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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Mar 14. 2022

K.T.를 떠나보내며

플로깅 38, 39, 40, 41, 42번째 

바다를 건너 부고가 전해졌다. 나의 마음속 선생님(이니셜K.T.)께서 돌아가셨다. 암이 전이되어 앓으시다가 2022년 2월 27일 영면에 들어가셨다. 암에 걸린 줄도 전이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그간 계시던 병원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하여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을 옮기는 등 고생하셨다고 한다.      


내가 “요즘 플로깅하며 동네쓰레기를 줍고 있다”고 알렸더라면, K.T.가 어떻게 반응했을까 상상해본다. 틀림없이 눈을 반짝이며 “오~ 재밌는 일 생겼다! 주은 쓰레기 중에 무슨 쓰레기가 제일 재밌어요? 뭐가 제일 실망스러웠나요?”라 물어보셨겠지. 필경 내가 답을 할 때마다, 크고 작은 웃음을 터뜨리며 “하하.  쓰레기 주운 이야기 정말 웃겨. 웃기지 않아?”라고 떠들썩하셨을 것이다. K.T의 다정한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간 주은 쓰레기 중에 유머러스한 것을 정리, 기록해본다.      

웃픈(웃기고도 서글픈) 나의 사랑스런 쓰레기들?! 이야기를 지금 내 마음 속에 있는 K.T.께 보냅니다.^^     



K.T.! 우리 동네 골목이 정말 깨끗한 날이 얼마 안 되는데요. 저번 겨울 어느 날 뜬금없이 길바닥에 깨끗한 별모양 쓰레기가 있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까 퍼즐 조각이었어요. 누군가 퍼즐조각을 종이류로 분류해 내놓다가 들고 가는 길에 떨어뜨린 것 같았어요. 퍼즐을 주워서 치우기 전에, 골목 구석으로 갖고 와서 길 위에서 맞춰 보았아요. 크크. 제가 이제 곧 반백살인데, 심심풀이로 할 만하더라고요. 그런데 밤이라서 어두워 그런지 눈이 침침해져서 그런지 퍼즐을 잘 못 맞췄어요.      

아니 길바닥에 왠 별이 떴다구? 퍼즐 조각들.


퍼즐조각 옆에는 아이가 쓴 듯 한 독후감 노트 종이 조각이 떨어져 있었어요. 초등학생이 쓴 듯한 독후감인데 이것도 치우기 전에 제가 한 번 훝어봤죠. 조각이 나 있어서 온전한 문장으로 읽히진 않았지만, 독후감 첫 문장이 “이 책의 주인공은 6살이다.”였어요. 아이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아이란 정체성이 가장 크게 와 닿았나 보구나 했죠. 아이가 역대급, 남주 이런 신조어를 쓰는 게 좀 신기했고, 마지막 부분에 “어떻게 그걸 버티지?”라고 쓴 문장도 왠지 눈에 들어왔어요. 이 독후감 종이 조각을 주은 날이 코로나 사망자가 많이 나온 날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삶을 버티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아이가 쓴 독후감 노트 종이 조각. 퍼즐 조각과 함께 있었다. 


그런가하면 어느 날에 도로가에서 진짜 빵 터진 날이 있었어요. 진짜로 큰 호박이 쓰레기봉투 옆에 있었어요. 제가 갖고나간 봉투가 종량제 쓰레기 봉투는 10리터, 음식물쓰레기 봉투는 3리터 짜리로 작은 거라서 호박을 봉투에 담지 못했고, 웃기만 하다 왔어요.      


두둥~. 도로가에 큼지막한 호박.ㅎㅎ 치우지 못하고 웃기만 했어요. 


이 큼지막한 호박처럼, 아무 맥락 없이 툭 튀어나오는 쓰레기에 웃음날 때가 종종 있긴 해요.  물론 청소하시는 미화원분들이 무지 힘드실 텐데 하고서 좀 한숨도 나죠. 맑게 갠 날 길바닥에 덩그러니 버려진 보라색 우산꼭지를 보고서도 좀 낄낄대다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분류해서 버렸어요.


맥락 없는 보라색 우산꼭지 쓰레기

외국에는 보니까 쓰레기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들도 정말이지 많고, 요새는 국내에서도 쓰레기로 작품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꽤 있던데. 제가 아티스트라면 보라색 우산꼭지가 좋은 소재일 것 같은데 아쉽게도 저는 아티스트가 아니라서. 뭘 만들지는 못했어요. 네에, 뭐요? 아 해보라고요? 아티스트 도전? 아 하하하. 


K.T. 이제 서울은 춘삼월이예요. 지난겨울 마지막 눈이 내리고서 다음날, 겨울철 대표 과일 귤 쓰레기를 주웠어요. 곰팡이가 슨 귤이었어요. 누가 배출일이 아닌 날에 귤이 담긴 상자 그대로, 골목 쓰레기터에 썩은 귤을 내놓았어요. 그 날 플로깅을 시작할 때 귤상자 한 개를 힐끗 봤거든요. 귤을 다 먹고 귤상자만 폐지로 버린 줄 알았거든요. 근데 동네 휴지를 다 줍고 돌아와 보니까, 어느새 상자가 없어지고 썩은 귤 11개가 나뒹굴고 있었어요. 그런 귤 옆에 작은 쓰레기가 던져져 있었어요. 귤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로 줍줍하고 작은 쓰레기는 쓰레기 봉투에 줍줍했죠. 근데 이런 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K.T.의 웃음소리가 그리워요.  

      

곰팡이 슨 귤. 귤상자째로 버려져 있다가, 썩은 귤만 덩그라니 남은... 

플로깅 하고 나서 밤하늘과 달이 더 좋아졌어요. 요샌 맨날 컴앞에 앉아 있으려니까 눈알이 빠질 것 같고 머리에 쥐가 날 때가 있는데, 밤하늘과 달에 더욱 관심이 생겼어요. 올 정월대보름에는 달 뜨는 시각을 체크해서 미리 알아뒀다가 근사한 달을 보면서 쓰레기를 몇 개 줍고서 동네 가게에 오곡밥 사러 갔어요. 한국에서는 정월대보름에 찹쌀, 팥, 수수, 차조, 검은콩을 넣어서 밥을 지어 먹거든요. K.T.도 생전에 만약 한 번 드셔봤으면 좋아하셨을려나요?     


2022년 정월대보름 달. 멋진 밤.


그러고나서 며칠 뒤. 누가 서예연습을 한 신문지 몇 장을 그냥 종이류로 버린 것 같았는데요. 그 신문지가 쓰레기 수거가 되지 않고(배출날이 아닌 날에 그냥 내다 놓은 거라서 수거가 되지 않은 것), 가벼워서 그런지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먹 내음이 나는지 아니면 신문지가 바스락거리니까 신기한지, 동네 길냥이가 쓰레기 줍는 제 옆에 왔다갔다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특이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라서 ㅎㅎ  제 그림자를 얼른 풍경에 집어 넣고 사진을 얼른 찍었죠. 찰칵 소리가 나면 길냥이가 놀라는 것 같아서 요즘에는 촬영소리 안나는 휴대폰앱을 깔아두고 사진을 찍거든요.  그리고서 쓰레기 줍줍!  어때요?  K.T.! 아래 풍경 꽤 괜찮죠?


나의 아름다운 플로깅 풍경 속으로, 얼른 내 그림자를 집어 넣는다.


....K.T! 전처럼 커피 한잔 가볍게 마시며 저런 휴대폰 사진 보이며 웃을 그런 오후가 또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오늘의 정리 

K.T.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K.T.는 주변에 당신 자신이 갖고있는 지식이나 갈고닦은 노하우, 삶의 지혜를 쉽고 명료하게 기꺼이 나눠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하며 지내는지 즐겁게 잘 지내는지 묻고 궁금해하셨다. (그렇다고 뭐 사생활을 꼬치꼬치 묻거나 쓸데없는 호기심을 발휘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오늘 단 하루 평온하게 잘 지냈는지 그런 거만 물어보셨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하찮고 볼품없어 보이는 일(활동)을 해도 자랑스러워 해주시면서 재밌어 해주시는 그런 분이었다. 진심으로. 물론 진짜 크고 의미 있는 성취(성과)를 이루면 더욱 기뻐해 주셨다. K.T.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나도 이렇게 타인을 만나고 싶다고 조금은 닮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K.T.는 위기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는데, 빈민가로 들어온 카톨릭 신부님(이니셜R.A.)의 가르침에 감화된 후 위기청소년 및 위기청소년 시절을 겪고서 삶을 헤매는 어른들을 돕는 일을 하시면서 평생을 보내셨다. 늘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K.T.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변에서 인권운동가라고 칭찬하면 “아니라고, 난 스스로 나를 구하기 위해 당사자 운동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답하셨다.      


그러고서는 항상 자신의 품에 넣어두고 다니는 신부님(R.A.)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 신부님과 자신의 일화를 미주알고주알 들려주었다. 신부님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으로 일생을 수도자로 살려 하시다가, 68혁명을 전후로 하여 가난한 지역의 빈민운동가이자 선교사로 살기로  결심하시고 평생을 마친 분이다. 내가 K.T.를 알게 됐을 때 이미 신부님(R.A.)은 돌아가신 뒤였는데도, K.T.는 신부님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어느 날엔가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부님 이야기가 길어져서 난 하품도 여러 번 하면서 K.T.한테 눈치도 주고 그랬다. 하하.       


바다 건너 공부하던 가난하며 외로운 나의 젊은 시절, K.T.와 그 파트너는 불쑥 내게 전화했다. “배 안 고프냐”고 “우리 지금 너네 집 근처 한국식당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고 무척 반가운 연락을 주시곤 했다. 얻어먹는 내가 부담 느끼지 않도록 그저 지나는 길이라고 하며 맛있는 걸 사주셨다. 그 시절, 새파랗게 젊고 성미가 급했던 나는, K.T.가 당시 그토록 그리워하던 신부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드리지 못한 게 좀 후회가 된다.  K.T.는 자신과 만나는 ‘위기의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인권에 대해, 운동에 대해, 사람(자신과 타인)을 구하는 일에 대해 설교(설파)한 적이 없다. 그저 자기 자신과 주변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인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단 하루를 잘 보내면, 단 하루를 잘 버티면 된다고 오늘 하루JUST FOR TODAY’를 강조했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장기화 시국이라, K.T.의 장례식은 코로나 위기가 종식된 후로 미뤄졌다. 애통한 마음으로 나는 이렇게 K.T.를 떠나보낸다.      


K.T. 잘 가요.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코로나가 진정되면 진짜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줄로만 알았어요! 먼 길 떠나시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지 못해 마음이 아프지만, 당신의 지혜와 발자취를 기억할께요. 이제 편히 쉬세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밤하늘.  K.T.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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