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깅 49, 50번째
외부에서 종일 알바가 있어서 아침에 지하철역으로 바삐 향하는 길. 엇. 작은 새가 한 마리 죽어 있다. 참새? 서둘러 가서 일하다가 깜박하고 동물사체 수거신고를 하지 못 했다. 저녁때는 꼭 해야지 했는데, 일이 늘어지는 바람에 또 깜빡.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체가 그대로 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골목인데.
지난주에 심은 맨드라미는 이제 약간 싹을 틔우기 시작한 듯 한데, 이 생명은 여기서 이렇게 생을 마쳤다.
주차하려던 차량에 치였나. 골목이 좁은 편인데 주차장이 없는 빌라에서 길에 차를 대기도 한다. 불이 나면 과연 소방차가 들어올 수 있으려나 싶을 때도 있다.
오늘 이야기에는 새 사체를 주운 이야기와 죽음 등에 관한 단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유머가 섞여 있긴 한 것 같은데^^ 소재가 힘드신 분들은 읽지 말아 주세요.
어젯밤에 집앞에서 음료수병, 마스크 등 몇몇 쓰레기를 간단히 줍고 있는데, 앞집 사는 아저씨가 강아지를 데리고 나왔다. 아저씨는 연초를 하는 동안 강아지가 변을 보게 하고 싶었는지 강아지 목줄을 안 채우고 나왔다. 전봇대 밑에 한 차례 똥을 눈 강아지. 기분이 좋은지 이리저리 골목을 뛰어다닌다. 후후. 털을 동그랗게 깎은 귀여운 푸들.
아저씨는 반려견 똥을 얼른 치운 뒤, 잠시 스마트폰에 한눈을 팔았다. 내가 잠깐 문구용 칼날을 조심스레 줍고 있는 사이에, 앗. 골목으로 쓱 들어온 자동차에 강아지가 치일 뻔했다. 다행히 강아지가 잽싸게 피하긴 했는데 놀랐는지 또 똥을 눈 것 같다. 불행히도 아저씨는 강아지가 또 똥을 눈 것을 모르는 채,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속으로 플로깅 49번째 끝 하고! 휘파람 불며 들어오는데, 강아지가 차를 피한 자리서 똥을 발견하게 됐다. 오늘도 축 똥 당첨~^^. 쓰레기 주을 게 별로 많지 않아서 줍는 김에 강아지가 막 싸고 간 뜨끈한 두 번째 똥을 치웠다. 하이브리드카인가. 요새는 동네에 소음 없이 다니는 차량이 많다. 오늘 주검이 된 이 참새도 하이브리드카에 치였나 싶다.
그냥 내가
그나저나 새 사체를 어쩐다? 참새 거주반경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텃새니까 어쩌면 아침에 우리집 창밖에서 재잘재잘 내 단잠을 방해하던^^ 아니 지저귀며 나를 깨워주던 새였으려나. 참새는 빌라 주차장과 길 경계 즈음에 몸이 횡으로 두 동강이 나 있다. 참새 수명은 3~4년이라는데 제 수명은 마쳤으려나.
내 빌라 앞서 죽은 건 아니지만, 처참한 주검 모습이라서 빌라 사이 적당한 화단에 가서 땅에 묻어주고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 하지만 일 때문에 몹시 피곤하기도 하고 야생동물 주검을 길게 가까이하면 위생상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금방 포기했다. 그렇다고 시간이 밤 11시 가까이 되어서 서울시에 신고를 하자니 그것도 좀 미안하다. 내일 오전에 신고해도 되긴 할 텐데 밤새 배달 오토바이나 차량도 오가고, 아침에 출근 차량이 나오기도 하니까, 그렇지 않아도 동강 난 참새 사체가 또다시 바퀴에 깔릴 것 같다.
더욱이 새가 죽은 자리가 사유지와 길 경계라 애매하다. 전에 길가에 있는 쥐 사체, 비둘기 사체를 치워달라고 신고하면서 알게 됐는데, 청소행정은 사유지가 아닌 길에 있는 동물사체만 치울 수 있다고 한다.
그냥 내가 치우자. ‘내손안의분리배출’ 앱에서 찾아보니 종량제 봉투에 넣으면 된다고 하여, 집에 들어가서 새를 감싸줄 종이포장재와 함께 들고 나왔다. 목장갑을 끼고 그 위에 위생장갑도 덧끼고서, 크게 심호흡 한 번 하고, 작은 새의 몸체 한 조각을 손에 쥐었다. 아. 아스팔트에 피가 엉겨 붙어서 몸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미안하다. 좀 잡아당길께.
주검을 볼 때는 덤덤했는데, 막상 피와 체액으로 인해 길바닥에 말라붙은 사체 두 조각을 길바닥에서 떼어내면서 보니 좀 애처롭다. 조심스레 살살 잡아당기기를 반복한다. 물컹. 그럴 리가 없는데 왠지 사체가 아직 뜨끈하게 느껴졌다. 바닥에서 뗀 참새 사체를 종이봉투에 넣고 비닐로 한 번 더 싸고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잠깐 명복을 빌어주고, 피자국이 묻은 자리를 물로 청소. 맨드라미에 물 줄 겸 해서 페트병에 담아둔 수돗물을 갖고 나왔는데 요긴하게 썼다. 고이 흙에 묻어주지 못하고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좀 미안하다.
오랫동안 나와 시간을 함께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벌써 2년이 지났다.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 요양원 등을 전전한 기간 2년 반 기간 그러니까 할머니가 없는 나의 삶을 마음속에 미리 준비해둔 그런 시간을 포함하면 5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내 마음은 아직 겨울이다. 가끔 할머니를 화장하던 날을 생각한다. 할머니가 생전에 본인한테 익숙한 방식인 매장을 해달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진 못했다. 넓지 않은 국토에 묘지가 부족하니 화장을 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할머니는 원래 고령에 감기가 심하게 와서 앓다가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를 쓰고 산소호흡기를 뗐는데, 할머니가 기적처럼 살아났다. 이후 요양병원, 요양원, 다시 요양병원, 또 요양병원 이렇게 거처를 네 번 옮겼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에서 이런저런 말을 들었다. 누군가는 살 만큼 살다 가시는 것이니 이제 호상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사람은 다 죽는데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뭘 그렇게까지 오래 살기를 바라느냐고 했다. 또 누군가는 그렇게 살 바에야 자신이라면 안락사를 택하겠노라 했다. 이 누군가는 나의 가족이기도 나의 절친이기도 했다. 때로 할머니를 돌봐주는 의료인력, 간병인력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아직 청력이 남아 있는데 그런 말을 대놓고 하기도 했다.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비명.
내게도, 세상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이 오로지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이 세상에서 쓸모없이 보이는 존재, 보탬이 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은 전혀 없이 생명의 온기가 식고 생명의 꽃이 사그라들어갈 존재. 그렇기 때문에 업신여김을 당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크나큰 의미가 있다. 그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었다. 내겐 그러하였다.
오늘의 정리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비정하게, 참새 사체를 줍고 정리했다. 힘든 시간을 오롯이 살아낸 한 생명으로서 할머니의 생명력에 경의를 품은 채, 아무래도 나는 앞으로도 애도를 좀 더 길게, 좀 더 깊이 끌어안고 갈 듯하지만, 이로서 애도의 마음을 한 차례 비로소 정리한다.
애도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용기를 가졌던 것에 대해서 우리가 지불하는 대가이다.
어빈 얄롬, 매릴린 얄롬 지음, 이혜성 옮김 <죽음과 삶> 시그마프레스, 2021년. 책 맨처음 문장
+맨드라미 소식
맨 처음 사진 속 빨간 동그라미인데 싹이 한 개 튼 것 같아요. 근데 잘못 심었는지 싹이 많이 트지 않아서 좀 더 지켜볼께요!^^ 관심 가져주시고, 또 이렇게 힘든 글 읽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책 <죽음과 삶>에 대해
<죽음과 삶>의 저자 중 한 사람 어빈 얄롬은 실존주의 상담가이자 정신과의로 널리 알려진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실존심리치료>의 저자 어빈 얄롬이 맞습니다. 그 파트너이자 <죽음과 삶>의 저자 매릴린 얄롬은 역사학자인데 그 유명한 <여성의 우정에 관하여-자매애에서 동성애까지, 그 친밀한 관계의 역사>의 저자이기도 해요! 두 페미니스트 저자는 80대 후반에 <죽음과 삶>을 썼습니다. 두 분의 책에서 저는 ‘우와 세상에 이런 종류의 앎이 있다니’ 하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5월에는 바빠서 못 쓸 것 같은데,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상세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