홀로코스트)를 실행한 나치의 철학과도 이어져 있다. 실제로 일린은 히틀러가 볼셰비즘에 맞서 문명을 지킬 수호자라 보았다. 


아시다시피, 나치는 유태인만 절멸하려 한 게 아니고, 정치적 이념의 반대자인 반파시스트부터 동성애자,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들도 수용소로 데려가 학살했다. 나치의 우생학은 한 민족과 소수자집단의 살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나치는 당시 대다수 독일인의 절대적 지지에 의해 세력을 키웠다. 


"일린의 시대인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파시즘에는 세 가지 핵심적 특징이 있다. 이성과 법률보다 의지와 폭력을 찬양하고, 국민과 신비롭게 연결되는 지도자를 제안했으며,(중략). 오늘날 불평등이라는 상황에서 영원의 정치학으로 되살아난 파시즘은 공적 토론에서 정치적 허구로, 유의미한 투표에서 가짜 민주주의로, 법의 지배에서 인물 지배 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촉매로서 과두 지배자들에게 봉사한다."(<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40쪽) 


일린의 정치철학은 2010년 이후 법망에서 벗어나 막대한 부를 축적한 푸틴 및 푸틴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푸틴의 친구들, 지배세력들을 위해 봉사한다.(여기서 '봉사'는 저자 티머시의 표현입니다.) 2009년 푸틴은 일린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의미심장하게도 나치, 푸틴의 정치(극우 전체주의, 파시즘)는 대중선동적이다. 대중(다수)에게 인기가 많다. 일린이 도달한 얼토당토않은 정치철학을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심혈을 기울여 분석한 책 1장은 길지만 정독할 가치가 있다. 


저자를 통해 접한 일린의 사상을 여기서, 내가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짧고, 우리는 영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전체주의가 필요하다. 때로는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 아니, 총체적 절멸도 필요하다.” 부패한 세력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부와 권력을 설명하려고 할 때, 탐욕과 욕망때문이라고 하지 않고, 일린의 정치철학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이용한다. 의지와 폭력, 국민과 신비롭게 연결된 지도자, 공적 토론이 아닌 정치적 허구.


저자 티머시는 일린의 정치철학이 푸틴의 러시아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일린의 정치철학은 역사를,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 누구를 통해서?  그리고 푸틴,  러시아의 네오나치, 또 유럽&미국의 극우파 정치인, 나아가, 그에 대한 대중 다수의 지지를 통해서, 일린의 정치철학은 부활한다.      


"(일린이 말한) 영원의 정치학은 푸틴이나 다른 어떤 사람도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른 사상을 생각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64쪽)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푸틴은 트럼프의 당선 등 미국내 극우세력의 성장에 혁혁한 숨은 공로를 세운 바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기 전, 트럼프는 파산 직전의 사업가였는데, 구소련의 정보기관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근무하다가 구소련 붕괴 때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미국에 가서 트럼프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힘을 실어주었다는 의혹이 있다. sns등에서 퍼진 러시아 봇(프로그램 등 통한 트윗 반복), 러시아 트롤(댓글 알바) 등에도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알다시피 푸틴은 KGB출신이고, 구소련이 무너진 후 러시아의 여러 부패세력들은 천연가스 등 자원 독점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대내외 공작에 나섰다. 러시아 일부 부패세력은 트럼프 타워를 사들여서, 구소련 붕괴 후 국유재산을 민영화하는 등의 과정에서 부패로 모은 자금을 달러로 세탁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런 내용은 전부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 나오는데, 독서하며 알게 된 이런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주로 트럼프를 향한 하위계층 백인남성의 지지로 인해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고 득세하며 우파적 담론 지형이 기틀을 잡았다고 곧잘 화자되나, 러시아 푸틴의 정치행위의 뿌리가 된 일린의 정치철학 등을 바탕으로 현 정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출간(원서 2018년) 당시, 트럼프 당선에 대한 러시아 개입 부분 등의 서술로 인해 비약이 심하다느니, 음모론이냐 하는 비판을 당했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일부 언론이나 정치분석가 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없을 것이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근거없이 낙관했다가 이렇게 예상이 여지없이 깨진 것을 보고 나니,  이런 비판은 재고해봐야 할 거라 생각이 든다.    


저자 티머시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정치경제적 질서(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적 복지국가 체제)에 영향을 주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이다. 


이미 러시아나 친러시아인 구소련 연방 국가 등에서는 극악무도한 소수자 혐오와 처벌이 일어났다. 나는 전에 페미니스트들을 끌고 가서 채찍으로 때리고 재판하고 투옥한 다큐 <푸시 라이엇 : 펑크프레이어>(2013년 선댄스 출품작)를 본 적이 있다. 러시아 진압경찰이 ‘푸시 라이엇’이라는 젊은 여성 페미니스 밴드 멤버들의 등을 채찍으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체포한다. 그러고선 재판정 피고 박스(말 그대로 법정 안에 피고를 넣는 박스가 있는데, 피고는 재판정에서 거의 발언하지 못한 채 재판이 진행된다)에 넣고서, 심판한다. 또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를 통해 알려졌는데, 러시아의 꼭두각시가 된 체첸에서는 게이 남성들이 고문 끝에 숨졌다. 한편, 정적이라 여긴 정치가 나발니를 독살하려던 뉴스는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바 있다. 사흘전 뉴스를 보니,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며 시위하는 러시아인 2천여 명도 즉각 체포됐다고 한다.      


저자가 가장 심각하게 본 부분은 푸틴의 러시아가 현대 서방세계가 이루어온 민주주의의 성과를 짓밟고 있다는 점이다. 마린 르펜의 프랑스 극우정당 부각,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북유럽에서조차 전보다 약진하게 된 극우정당들. 특히 정말 심각한 것은 팽배한 반동성애, 반난민, 반이민과 같은 ‘혐오’ 정서이다. 


독일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후 이른바 '난민 범죄' 소동이 일었다. 새해맞이 축제 때, 난민이 여성을 강간한 강간범이자 테러리스트라고 독일에서 대대적인 소문이 돌았는데, 진위는 러시아발 공작 가짜뉴스였다. 농담이 아니다. 유럽 극우 정당에 러시아가 지원금을 주고 있다.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281쪽)    

 

혐오를 기반으로 한 정치의 가장 큰 해악은 한 민족이나 어떤 소수자 집단을 배제하고 점차 파국에 이르러 절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쇼아'이다. 쇼아란 절멸 또는 파국을 일컫는 히브리어이다. 인간 누군가의 존엄과 생명과 재산, 존재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그렇기때문에 아주 아주 위험한 것이다. 2018년 한국에 예멘 난민이 들어왔을 때,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 보수단체 ‘난민대책국민행동’ 등이 서울 종로에서 한국 최초로 반난민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단 23명 예멘인이 인도적 체류자(이 인도적 체류자 지위는 심지어 난민 인정 지위가 아니다)가 됐을 뿐인데, 한국에 자살테러 특공대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소수자를 지목해 혐오하고 그러다가 찾아내고 처벌한다. 이런 혐오를 활용하여 부패세력이 득세한다. 푸틴의 대유라시아정책 근간에 있는 일린의 정치철학. 이런 정치철학으로 이뤄진 폭정이 이어지면, 대중 다수는 과연 잘 살 수 있나? 이 질문에서, '잘'과 같은 부사는 빼도 무방하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나? (어제든가 푸틴이 핵무기까지 운운하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섬뜩하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는 워낙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이 각축해온 장이고 그래서 긴장 심화를 피할 수 없는 곳이긴 하지만, 이런 정치철학 그 면면을 감안해야 이번 러시아의 침공과 침공 이면에 감춰진 현대 정세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울러 푸틴의 정치행위 그 근간에 놓인 정치사상이 (한국을 비롯해 현재까지 일구어낸)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끼친 심대한 악영향도 재고해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전세계 혐오담론의 지형에서 푸틴이 끼친 영향력을 빼놓고 사고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혐오를 만들고 이용하고 부추기는 부패세력들과 이에 동조하며 나선 이들. 안타깝게도 차별금지법은 아직껏 한국에서 제정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각별히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게, 혐오세력이라 생각한다. 그저 다수의 표만 얻으면 되는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니다.    


오늘의 정리 

산책을 마치고 동네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진다. 집 근처 하수구에 떨어진 유리병 조각. 왜 하수구 구멍에 유리조각이 끼어있지? 하수구 밑바닥을 보니 큰 유리조각도 벌써 떨어져 있다. 대체 왜 유리병을 깨서는 하수구에 버리는 걸까? 유리조각이 흘러흘러 하수처리장으로 가려나? 쪼그리고 앉아 하수구 구멍에 낀 크고 작은 유리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치웠다.  

   

동네 하수구 구멍에 끼어 있는 크고작은 유리조각. 옆에 떨어진 종이용기에 모아서 사진찍고, 종이에 조심스레 싸서 치웠다.  

플로깅 시작하고 며칠 안 되어, 유리에 찔려 파상풍에 걸려 돌아가신 환경미화원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유리조각은 꼭 치우자고 굳게 결심했다. 또 작년 12월에 동네 골목에서 자전거 연습을 하는 초등학생 소녀를 보고서, 동네 유리조각은 다 내가 치워주겠다고도 결심했다. 또 어느날이던가 브런치에서 발바닥이 거칠다 못해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힌 동네 길냥이 사진들을 보고서, 동네유리조각은 내가 다 치우겠다 결심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하수구 구멍을 채운 유리조각들이 좀 힘들다. 다 깨끗히 치우긴 했지만, 유리조각들에서 스멀스멀 전해져오는 증오의 기운....인간(타자)와 세계를 향한 미움과 혐오, 지배욕과 정복욕.. 그런 것들이 기분나쁘게 전해지는 것 같다.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파국으로 치닫고 있을까..,        

   

밤에 일을 마치고, KBS ‘세계는 지금’ 프로를 유투브로 시청했다. 우크라이나 소식이 궁금했다. 


수도 키예프 전철역을 방공호로 삼고 공습을 피하고 떨고 있는 시민들. 움직이지 않는 전철 빼곡한 자리 한 구석에 앉은 어린아이가 “죽기 싫다,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하고 울고 있다. 피난 행렬차로 인해 정체된 도심 도로에서 낡은 자동차로 피난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심정을 묻지 말아달라”하며 울고 있다. 예비군에 소집된 한 아빠는 아이를 기차에 태우며 아이한테 “추우니까 외투를 벗지 말고 잘 입고 있으라”며 운다. 아이도 운다. 우크라이나 접경 국가 폴란드 기차역 작은 역사로 간신히 피신한 한 아주머니는 폴란드 구호단체가 지급한 물을 마시면서 “장애인, 노인, 어린이, 여성은 이미 너무 힘들다”하며 울고 있다. 모두가 엉엉 울고 있다. 나도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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