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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Apr 16. 2022

쓰레기아트 프로젝트 - 세계에서 1

플로깅 47번째 

골목 한복판에 형광등이 산산조각 박살이 나 있다. 파편을 살펴보니 원래 길쭉한 형광등이다. 그 옆에는 날카로운 플라스틱 조각도 떨어져 있고, 한구석에는 박카스인지 맥주병인지 모를 갈색병도 깨져 있다.      


쓰레기 집게로 크고 작은 파편이 집어지질 않는다. 어떻게 주워야 하지. 궁리하다가 집에 도로 들어가서 빨강 목장갑을 들고 나왔다. 아스팔트가 팬 틈 사이로 크게 잘게 부서진 형광등 조각이 박혀 있다. 신문지를 깔고 이 조각 저 조각 조각들을 줍는다. 시간이 좀 걸리네. 땀도 난다.    



나의 쓰레기 아트 탄생 

몰입하다가, 내친김에 오늘은 쓰레기 아트를 만들어 보자 싶다. 모아놓은 조각들로 눈코입을 만들자. 오늘 활약한 목장갑을 벗어서 옆에 놓고 사진 한 번 찰칵. 몸통도 만들자. 담배꽁초며 면봉 뚜껑이며 고무줄이며 꼬치꽂이 등으로 이뤄진 지저분한 몸통. 작품 완성~      


아무리 봐도 예술성은 좀 뒤떨어지는 것 같다^^ 작품 이름도 정해볼까나? 구상도, 제목 짓기도 왜 이리 어렵지. 예술가들의 창작 고통을 잠깐 맛보았을 뿐인데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조각들을 잘 싸서 버린다. 그러고 집에 와서 사진을 다시금 흐뭇하게 감상하다가, 아차!   

   

얼굴 쪽이 형광등 조각입니다..몸통 부분은 시각적으로 좀 볼썽사납네요. ㅎㅎ 죄송합니다.


아이고 수은의 독성! 

아, 형광등에 수은을 쓰지. 쓰레기 아트에 열중하다가, 그만 수은의 독성을 잊어버렸다. 적은 양의 수은으로도 공기 중에는 쉽게 일정한 수은 농도가 형성된다. 수은Hg은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이며 높은 증기압을 갖고 있어서 상온에서 증발하기 쉬운 금속이기도 하다. 증기로 발생되면 호흡기로 흡수될 수 있다. 강력한 독성을 가진 무시무시한 수은. 예전에 수은을 은의 일종으로 본 까닭에 이름이 물처럼 흐르는 은이라고 수은水銀이라 지어졌다고.     


마스크를 쓰고 했으니까 별일 없겠지. 근데 오늘은 바람이 별로 안 불었는데. 줍고 모으고 쓰레기 아트 시도까지 1시간을 그러고 있었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건전지를 주워서 주민센터 수거함에 버릴 때도 수은건전지임을 깜빡하고 맨손으로 집어서 갖고 갔다. 참고로 수은 건전지의 수은 함유량은 0.025% 이하로 국제적으로 규제함, 무수은 건전지도 1ppm 이하의 수은 함유함)  

    

대기중으로 장거리 이동하는 유해화학물질. 수은. 깨진 형광등에서 최장 10주 동안 수은 증기가 나올 수가 있다. 가정에서도 형광등이 깨지면 수은 증기에 주의해야 한다. 최대한 환기를 하고 깨진 형광등 조각을 쓸어낸 빗자루도 버려야 하며, 옷에 묻으면 폐기해야 한다.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정보시스템 가정 내 수은 누출 시 응급처리법 

https://ncis.nier.go.kr/mercury/envhealth/firstaid.do 

    

미나마타 그리고 문송면 군

사람들 대부분의 주요한 수은 노출 경로는 수은에 오염된 조개나 생선을 섭취하는 것이다. 1956년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 시에서 미나마타병 환자가 처음 확인됐다. 1956년 4월 23일, 6살 한 어린 여자아이가 보행장애, 언어장애, 광조 상태 등을 보여 입원한다. 며칠 뒤 여자아이의 3살 된 여동생이 같은 증상으로 입원하고, 마을 사람들이 같은 증상을 보이자, 환자들을 검진한 의사가 5월 1일 미나마타보건소에 원인 불명의 중추신경질환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날이 미나마타병을 발견한 날인데 이미 그 전에도 마을 고양이, 돼지 등에게서 증상이 나왔다. 2018년까지 일본정부가 환자로 인정한 사람 수는 2996명이다.     


칫소(전신 신일본질소주식회사)는 미나마타 공장에서 농약을 만들려고 아세트알데히드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생산과정에서 수은을 사용했다. 금속수은은 공장폐수로 포함되어 하천으로 방류되었다. 금속수은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플랑크톤 등에 의해 유기수은으로 변환되어 물고기 어패류 등에 들어간다. 결국 사람들에게 섭취, 축적이 된다. 그렇게 참사가 일어났다. 인체에서 수은은 장에 쉽게 흡수되어 신경계를 자극한다. 생체 내 농축에 의해 만성독성을 나타낸다. 발병하면 중추신경계 이상을 일으킨다.      


“그 옆 개인병실에는 84호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에게는 이미 의식이라곤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대퇴골이나 복사뼈나 바닥에 긁혀 생채기가 생긴 무릎, 그곳만이 아직 살아 있는 육체의 색, 저 선명한 분홍빛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병실에는 손톱으로 벽을 할퀴며 죽어간 아시키타군 츠나기 마을의 후나바 후지요시 씨의 손톱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이같은 미나마타병 병동은 죽은 자들의 방이었다.”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슬픈 미나마타》 달팽이, 2007년. 125쪽.      


미국의 사진가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와 그 파트너 환경저널리스트 아일린 스미스(Aileen Smith)는 미나마타병 환자들을 찍어 그 실태를 세계에 알린 바 있다. 

https://www.magnumphotos.com/newsroom/health/w-eugene-smith-minamata-warning-to-the-world/     


미나마타시 앞바다에 쌓인 수은의 총량은 200톤. 수은은 자연적으로 정화되지 않으므로 일본 정부는 1975년부터 오염이 심한 45만 평 바다 바닥에서 흙을 파냈고 그후 16년 동안 50억엔 비용을 들여 특수 강철판을 깐 매립지에 흙을 옮겨 담았다고 한다.(오창길 지음, <일본 환경 견문록-미나마타에서 후쿠시마까지> 2015년, 우리교육. 239쪽) 


한국에서는 1987년 형광등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18명 노동자가 집단으로 수은중독이 되었으며, 1988년 7월 한 청소년이 석달 간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는 작업을 해오다가 수은 및 유기용제 중독 진단을 받고 6개월 투명 끝에 사망했다. 문송면 군이다. 적정한 환기시설도 없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고농도 수은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었다. 불과 15살의 나이.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문송면 군은 사망 2주일 전에서야 산재로 인정되었다. 이후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으로 한국사회에서 직업병 인정에서 진전이 있었다. 그렇지만 2000년에도 사고가 있었다. 반도체 슬러지에서 은을 재생하는 폐기물처리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 3명에게서 수은중독이 발생했다.


문송면 군의 추모비는 1988년 죽음으로부터 20년이 지나 노동단체, 시민단체 등에 의해 2008년 세워졌는데,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열 다섯, 당신은 죽지 않았다. / 당신은 수은보다 더 오래 / 이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 오늘도 평등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순박한 거처가 되고 있다.”


2020년 한국에서 단일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세계 최초의 협약인 미나마타 협약(수은에 관한 미나마타 협약)이 발효됐다. 수은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국제협약으로, 수은함량이 높은 형광등의 제조 수입 수출이 금지되며 수은 체온계와 수은 혈압계 사용이 금지된다. 아직 병원에 남아 있는 수은 혈압계 수은 체온계가 올해 2022년 7월 21일까지 사용될 예정이다.

      

오늘의 정리

얼마 전 해외뉴스를 통해, 최근 아마존 원주민들이 수은중독으로 건강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브라질의 금 채굴 업체들이 아마존 강바닥에서 흙을 퍼내 금가루를 채취하는데, 이 과정에서 쓰는 수은을 마구 강으로 바다로 버리고 있다.(수은은 금에 잘 붙는다) 원주민들이 주식으로 먹는 물고기가 수은에 중독되어 이미 신경 손상 징후를 보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아이는 다리가 뒤틀리고 걷지조차 못하고 있다. 아마존의 물고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아도 다른 먹을 게 없어서 별 수 없이 물고기를 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마존 불법 벌목을 막으려던 원주민 환경운동가가 살해당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이다. 


(지난해에만 아마존 밀림 13,235㎢ 이  파괴됐다는데, 서울 면적 605.2㎢의 약 22배에 이른다고. 쓰면서도 깜짝 놀라고 있다ㅜㅜ. 참고로, 이러한 벌목은 현재 세계 최대 쇠고기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브라질의 소에게 사료를 먹기 위한 목초지로 만들기 위해서인데 정작 브라질 사람들은 물가폭등으로 소고기가 비싸서 못 사먹고 주로 북반구 부유한 국가들에서 소비함. )      

 

지구의 허파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키며 사는 고마운 사람들인데, 착잡하다. 작년이든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에서 본 브라질의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게 참 안타깝다. 자원이 풍부한 브라질. 수사도 기소도 재판도 검사가 다 하는(검사가 판결을 내리는 판사이기도 함) 막강한 권한을 가진 나라로 현재 극우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데, 보우소나루를 통해 브라질의 풍부한 자원을 제한없이 이용해 돈을 벌려 하는 많은 탐욕스런 이들이 원주민의 삶을 빼앗고 있다. 


화학물질을 나름 안전하게 관리하며 많이 사용하여 너무도 많이 물질적 혜택을 누리고 사는 현재 나의 세계와, 나와 비슷한 해에 태어난 문송면 군이 짧은 생애 속에서 살아생전 본 세계, 뉴스 속 아마존 원주민 아이들이 슬픈 눈으로 보는 세계. 나의 어설픈 첫 쓰레기 아트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고 감당이 안 되는, 이 비참한 세계를 여기에 글로서 기록해둔다. 

(나의 쓰레기아트 프로젝트 -세계에서 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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