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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May 31. 2022

기분좋게 줍줍

플러깅 54, 55, 56번째 

혜성처럼 나타난 나의 이웃! 그녀 덕분에 동네 골목 쓰레기를 주을 일이 줄었다. 그래서 요즘은 집 근처를 좀 벗어나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아직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난 적은 없는데, 해질 무렵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가 그녀를 봤다고 전해줬다. “오는 길에 어떤 여자분이 쓰레기를 척척 줍고 계시더라. 축지법을 쓰시나 봐. 와, 너희 동네 깨끗해졌다.” 


혜성 같은 그녀 덕분에, 골목 쓰레기가 줄었어요


오, 사람이 귀한 것이로구나. 사람이. 


어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전보다 불평, 푸념이 줄었다. 또 동네 골목을 벗어나 쓰레기 줍기를 시도해볼 수 있게 돼서 좋다.      




가볍게 산책하다가 잠시 앉은 벤치. 좀 멍하니 있다가, 벤치 옆 나무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눈에 보이는 대로 줍줍. 언제든 마음내키면 줍줍이다! 

내가 다녀가기 전과 다녀간 후^^ Before&After (내 플로깅용 까만 가방에 쓰레기봉투 및 크고 작은 비닐 봉지, 소독제를 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줍줍에 더 열심히 임하게 된다. 며칠 전 배출일이 아닌 날에 옆동네 쓰레기터에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갖고 있던 쓰레기 상자를 버리려던 이십대 초반 젊은이들의 쓰레기를 기분좋게 받아들었다. 분리수거가 안 되어 있어서 대신 분별해야 했지만 "고맙습니다"라고 전혀 기대치 않은 감사인사를 받았다.


도로 인도에 있는 쓰레기도 줍줍~. 도로가에 있는 공공쓰레기통 위치를 기억해두었다가, 갖다 버린다. 페트병, 카페음료플라스틱, 담배꽁초, 과자봉지 등등. 가정 내 쓰레기 뭉터기를 공공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이 있어서 공공쓰레기통 투입구가 작다. 

 


하수구 쓰레기에 떨어진 쓰레기도 줍줍, 길바닥 마스크도 줍줍! 


하수구에 떨어진 스티로폼 조각, 플라스틱 조각, 비닐 종류 쓰레기 등등도 줍줍.

마스크는 길 여기저기에 버려져 있다. 맨 처음 마스크를 주울 때는 단순히 사람들이 마스크를 자기도 모르게 주머니 같은 데에 넣어둔 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흘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마도 아닌 것 같다.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길에 버리는 것 같다. 쓰던 마스크를 버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그간 서너 번 정도 목격했다. 주머니에 둔 마스크를 일부러 길에 휙 버리는 사람. ㅎㅎ.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비볐는데 이제 단련이 됐다. 하루종일 마스크 쓰고 일하기가 힘들어서 스트레스 해소 차원으로 집에 들어가기 전에 버리는가 싶기도 했다가, 뭐 오다가다 뭔가 찝찝한게 있어서 따로 길에 버리자고 생각해놓는 수고를 발휘하는 것이겠거니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여기기로. 나도 내 나름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ㅎㅎ  

검정마스크 하양마스크 하늘색마스크 보이는대로 줍줍!(비닐장갑을 끼고 줍거나 맨손으로 주울 땐 소독액으로 소독하면 됨)




프리랜서를 시작하려고 회사를 관둘 무렵 즈음에, 시간이 나서 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사찰음식을 배우러 다녔다. 당시는 요즘처럼 사찰요리가 인기가 있을 적은 아니었는데, 나처럼 중간에 일을 쉬면서 사찰음식 배우려 나오시는 수강생들이 많았다. 어떻게 오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나만큼이나 엄청 바쁘게 살아오신 부지런한 분들이었다. 내게 초급코스 사찰요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지금은 엄청 유명하신 스님이신데, 당시에는 지역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에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다. 


나를 포함해 어찌나 열성인지 "채소는 몇 센치로 썰어야 하느냐" "몇 분동안 데쳐야 하느냐" 하고 스님께 드리는 요리에 관한 질문이 넘쳐났다. 그러면 스님은 그건 책을 보면 된다고 하시면서 실용적인 답 대신, 노상 다소 다른 답만 하셨다. 스님께서 어떻게 불가에 출가하게 되셨는지부터 시작해 주로 스님께서 암자에서 보낸 일상 이야기, 그리고 전국각지에 있는 흥미로운 (산야초나 채소와 같은) 식재료를 보러 다닌 이야기 등등. 어떤 날 그런 스님의 답에 불만인 일부 수강생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는데 ㅎㅎ. 


나를 비롯해서 수강생 모두 전반적으로 별로 활력이 없었다. 다들 삶에 뭔가 지쳐있고, 뭔가 힘들어하고. 다른 먹거리를 먹고, 다르게 살고 싶어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싶어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싶어하고 그런 열의는 다들 갖고 있는데, 다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여기저기 하도 치이고 지쳐서 그런지 애초에 생동감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가장 그랬던 듯하다. 


오늘의 정리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스님이 우리 수강생들 상태를 정확히 보셨던 것 같다. 며칠 전 뉘엿뉘엿 해질 무렵 햇살이 눈부실 때 문득 생각했다. '아하, 그 때 스님께서는 갖고 계신 활력을 우리한테 나눠주고 싶으셨던 거구나. 무엇보다 바르게 먹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으셨던 거로구나'. 


초급 코스를 수료하고나서 한두달은 집에서도 해보고 친구들한테도 해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사찰요리를 다 까먹었다. ㅎㅎ . 책을 다시 봐도 해볼 엄두가 안 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사찰음식 사진 좀 실컷 찍어둘 걸... 그래도 멋진 스님 덕분에 멋진 깨달음을 얻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불법(보리菩堤,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스님과 함께 읊던 '오관게'(공양전에 하는 기도)를 떠올려본다. 이 마음을 떠올리고 혜성처럼 나타난 귀한 그녀 덕분으로 동네 플로깅 100번까지 아무쪼록 정진해보겠다. 


지난주 금요일에 오래간만에 비가 내려서 기분좋게 비를 맞으러 나갔다. 비냄새에 꽃냄새. 싱그럽다 싱그러워! 간만에 아무 것도 줍지 않고 걷고 있으려니 무척 호화스런 마음이 들었다. 길에 떨어진 장미꽃송이 하나를 주웠다. 어서 가뭄이 끝이 나면 좋으련만.. 중국 남부에서는 호우가 내려 학생들이 죽었다고 하고...지구촌 곳곳의 기후변화가 서글프다. 다음 번에는 <기후정의선언>을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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