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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Apr 16. 2022

쓰레기아트 프로젝트 – 세계에서 2

플로깅 47번째_ 이어서 쓰는 글 

('쓰레기아트 프로젝트 - 세계에서 1'에 이어서 씁니다.) 


내가 수은중독 미나마타병의 실상을 처음 접한 것은 이시무레 미치코의 <슬픈 미나마타>를 통해서였다. 이 책 초반부에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수은에 중독되어 앓고 있는 미나마타병 환자 어부 카마 츠루마츠를 처음 만난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느낌이었다.      


“이날은 특히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카마 츠루마츠 씨의 슬픈 산양 같은, 물고기 같은 눈동자와 바닷물에 떠밀려온 나무토막 같은 자태와 결코 왕생할 수 없는 혼백은, 그날부로 송두리째 내 안으로 옮겨 왔다.”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슬픈 미나마타》 달팽이, 2007년. 125쪽.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는 미나마타병에 걸려 언어장애 증상악화로 말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마치 직접 들은 듯 말할 수 있는 위대한 필력을 갖췄다. 이런 언어를 나는 도저히 쓸 재주가 없다. 그렇지만 이시무레가 미나마타병 환자를 만났을 때를 묘사한 위 느낌과 비슷하게 느낀 적은 살면서 몇 번은 있는 것 같다.      




열 살 정도였으려나 1980년대 중반,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 아픈 동생을 데리고 시내에 있는 병원에 바삐 가던 길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헤맸다. 중심부에서 떨어진 곳에 정육점 불빛같이 빨간 빛을 내는 전면 투명유리문인 가게가 있었다. 유리문 안에 여자들이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고기처럼. 그 전엔 공주만 드레스를 입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아닌 대접을 받고 사고 팔리는 사람들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갑자기 진짜로 명치 끝이 아팠다. 그 시절 많은 가난한 여성들이 악덕포주들의 선불금의 노예가 되어, 수도 없이 연탄불을 피워 자살도 많이 했다는 것은 나중에 크고 나서야 알았다.   

    

열 아홉살 때 잊을 수 없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피해자들의 집에 찾아가 사고 후 생활 만족도, 불편사항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는 일이었다. 자동차보험회사에서 보험금을 지급받은 이들을 만나 조사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후유증이 경미한 사람도 있었지만, 집안에서 벽에 붙인 보조손잡이를 짚고 겨우 손으로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척추장애를 입은 아저씨도 있었다. 그렇게 장애가 있는 분은 그때 처음 만났다. 아저씨는 오토바이 사고가 크게 났다고 했다. 내게 “어린 학생이 기특하게 일을 한다”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기다시피 하셔서 녹차를 끓여 내어주셨다. 부엌 바닥 한켠에 앉아서 쓰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초봄 쌀쌀한 날씨에 썰렁한 집안에서 마시는 녹차 맛이 쓰고 슬펐다. 나도 여섯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적이 있어서였을까.     




불완전하고 비참한 세계에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왜 나는 죽거나 크게 다치거나 사고 팔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누구는 죽거나 다치거나 사고 팔리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왜 그 누구는 내가 아니었을까. 얼마든지 나의 삶이었을지도 모를 타인의 삶들(죽음들)을 목격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고 난 후에도, 아니 마음의 상처를 날마다 여전히 받으면서도, 살아가면서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의미를 찾을 것인가.      


“나의 관점에서 덧붙이자면 약함의 자각이라는 것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이나 고통을 단순히 타인의 일로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또 신체를 갖춘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양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들 인간은 신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외부나 타자의 작용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파토스(pathos, 수동/ 고통당함)적인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조건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중략)...약함을 경험한 강인함 혹은 약함을 자각한 강인함이야말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카무라 유지로, 우에노 치즈코 지음 <인간을 넘어서> 당대, 2004년. 37-38쪽.     

 

마음이 부서지고 흩어졌다가 다시 되살아난다는 것. 말할 수 없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말을 잃어버리게 하는 너무나도 비통하고 또 비통해서 말조차 삼켜버리게 되는 이 세계에서,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나의 마음이 또 여지없이 부서지기를, 그리고 새살로 또 되살아나기를 바란다. 유한한 내 삶속에서 슬픔과 고통에 대해 더 알기를, 내 마음으로부터 진정으로 더 알기를 원하게 되기를.  

    

못다한 이야기..

2022년 4월 16일. 오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부터 8년이다. 3주기 때까지는 추모식도 매번 나도 갔고, 친구가 가자고 해서 2016년 봄에는 화랑공원에도 가 봤다. 구하지 않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의자를 던져 창을 깨려 하던 분의 모습. TV를 통해 되풀이된 배가 가라앉는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간 추모식 때는 매번 하늘에서 비가 내렸던 것을 기억한다.  

    

얼마 전 세월호 유족이 쓴 책을 읽으며 절규하는 마음을 또 알게 됐다. 한 유족은 사람들이 에어포켓이 있었으면 살지 않았을까 할 때마다, 만약 에어포켓이 있었다면 거기서 구조되기만 기다리다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겠느냐고 차라리 없었기를 바란다고 했다.     


2016년 어느 봄날 안산에 함께 가서 추모했던 나의 소중한 친구는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인해 몹시 앓다가 그해 가을에 하늘로 떠났다. 마지막으로 본 친구의 모습은 몹시 말라서 너무도 애처로웠다. 친구가 생전에 내게 건네준 수십 권의 책. 그 책들에 친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연필로 그은 밑줄들. 연필로 쳤다가 지운 밑줄들. 아주 아주 이따금 메모. 길게 사귄 친구는 아니지만 마음이 잘 통하던 친구. 그리움과 애통함. 애통함과 그리움.    


오늘 세월호 참사 8주기 기억식 뉴스를 봤다. 세월호 생존학생이자 현재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장애진 씨가 친구들한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여러 사람을 접할 때 단 한 번도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더라. 표현은 안 했지만 죽은 환자의 보호자가 우는 모습을 볼 때 부모님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 많이 힘들더라. 얼마나 슬플까. 부모님들 많이 지치고 힘들 거야. 꿈에 나와서 한 번 껴안아 주고 가. 고생하셨다고. 그리고 내 꿈에도 나와서 잘 하고 있다고 인사 한 번 해주고 가. 많이 보고 싶어.”  장애진 씨의 편지 낭독 중에서 


세월호 참사 후 내걸린 시민들의 리본과 메세지(2014년 4월 교대역에서 촬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쓰다보니 길어지고 말아서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쓰레기아트 프로젝트 글을 마칩니다. (위 리본과 메세지 사진은 이 글 게재 후 한 달여가 지나서 기존 풍경사진을 교체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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