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플로거 Mar 11. 2022

아니, 벌써? 되살아난 불법 사채 광고 명함

플로깅 37번째

3월 9일 오후 대선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미리 챙겨둔 쓰레기봉투를 들고 담배꽁초며 꼬치막대기며 플라스틱음료수컵, 마스크 및 마스크 포장껍데기 등을 줍줍하고 플로깅한다. 쓰레기터에 널린 지저분한 쓰레기도 겸사겸사 정리정돈.


대선 날은 쓰레기 수거날이긴 한데, 일몰 전에 쓰레기가 나와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미화원이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야간작업을 하지 않고 이른 아침에 미화작업을 하는 곳은 단 2곳뿐. 내가 사는 자치구는 나머지 23개 자치구 중 하나이며, 일몰 후에 쓰레기를 내놓도록 한 규칙이 있다. )

평소보다 덜 지저분한 쓰레기터. 겸사겸사 정리. 잘 안 보이지만 바싹 마른 개똥, 단추, 못이 있구요 ㅎㅎ (정리한 사진은 맨 마지막에 있어요)

그러다가 또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주웠다. 어라? 저번에 신고한 명함과 똑같은 디자인이네? 저번 달에 신고해서 불법 사채 업체의 광고 영업 핸드폰 번호를 행정조치로 삭제했는데, 같은 디자인에 핸드폰 번호만 바꾸어 살포된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서울시 스마트 불편 신고 앱을 통해 신고했다. 이번 신고 때에는 서울시에 “핸드폰 번호 정지 조치를 하면서, 저번에 한 번 이미 신고한 업체니까 (불법 명함 디자인 인쇄업체를 찾아서라도) 단속에 부디 신경 써달라”고 부탁하는 말을 썼다.  이렇게 단속을 신신당부한 이유가 있다.

위가 전에 이미 신고를 통해 번호를 삭제한 불법 대부업체 명함, 그리고 아래가 이번에 주은 광고 명함. 아 제발 그만 좀 뿌려대라!
내 브런치에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오는 독자 유입 키워드   

나는 여태까지 플로깅하면서 브런치에 글을 20개 썼는데, 글 통계를 보면 불법 사채 광고 명함 신고 관련 글이 조회 수 300회 정도로 1위다. 2위 조회 수 글은 그 절반에 못 미치는 120회 정도이다. 많은 이들이 불법 사채 광고 명함 신고 글을 읽었다.     


또 브런치 통계에서는 나의 브런치를 찾아온 검색 유입 키워드를 볼 수 있다. 불법 사채 광고 명함 신고 글을 올리고 나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관련 검색 유입어로 들어와서 글을 읽고 간 이들이 있었다. 오늘도 있다. 그간 유입된 키워드는 ‘불법 명함 신고’, ‘불법 대부업 단속’, ‘불법사금융’, ‘불법대출 신고’, ‘불법사채 신고전화’, ‘일수 명함 신고’, ‘일수 불법 신고’, ‘대출 신고’, ‘불법대출명함신고’, ‘사채’, ‘불법 사채 광고 명함’, ‘사채 신고’, ‘사채 오토바이 신고’, ‘사채 이자’, ‘사채 법정이자’, ‘사채 법정이자율’, ‘사채 명함’, ‘경찰 사채 신고’, ‘불법 대부업체’, ‘대부업체 신고’, ‘사채대부’, ‘일수 이자 계산기’, ‘법정이자 계산하는 방법’, ‘법정이자율’ ‘길에 대출 명함 뿌리는게 불법’, ‘불법 광고물 신고’ 등이었다. (유입 키워드 그대로 적어둡니다.)     


내 브런치에 하루도 빠짐없이 유입되는 키워드. 죄다 불법 사채 관련이다.


신고 경험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 올린 날이 1월 27일인데, 이후 거의 매일 위와 같은 검색 유입단어를 본다. 불법 대부업체의 불법 사채 광고 무차별 살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가게를 하는 자영업자 지인께서 가게문을 여는 매일 아침마다 가게 앞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치우는 게 지친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시국에 힘드실 텐데, 참 안타깝다.      


플로깅을 시작하고 두 달 남짓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주은 끝에, 올 1월 말 나는 길고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신고를 했다. 신고과정의 어려움과 그것을 바로 잡은 일화를 쓰고서, 매일 불법 사채 관련 검색 유입어를 확인하면서 관련 글을 재발행했다. 가령 검색 유입 키워드를 보면, 이미 불법 사채 피해가 발생한 분들도 있는 것 같아서, 금융감독원 신고전화 등 정보를 추가했다. 참고로 1월 말에 내가 쓴 글 제목은 ‘불법 사채 (광고 명함), 신고해봤습니다.’이다.


서울시, 이렇게 소극적으로 할 겁니꽈아?

3월 9일 신고 후, 다음 날. 실망스러운 대선 결과로 아침해가 밝았다. 오전 11시경에 서울시 스마트 불편신고 답이 왔다. 엇? 웬일이지? 서울시 공정경제과에서 직접 답이 왔다. 전에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신고하면 보통 1시간 이내에 구청 담당자로부터 “행정조치로 광고 명함에 쓰인 번호를 바로 이용정지했다”고, “소중한 신고 고맙다”고 답이 왔다. 그런데, 이번에 답변 내용은 사뭇 달랐다.      


하....좀 어이가 없어서 여기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전략) 귀하의 민원내용은 ‘대부업 광고 전화번호 제보’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에 대해 검토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부업 등록 및 광고 관련 규정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여 해당 전화번호가 불법대부광고에 이용된 것이 확인될 경우 이용정지 등 행정처리토록 하겠습니다. (후략)      


아 정말 황당하네? 왜 이 답변이 어처구니가 없느냐면, 우선 등록된 대부업체라 해도 길거리에 광고물을 살포하는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길거리 여기저기에 살포된 대부업체 불법 광고 명함은 거의 다 불법 대부업체이다. 더군다나, 이런 두 가지 사항은 내가 저번에 신고과정을 개선하면서 직접 시간을 들여서, 서울시 공정경제과와 직접 통화할 때, 하나하나 차근차근 들은 사항이었다.


불법 사채업체인지 아닌지, 즉 정식 등록 업체인지 아닌지는 금감원 사이트에서 누구나 간단히 5~10초만에 확인할 수 있다. 불법 광고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 010-XXX-XXXX를 쓰고, 조회해보면 된다.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불법 업체다.

 <금융감독원, 등록대부업체 통합조회 사이트>

      

아니, 말입니다. 이렇게 조회가 쉬운데요? 책임있는 행정을 집행해야 할 서울시 공정경제과에서 이토록 간단한 조회를 하는 데 검토가 필요하다뇨!  그동안 고생하시는 걸 감안해서 호된 비판은 안 하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이번엔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아니, 이미 불법대부광고에 이용됐는데, 이용된 걸 확인하겠다뇨! 뭐 블랙 코메디 따로 없네. 허허. 껄껄.

서울시 공정경제과에서 온 3월 10일자 답변. 아래 사진 속에, 제대로 처리된 한 달 전 답변과 비교해보세요.


아니 서울시에서 이미 이 신고 전에, 제게 길거리 대출 광고 명함은 죄다 불법업체 명함이라고 확실히 가르쳐줬고요, 게다가 만에 하나 몰라서 이미 제가 신고 전에도 다 검색을 마쳤고요, 아니 서울시. 이제 와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꽈?!

한 달 전 2월 10일, 서울시 공정경제과와 직접 통화한 후 신고 및 처리 등을 개선하고서, 제대로 답변 받은 것 캡쳐사진  


1월 말에 서울시와 통화할 때는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하면서 신고과정 어려움, 구청 관련직원 직무교육 실시 등 꼭 행정절차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실제로 서울시 공정경제과 담당자분이 약속을 잘 지켜주시고 많이 애써주셔서 한 달 동안 신고를 해도 (핸드폰번호)이용정지가 매우 빨리 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갑작스레 왜 저런 답을 줬는지 이해가 안 간다.


통화하고서 한 달하고 며칠 지났을 뿐인데 그 새, 서울시에서 시장 지휘하에 불법 대부업체 단속 관련 방침을 새로 바꾼 것인지, 아니면 단지 소극행정일 따름인지, 그도 아니면 불법 사채 전주들이 이토록 활개를 치니까 힘이 들어서 그만 그저 나 같은 사람의 입만 막으면 된다고 여긴 것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불법 사채 전주 단속 등 근본적인 근절이 여의치 않고, 핸드폰 이용정지만 하는 행정조치가 사실 크나큰 문제인데. 이 정도 문제는 실상 서울시장한테 아주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내가 쓰레기 주우면서 마음이 아팠던 쓰레기는

소극행정에 대해서는 국민신문고 사이트를 통해 금방 민원을 써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만 피곤해지고 말았다. 불법 사채 전주 의혹까지 제기된 가족을 둔 당선인이 나온 마당에, 뭣 하러 내가 구태여 이런 노력까지 해야 하나. ‘애초에 공동체의식은 별로 기대한 바가 없고, 이제 그야말로 그저 각자도생의 시대인데, 내가 뭣 하러’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갑자기 비가 내리던 초저녁에 쓰레기 줍는 나를 보고서 우산을 씌워준 행인. 쓰레기를 줍고 있으면 고맙다고 대단하다고 과분한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행인. 이웃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이 떠오른다.


그러고서 나는 지금 꽤나 진지한 표정을 짓고서 이 글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내가 여태껏 쓰레기를 주우면서 마음이 아팠던 쓰레기 중 하나는 한겨울 동네 화단에 버려진 삼각김밥 껍데기였다.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이라면 금방 무슨 소리인 줄 알텐데, 아시다시피 삼각김밥을 싼 비닐껍데기를 뜯으면 바로 삼각김밥을 먹어야 한다.      

플로깅을 하는 이번 겨울, 나는 화단에 버려진 삼각김밥 비닐껍데기를 몇 번이고 주웠다. 한파에 몰아친 날에도 삼각김밥 비닐껍데기가 있었다. 아마 걸으면서 삼각김밥 비닐껍데기를 벗겨서 버리고, 걸으면서 삼각김밥을 먹었겠지. 화단 높이가 딱 사람이 걸으면서 삼각김밥 비닐껍데기를 뜯어 버리게 되는 높이이다. 플로깅을 하면서, 나는 추위에 걸으면서 시간을 쪼개서 삼각김밥으로 한끼를 때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짜로 화가 난다. 이런 상황에, 그러니까 가장 아프고 가장 몸이 약한 사람들, 또 가장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이들한테 타격을 입히는 이런, 코로나 이 전염병 시국에 아랑곳없이, 고리로 사람 등쳐 먹으며 돈놀이에 열중하며 돈줄을 대는 자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솔직히 말해, 이런 상황을 방치하다시피 하다가, 대선 끝나고 고작 하루만에, 저렇게 방침을 뒤집은 듯이 보이는 서울시 행정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단지 의혹제기, 질타일 뿐입니다. 서울시, 저 고소하지 마세요. 덕분에 이미 충분히 피곤합니다. 적어도 저는 불법 사채 전주-사인 혹은 법인-보다는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쓰며 내 삶을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TMI 사족... 집요하다고요.. ㅎㅎ

저는 지금까지 주은 모든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아직 다 갖고 있습니다. 엑셀에 불법 사채업체 휴대폰 영업 번호를 수집, 집계하고 이에 해당하는 서울시 처리 상황도 다 기록해두었습니다. 주변에서 가끔 저를 보고 혀를 찰 때가 있는데, 제가 봐도 집요한 면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ㅎㅎ


저는 생업에 바빠야 하는 프리랜서이고요,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도 쓰레기 줍기 환경활동을 위해서이지만, 이렇게 서울시에서 불법 사채업체 상황을 계속 방치한다면, 손 놓고 구경할 생각은 1도 없습니다. 추호도 없어서요. 계속 아무런 변화가 없고 이런 상황을 되풀이한다면, 공익 목적을 위해 엑셀 데이터를 구글 드라이브 등을 통해 공개하고 대대적으로 알리고, 제보하고, 불법 사채업체 정보공유 데이터를 만들겠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플로거로서, 오직 쓰레기 줍기에만 흥미가 있으며, 쓰레기 줍기에 몰두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서울시든, 새로운 대통령의 정부든 간에 늦기 전에, 누군가 피해를 보고, 그걸로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이나 부모, 가족 등 주변에서도 고통을 받고 그러기 전에, 제발 제대로 불법 대부업체 광고 단속, 영업 단속에 진심으로 나서면 좋겠습니다.

쓰레기터 정리정돈 완료. .

아뭏든 대선 투표 후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터 정리정돈 완료했습니다. 사진 맨 앞부분에 쓰레기 꾸러미가 있는데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요. 제가 주은 쓰레기양이, 종량제 봉투를 다 못 채워놓을 경우에, 제가 주워서 쓰레기를 채워둔 종량제 봉투만 쏙 집어들고 가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기껏 주운 쓰레기는 바닥에 팽개쳐두고 ㅎㅎ 가버린 사람들이 여태까지 한 세 번 쯤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크게 화가 나지 않습니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냥 다시 주우면 되니까요.


그리고 오죽하면 이미 쓰레기를 담아둔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집어갈까 이해가 됩니다. 한겨울 화단에 버려진 삼각김밥 비닐껍데기처럼, 그냥 화가 나지 않고 그 사정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고 진심으로 마음으로부터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서요. 결국 우위에 선 자도 함께 평온히, 안전히 살아갈 수 없게 될, 그런 사회.


그러니까 좀이나마 힘을 보태서 고쳐나가고 싶습니다. 변화되는 그날까지. 어차피 역사는 무수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내가 그 무수한 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면 족한 것 같습니다. 좀 더 나은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져온 것 같고요. 우리는 미래의 우리가 바라는 우리로부터,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힘을 냅시다.     


작가의 이전글 먹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