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드플로거 Jul 14. 2022

비 갠 후

플로깅 59번째 

가뭄 끝에 장마. 반가운 비가 개고 나면, 거리에는 우산이 버려진다. 부러진 우산 살 그대로 위험해 보이는 우산 쓰레기들이 방치된 풍경을 종종 본다.      


15년 전쯤에 한국에도 스콜성 호우가 내린다고 첫 뉴스를 들은 것 같다. 스콜이 잦아졌다. 장마도 전과 같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아니고 꼭 스콜같이 내린다. 국지성으로 강한 호우가 내리고 금방 그치는 열대 기후 현상=스콜 탓인지 우산 살이 잘 부러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비가 그치면 길에 망가진 우산을 함부로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우산 살 때문에 정돈할 수 없었던 우산 쓰레기


플로깅 때, 보는 대로 엉망으로 마구 버려진 우산을 잘 개켜 놓으려고 하는데, 참 쉽지가 않다. 부러진 우산 살을 하나하나 맞춰보고 접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써본다. 시간도 걸리고 손아귀에 힘을 꽉 줘도, 결국 접히지 않는 우산 살도 있었다.     


우산을 버릴 때는 종량제 봉투에 버리라고 하는데(우리 동네 배출법은 그러함), 종량제 봉투에 넣으려면 개켜야 한다. 우산 살이 부러지면 당연히 잘 개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버리고 가는 것 같다. 버려진 우산은 비닐 우산이 대부분이긴 한데, 어떤 땐 '0학년 0반 000' 하고 자녀 이름표도 그대로 붙여서 버려진 우산도 있었고, 도저히 접혀지지 않는 대형 우산도 있었다.  


그나마 이렇게 구석에 우산이 버려지면 좋은데, 인도 한 복판은 처리하기가 난감하더군요.


우산을 올바르게 폐기하는 방법은 우산 살(우산대)와 우산천을 분리해서 버리는 것인데, 우산 살을 고철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내가 버려진 우산을 잘 개켜 놓고 관찰해보니, 재활용하시는 분들이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저번 날에는 하마터면 손을 다칠 뻔했다. 우산 살을 개켜보려 좀 해보다가 잘 안 개켜질 때는 어쩔 수 없이 인도 한 가운데 있는 우산을 한구석으로 옮겨 놓고 오거나, 동사무소 쓰레기재활용 수집터에 갖다 놓고 왔다.   


여기까지 접기라도 하는 게 나의 최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요새 우산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수년 전에 동남아에 갔을 때 보니, 현지 주민들은 별로 우산을 쓰지 않았다. 우비(비옷)을 입고 다니거나, 잠깐 비를 피하는 식으로 하고 있었다. 스콜이라서 우산이 소용 없어서일 것이다. 비옷은 한국처럼 얇아서 금방 찢어지는 건 아니고, 두꺼운 비닐이었고 디자인도 형형색색이었다. 한국도 우비가 널리 퍼져야 하는 때가 됐나 싶다?  


나도 집에 우산 살이 부러진 접이식 소형 우산이 몇 개 있다. 고쳐서 써야지 싶어서 보관만 해두고 있는데, 찾아보니 마땅히 수리하는 데가 없다. 어렸을 적에는 우산 수리하는 곳이 있었는데 싶어서 인터넷서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요새는 우산 수리하는 가게는 없어서 구청 등에서 대민 서비스 개념으로 해주는 곳도 더러 있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구는 이런 서비스가 없다.     


우산 가격도 싸고 하니까 고장 나면 버리고 다들 새로 사서 쓴다. 사람이 수리를 하면 품이 들고 품이 들면 인건비를 내야 하고 그러느니, 새로 싸서 쓰는 그런 더없이 ‘풍요로운’ 문화이다. 


어디 우산만 그런가? 몇 달 전 집에 전기포트가 고장났는데 고쳐보려 알아보았다. 도저히 부품을 구하지 못해 새로 샀다. 지난 겨울에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기사님을 부르니 센서가 고장났는데, 센서가 단종되어 통째로 보일러를 갈아야 한다고 했다. TV가 고장 났는데, 역시 부품이 없어서 버티다가 새로 사야 한다고. 만약 지금 잘 쓰는 냉장고도 그렇다. 냉장고의 핵심 엔진이라는 컴프레서가 고장날 경우, 지금 냉장고의 컴프레서는 단종되었기 때문에 새로 사야 한다.      


자원을 쓰다가, 좀 고장 나면 버리고 사는 주기가 짧아도 너무 짧다. 돈도 돈인데(물론 전에 비하면 너무 싼 돈으로 쉽게 다 새로 살 수 있으니까), 어떤 제품의 수명이 이리 짧은 게 아깝고 아깝다. 한편으로는 이런 풍요로운 물질문화하고 기후변화, 혹은 (인간과 동물 종간 경계를 넘나들며) 이토록 고통스럽고 끝이 나지 않는 감염재난을 떼어놓고 생각하래야 할 수도 없는데...... 어쩌나?


비 갠 후 버려진 대형 우산, 애를 써봤는데 휴~ 접히진 않았다. 아이스팩 몇 개 주운 거 하고 그대로 들고서 동사무소 쓰레기 수집터로


오늘의 정리  

인도에 위험스럽게 보이는 버려진 우산들을 보면 우산을 버리고 간 누군가를 향해 좀 욕이 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인간의 성선설, 성악설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나를 포함해 인간은 어떤 사회적 맥락에 따라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으니 맥락을 어떻게 정비하느냐 사회적 합의나 집단적 의지를 만들지 그런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어찌할 수 없는 시대지만, 그래도 이런 시대에 나 나름의 방식으로 동참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그간 생업으로 간만에 무지 바빠서 브런치에 한 달 넘게 글을 쓰지 못했다. 과로를 하는 동안에도^^ 자주 쓰레기를 줍긴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격려의 말씀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다시 차차 하나씩 쓰겠습니다.   




올 4월 20일에 군사정권 때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한승헌 선생님(1934~2022년)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한 4년 전쯤인 2018년도에 한 시민단체에 소장하시던 책을 기증하시면서, 생전에 남긴 소감을 유투브로 봤습니다. 3분짜리 짧은 소감인데 감동적이라서 일부를 좀 그대로 옮겨 써봅니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이렇게 꼭 책을 보내야 되는가 하고, 실은 어제 저녁에 누워서 좀 한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어요. '며칠만이라도 책 싣고 가는 걸 좀 연기하자고 전화를 할까?' 그런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하고) 이별이라고 하면 표현은 적당치 않지만. (책하고) 나하고 물리적 거리는 잠깐 떨어져 있어도 마음속에 나와 함께하리라고 그렇게 믿고.     


만만치 않은 이 세상 헤쳐나가면서 또 이런저런 말과 글이라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해서 빛이 되기도 하고 소망이 되기도 하지만, 개인으로 보면 또 그게 화근이 돼 가지고 나도 그래서 두 번 징역살이, 재수라고 그러는데 재수까지 하고 그랬지만은, 그래도 그 시대에 살면서 그냥 아무 탈 없이 너무 무사태평으로 살았더라면 오히려 좀 양심의 가책도 있고 이 세상 너무 편하게 산 데 대해서 미안한 생각도 있을텐데.      


그냥 그런대로 내가 할 만큼 하고 당할 만큼 당하고 또 앞으로 그래도 뭔가 지금까지 뛰어온 길은 갑자기 서지 아니하고 이제 좀 더 여러 가지 원숙한 그런 한 지식인으로서 이 책들과 함께 했던 그 시대. 정말 욕되지 않게 내가 잘 마무리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내가 너무 심각했나?)”


영상 URL https://www.youtube.com/watch?v=rsS4FcyQXLI 

작가의 이전글 살아가는 순간의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