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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May 18. 2022

살며시  

플로깅 53번째 

우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이, 좋은 날이다. 


해지기 직전, 시간이 나서 길냥이랑 저번에 화단에 심은 맨드라미한테 물도 줄 겸 골목 쓰레기도 주을 겸해서 나갔다. 물을 주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진다. 어떤 여자분이 내 주위를 마치 바람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연보라 셔츠를 입은 그녀.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한 손에 쓰레기집게를 들고 한 손에 봉투를 들고. 어찌나 동작이 민첩한지, 처음에는 틀림없이 내가 뭘 잘못 본 줄로만 알았다.      


긴 집게를 들고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담배꽁초로 너저분한 골목이 순식간에 샤샤샥 깨끗해졌다. 우리집 앞길 쓰레기도 줍줍 해주고 가셨다. 




사실 지난달부터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낮에 힐끗 보고서 미처 줍지 못한 동네 쓰레기, 가령 페트병을 밤에 주으려 나가면, 밤에 분명 평소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할 페트병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저녁에 세차게 불던 바람 탓에 아니면, 누가 발로 차서 페트병이 어디로 굴러갔나. 어디로 갔지? 찾았는데 도통 보이질 않았다. 이상하네. 


나는 낮에 일을 해야 해서 밤에 거의 쓰레기를 줍는 편이다. 지난달부터는 밤에 줍는 골목 쓰레기량도 확실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동네 길바닥 쓰레기가 부쩍 줄어들었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그저 ‘봄이 되고서 사람들이 교외나 밖으로 많이들 나가서 쓰레기가 줄었나 보다’하고 말았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홍길동 같은 그녀가 해질무렵 나타나 미리 줍고 치운 덕분이었다니!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밀어내고 지구의 미래에 대한 우려에 동반되는 불안에서 달아날 수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가장 끔찍한 폭력 행위가 저질러지는 곳에서도. 우리는 엘드흐뢰인의 이끼 낀 무덤에 앉아 있으면서도 18세기 라키 화산 분화의 무시무시한 파괴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의 끝없는 옥수수밭을 지나치면서도 그곳에 토착민과 버팔로가 살았음을 떠올리지 않는다. 우리는 노르망디 해변에서 흥겨운 나날을 보내고 함부르크 길거리를 거닐면서도 1943년 공습 이후의 참화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 행인의 눈에서는 어떤 슬픔도 찾아볼 수 없다."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시간과 물에 대하여> 2019년, 북하우스. 291쪽.) 

   

지지난달에는 좀 기분이 처져 있었다. 쓰레기를 줍는 플로거로서 내가 느끼는 총체적 기분은 뭐랄까, 딱 위의 문구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이슬란드 환경운동가 마그나손이 냉소적으로 현실을 비꼰 부분..)  



무엇보다 불법 사채 광고 명함 쓰레기 때문에 짜증이 났다. 한부모 여성 가장이 불법 사채 광고를 보고 돈 200만원을 생활비로 빌려 쓰고 갚았는데, 불법 사채업자들이 200만원을 제멋대로 도로 한부모 여성 가장의 계좌로 입금해놓고서는 이 여성 가장한테서 고리의 이자를 뜯어갔다고 한다. 지지난달 뉴스에서 봤다.      


그간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볼 적마다 서울시에 신고했다. 그래도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이 줄지를 않아서 서울시장한테 편지를 쓰고, 또 여기 브런치에 기록하는 등 사력을 다했다. 나의 힘을 최대한 발휘했다. 그 덕에 내가 줍는 길바닥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은 개수 자체는 눈에 띄게 줄긴 했지만, 실제 피해자들이 나오고 말았다는 몹쓸 소식을 들으니까 기분이 아주 별로였다.     


그리고 뉴스를 들은 다음날. 동네 5거리 교차로에서 불법 사채 광고 명함을 보고 주우려다가 넘어졌다. 다행히 옆에 가던 사람이 잡아줘서 크게 자빠지지는 않았다. 내가 불법 사채 폐해를 생각하다가 잠시 정신을 팔았었을 수는 있는데, 5거리 길이 워낙 울퉁불퉁하다. 아스팔트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리 성의없이 기본도 안 지키고 깐 것인지, 도무지 아스팔트 수평이 맞지 않고 경사가 들쭉날쭉이다.      


요즘도 더러 줍는 불법 사채 명함/  울퉁불퉁 5거리


올 겨울 어느 날, 눈이 녹고 나서였을 것이다. 이 5거리를 지나던 나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엎어질 뻔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경사가 맞지 않는 길에 눈이 녹아 길이 미끄러워서 상당히 위험했다. 이 5거리는 곧 노인보호구역, 어린이보호구역과 이어지기도 하느니만큼 길 기울기를 평평히 맞춰달라고 구청에 얘기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불법 사채 광고 명함 감독 건으로 민원을 여러 번 넣던 차에 나를 '진상민원인'으로 취급하는 직원도 있는 터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좀 돼서, 바로 구청에 이야기를 못 했다.      


그러던 중에 3월말에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가서 일해야 하는 알바가 생겨서 출근 때 전철을 타고 나갔는데, 전철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나가야 하는 사무실은 30분 정도 전철을 타고 가야 하는 곳으로 10개 정도 역을 지나야 있는데, 전철로 가는 내내 서울교통공사에서 시끄러운 알림 방송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방송내용은 지금 장애인들이 00역에서 시위를 한다는 것. 그런 알림 방송이 매 정차역에 서기 전과 다음역으로 출발할 때 그러니까 한 전철역마다 2번 이상, 총 적어도 20번 남짓 울려퍼졌다.  


소음측정은 못 해봤지만 원래 지하철 소음(보통 80dB)에 더해, 다급하고 큰 소리의 알림 방송 반복까지. 승객도 출근길이 힘들지만, 안전운전하면서 방송까지 해야 하는 기관사 분도 난처하겠지.  


생각해봤다. 장애인들이 전철역을 오가며 에스컬레이터나 휠체어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거나 다칠 때, 내가 알림 방송을 들은 적이 있던가. 단 한 번이라도? 


그리고 전철역 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이라도 찬찬히 관찰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을 때면, 어김없이 비장애인들이 먼저 앞다퉈 엘리베이터에 타고,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먼저 탄 뒤에 남는 자리가 있으면 타고 아니면, 기다려서 다음 혹은 다음다음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을. 

 

비장애인도 이용하는 전철역 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들의 시위(=권리 주장)로 얻어낸 성과이다. 비장애인도 몸이 아프거나 짐이 많을 때, 나이가 들었을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프리라이더(지금 입고 있는 혜택에 대한 무임승차자)가 된다.

 

TV며 인터넷 뉴스며 온통 장애인이 시위하고 있노라고 틀고 또 틀어주는데. 게다가 젊음을 내걸어 대중의 막대한 지지를 등에 업은 어느 정당 대표 00석 씨가 장애인 시위를 두고 "비문명적"이라고 나흘동안 10번이나 지탄하는 바람에, 대명천지에 전철 장애인 시위를 모르는 사람 하나 없는데. 서울교통공사에서 장애인 시위 알림 방송을 그토록 반복하는 현실이 너무도 씁쓸했다.  

 

더욱이 서울교통공사는 이미 작년 12월에 장애인단체에 전철에서 시위를 벌였다며 무려 3천만원짜리 손배소 민사소송도 제기한 바 있는데, 이렇게 혐오를 조장하는 듯한 안내 방송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일주일 내내 이런 안내 방송을 듣고 출근하고, 그러다가 나는 스마트폰 인터넷(포털)에서 "장애인한테 00으로 해꼬지하겠다"고 쓴 믿을 수 없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댓글을 목격했다. (보자마자 포털에 이 댓글을 신고도 하고 캡쳐도 해놓았다.) 


혐오 부추김이 불러일으킨 폭력적인 반응에 충격을 받고서 나는, 3월 29일,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다. 


“시민들 가운데는 지하철 내 장애인 시위에 대해 탐탁치 않아하는 분들도 계시고 장애인 가족을 둔 시민도 있고, 장애인 시위에 대해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하는 시민도 있습니다. 즉, 다양한 시민의 여러 가지 정치적 입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귀 공사에서는 시민의 안전과 불편을 고려한다는 핑계로 계속 장애인 시위 안내방송을 되풀이하여 틀어서 시민들 사이에 장애인 혐오를 일으키고, 시민 간 갈등을 조장하려 하지는 않는 것인지 문제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고 힘든 출근길, 시민들이 조용한 열차 내에서 평온한 출근길을 맞이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은 할 수 없고 갈등만 조장하는 반복적인 방송을 즉각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평소 귀 공사의 전철을 이용하면서 많은 기관사님들과 귀 공사 일원 모두의 노고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감사의 인사를 소리없이 드리고 있는 시민들의 바람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월 마지막날, 서울교통공사로부터 내게 답이 왔다. “(서울교통공사는) 혐오를 조장하거나 갈등을 유발한 것이 아니고 고객분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는 요지의 답변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래도 뭔가 해보고 싶었다. 의식은 현실변화 앞서 바뀌지 않는다. 현실의 변화에 의해 의식이 따라와 바뀐다. 


물론 혐오발언 문제에 있어서  00석 씨와 같이 선동적 혐오발언을 하는 정치가는 가장 크고 무거운 책임이 있긴 하지만, 나는 일단 공공기관에서 공적 대응을 바꾸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오늘의 정리 

돌이켜보면 지지난달에는 그럴 법한 이유(부조리한 현실...)가 있었기에 좀 냉담하고 무기력한 내가 된 것 같다.


 어쨌거나 오늘 나는, 이런 지난 나날을 뒤로 한 채, 좀 많이 기쁘다. 나와 비슷한 나이처럼 보이는 그녀. 그녀 덕분에 참 기분이 좋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만화 같이 멋진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가까이에 살지만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동네 이웃이 직접 살며시 이리 플로깅에 동참해 주는 일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을 못 해봤다.


그녀도 나처럼 낯을 가리고 쑥스러움을 타는 성격인지 오늘 우리는 딱 1-2초 간 서로 작은 목소리로 슬그머니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 것 말고는, 더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음에 마주치면 더 반가워 해보고 싶다.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을만큼만 말을 건네고. ㅎㅎ. 그리고  좀 더 용기를 내어, 구청에도 말해보련다. 울퉁불퉁 5거리 길 기울기 좀 손봐달라고, 아스팔트 수평 좀 제대로 맞춰달라고. 


와, 기분 좋은 봄밤. 


(어제 5월 17일에 쓴 글인데 글 쓰고 기념삼아 기분좋게 맥주 일잔 하느라 못 올리고 오늘 아침에 올리네요!^^ 오늘도 들러주시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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