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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Apr 21. 2022

맨드라미 힘내!

플로깅 48번째 

옥잠화 화단에 널브러져 있는 음식물쓰레기. 딸기, 파, 무와 가지 꼭지……. 사진에는 안 찍혔는데 작은 고구마도 대여섯 개가 있다. 이렇게 흙에 우르르 쏟아 놓아봤자 썩지 않는데. 설마 거름으로 쓰라고 놓고 간 것인가?!?!  


동네 옥잠화 화단에 뿌려진 음식물쓰레기


작년 늦가을 어느 날인가에는 누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옥잠화 화분이 거꾸로 뒤집혀서 바닥에 흙이 와르르 쏟아져 있었다. 그래서 흙과 옥잠화를 화분에 도로 담아놓았는데, 결국 옥잠화가 죽고 말았다. 지난 겨울에 이 옥잠화 화단 흙에 자꾸 행인들이 오가며 마스크니, 꼬치꽂이니, 과자 부스러기니, 강아지 똥이니 쓰레기를 그냥 놓아두고 갔다. 틈틈이 잘 치우긴 했다. 혹시나 만에 하나, 올봄에 옥잠화 싹이 나려나 싶어서. 하지만 싹은 나지 않았다. 결국 죽은 옥잠화를 이제 그만 포기하자 마음먹고,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치운 이튿날.      


지난해 늦가을 누가 엎어버린 옥잠화 화단. 뒤집어서  흙이랑 담아 놓느라 고생+속에 열불^^


죽은 옥잠화 치운지 딱 하루 지났을 뿐인데,  깨끗이 치운 화단에 썩은 딸기, 파, 무와 가지 꼭지, 작은 고구마가 놓여 있던 것이다. 밤에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담아서 치웠다.      




예전에 환경의식이 높은 대표님들을 둔 회사 두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 곳은 남자 사장님, 또 한 곳은 여자 사장님. 남자 사장님은 종이컵을 쓰지 말자고 하셔서, 그 회사에서는 머그컵을 썼다. 좋은 취지였는데, 문제는 아침마다 출근하면 사장님 커피를 비롯해서 높은 상사들의 커피를 타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의 마신 컵들을 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거래처나 손님들이 올 때도 머그컵에 커피를 탔다.       


물론 회사 직원이니까 얼마든지 커피도 타고 컵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컵을 닦는 사람은 언제나 여자 직원들(직급 상관없음), 그리고 남자 말단 직원 몇 명이었다. 나는 수가 틀리면 좀 밉상으로 구는 좀 대책 없이 떳떳하고 당당한 면이 있어서, 사장님한테 대뜸 “커피 못 타겠고 머그 못 닦겠는데요? 그냥 종이컵 써요!”라고 했다가, 사장님 이하 다른 직원들한테까지 미움을 받았다. (아,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하던 날들이여!) 어쨌든 사장님은 거래처 손님들한테 노상 “우리는 종이컵을 쓰지 않아요”하고 자랑하셨다. 나는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사장님이 컵을 닦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여자 사장님이 계신 회사는 소규모였지만 환경의식이 그전 회사보다 더 높은 곳이었다. 사장님은 회사에서 월급을 많이 주지 못하는 만큼 점심은 건강식단으로 먹자고 고마운 제안을 했다. 그래서 사장님이 나물 같은 반찬을 주로 사 오시면 회사 직원들이 작은 회의실에 모여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에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회사의 좁은 취사실 싱크대에서 설거지도 하고 잔반은 회사 앞 텃밭에 묻었다. 역시 정말 좋은 취지였지만, 점심시간은 1시간이고 그 시간이 바빴다. 직원들만 설거지를 하며 직원들만 호미를 들고서 잔반을 텃밭에 묻었다. 내가 근무하던 동안에 사장님이 설거지를 하고 잔반을 같이 묻은 날은 정말 딱 한 번 있었다. (제안 첫날이든가 둘째날) 


사장님은 두루 선망을 받는 분이셨지만 일이 좀 안 풀리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짜증 내다가 갑자기 당신 머릿속에 떠오른 폭언을 혼잣말로 내뱉곤 하셨다. (큰 소리는 아니고 귀밝은 직원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스타트업 성격의 사업체를 이끄느라 어느새 사람이 목적 아닌 수단으로 변모한 리더의 비애 ㅜ)      


채식을 한다는 사장님 친구인 회사 후원자가 자주 사무실에 놀러 오셨는데, 사장님 친구분은 왜 회사에 채식 간식이 없느냐고 푸념하시곤 했다. 회사 간식비가 얼마 책정되지 않아서 나를 포함해 직원들이 사장님 친구가 먹을 고구마를 찌곤 했다.  채식은 건강과 지구를 위해 정말 좋고 값진 일이며 가치 있는 시도이다. 나도 누구보다 채식을 열심히 하던 때가 있고 지금은 채식을 안 해도 가급적 채식을 열심히 하려 한다. 


그치만 그 시절 일하다가 사장님 친구분이 오셔서 고구마를 찌기 위해 비좁은 싱크 옆에 놓은 가스레인지로 부리나케 (거의 반자동 로보트처럼^^) 달려갈 때면, '대관절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나?'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는 친구분이 "내가 고구마만 좋아하는 줄 아느냐" 하셨는데 내가 뷁, 뾃, 뾆, 쀏, 쀒(당시 유행어)스러운 표정을 가만히 짓고만 있고 아무런 대꾸를 안 하니까, 나중에 사장님이 나를 따로 보자고 불렀다. (ㅋㅋ 정신건강을 위해 이후 일은 생략합니다)

    

십 년도 더 전에 겪은 일들이다. 동네 화단 음식물쓰레기를 치우고 나니, 문득 오래전 이 두 가지 일이 떠올랐다. 나의 잘못은 곧잘 잊어버리는데, 이런 기억은 왜 이리 생생한지 모르겠네?^^ 이래서 조직생활을 못 하나 싶다? 그래도 지금은 저런 고달픈 추억으로 이렇게 웃을 수 있어 다행이다. (여기에 줄줄이 이러고 쓰고 있으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환경사랑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 코로나 이후로 환경문제를 정말 절박하게 느끼고 있긴 하지만, 나는 옛 사장님 두 분이 하는 방식의 환경사랑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생각한다. 비겁한 사랑은 감당이 안 된다.      


생활용품 가게에서 맨드라미 씨를 500원에 팔길래 사 와서 밤에 화단에 심었다. 표식도 만들어 다음날 낮에 꽂아 두었다. 싹을 틔울 때까지 며칠간만이라도 저 화단에 쓰레기를 안 버리면 좋을텐데 잘 되면 좋겠다. 맨드라미 힘내!      



오늘의 정리 

요새는 토양 정화 생물로 지렁이 말고도, 동애등에 유충으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신기술이 있나 보다. ㄷ ㅇ ㄷ ㅇ 초성 이쁘다.  동애등에. Black Soldier Fly. 학명은 Hermetia illucens. 14일을 유충으로 사는데, 유충 한 마리가 2~3g 유기성 폐기물을 소화한다. 음식물 쓰레기 10kg에 애벌레 5천마리를 투입하면 3~5일 이내에 80% 이상을 소화해 퇴비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지렁이는 기름지거나 염분이 많은 음식물쓰레기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데, 동애등에는 염분이 많은 쓰레기를 잘 소화한다. (<장인의 교육 – 삶의 기술 여섯 번째 > 크리킨디센터 전환교육연구소, 2019년. 79쪽)   


동애등에 유충.  입에 왠지 마구마구 착착 달라붙는 이름 동애등에


<장인의 교육>은 교육공동체 벗에서 '삶의 기술 시리즈'로 내놓은 잡지인데,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쓰신 글이 실려 있기도 해서 읽어보게 됐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나의 은사님이 학생들과 수업 때 시를 읽고 나누는 것에 관해 쓴 글이 정말 무지하게 감동적이다. 그리고 자원순환으로 거름을 개발 중인 생태순환운동가의 글을 읽고 ‘동애등에 애벌레 한 마리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하는구나’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또 좋았다. (동애등에로 퇴비를 만들고 있으면 더럽다는 편견이 있는 등) 여건상 아직 어려움이 많은 생태기술 같기는 한데, 한 생명 한 생명이 저마다 품고 있는 자신의 우주로 생태계를 일구고 이룬다는 점이 다시금 신기하고 놀랍다.      

교육공동체 벗 삶의 기술 시리즈 <장인의 교육>


-덧붙임 

아 참, 저번에 브런치에서 <재개발과 쓰레기> 제목으로 쓴 글에서 나는 재개발을 위해 허문 집이나 상가건물의 건설폐기물들이 어디로 가나 궁금했는데,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다. 건설폐기물은 도로공사의 기층재 아스팔트로 깔리기도 한다. 관련 책 한 권을 알게 됐다. (최병성 저, <일급경고> 이상북스, 2020년. 다음달에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요새 일이 바빠져서 시간이 나려나 모르겠다. 안 되면 다다음달로.) 환경서적 중에서도 건설폐기물 관련한 책은 드문 것 같다. 플라스틱 쓰레기 관련 책 권수만큼 건설쓰레기도 쉽고 재미난 책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겸사겸사 배우는 게 많고 스스로 실천하니 즐거운 나의 봄날, 나의 플로깅 48번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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