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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Dec 14. 2021

매주 5g씩 먹습니다만?!

플로깅 열하루째 

플로깅 사나흘 하고서 아이스팩이 많아서 구청에 아이스팩수거함을 설치해달라고 제안을 했는데, 연락이 왔다. **마켓에서 아이스팩을 재활용하는 훈훈한 거래를 몇 번 봤는데, 바쁜 사람은 개인대 개인으로 나눔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아서 좀 더 세심한 행정적 대책이 필요할 거라 생각이 들어 제안했다. 구청에서는 이미 수거함이 주민센터마다 비치되어 있다고 관심이 가져줘 고맙다는 답이 왔다. 그런데 분명 우리 동네 주민센터에는 아이스팩수거함이 없었는데 싶어서 동네 주민센터에 알아보니 수거함을 누군가 집어가서 지금 수거함이 없다고 한다. 아니 대체 누가 왜 수거함을 째로 들고가는 건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왜때문에...


오늘의 플로깅을 마치고 가까운 다른 동네 주민센터에 가보니 외부에 수거함이 있어서 그간 집에서 내가 모은 것 중 한 두개와, 플로깅을 하면서 모아둔 아이스팩을 버리고 왔다. (그런데 주민센터 건물 안에 아이스팩 수거함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주민센터가 문을 닫기 전에 수거함에 넣어 버려야 한다.) 

수거함에 비친 은은한 겨울나무 그림자가 이뻐서 한 컷 찍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는 귀갓길. 

아니, 그 새 또 골목 전봇대 구석에 아이스팩 하나가 버려져 있다. 하아~~ ㅎㅎ 플로깅 안끝났네.




환경부에 따르면, 시중에서 유통되는 아이스팩의 80%는 고흡수성수지(미세플라스틱 일종) 충진재로 만들어졌고, 자연분해가 안 되고 소각, 매립이 어렵다고 한다. 즉, 아이스팩은 재활용이 최선의 길인 것이다.  


처음 아이스팩을 보았을 때 버리는 법을 몰라서, 내용물을 하수로 버리고 껍데기는 종량제에 버린 적이 있다. 나름대로 분리수거를 한다고 조사도 해보고 알아본 것인데,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잘못된 배출방법이었다. 미세플라스틱이 하수처리 되지 못해 수질에 엄청난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반성했다. 2019년 환경부 조사 결과를 보면,  아이스팩의 약 15%는 하수구로 배출되어 미세 플라스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전 세계 수돗물 대부분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이 매주 먹는 지름 5mm 미만 미세플라스틱 양이 무게로 따지면 볼펜 한 자루에 해당하는 5g, 갯수로는 2000개 라는 연구결과가 3년전에 나왔다. (세계자연기금 WWF 호주 뉴캐슬대 연구진 플라스틱의 인체 섭취 평가 연구) 


매주 5g씩(2000개) 미세플라스틱 섭취라니. 이렇게 여기다가 숫자로 옮겨 적고 보니 더 충격적이다.  우리 인간만 먹는 것도 아니고 동물도 먹으니까 먹이사슬로 보면 인간이 상위 포식자이므로 생물농축으로 또 인체에 더 유입된다고 봐야겠지. 가끔 외신에서 죽은 동물들 내장에 가득찬 플라스틱 사진을 보면, 인간이 미세플라스틱의 영향에서 자유로울리 만무하다는 생각을 한다. 

합성섬유 옷에도, 티백으로 우려낸 차 한잔에도, 소금에도, 굴이나 홍합 등 해산물에도 미세플라스틱이 있고, 플라스틱병 뚜껑을 딸 때도 떨어져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소각이나 매립은? 아이스팩을 소각해도 불완전연소로 다이옥신(쓰레기 소각,제강용 전기로, 자동차 배기가스 등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이 나올 수 있고, 매립해도 흙에 사는 미생물 개체군에 악영향을 준다. 아이스팩을 비롯해 미세플라스틱의 독성, 위해성에 대한 명확한 연구는 앞으로 더 나와봐야 알겠지만, 정말 진퇴양난의 상황은 맞는 것 같다. 재사용의무화 대책 마련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되도록 안 쓰고, 쓰더라도 재활용하고 그런 방법뿐인 듯 하다.  얼마전 테드 강연에서도 플라스틱은 되도록 재활용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오늘의 정리 

집에서 배송시킬 때, 선물받을 때 받아서 모아놓은 아이스팩을 다 수거함에 갖다놓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안 쓰는 게 좋겠지만, 어쩌다보니 집에 들어온 것들은 되도록 내 선에서 재활용해보도록 하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아이스팩 수명을 길게 길게 살려주겠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1922년생. 1922년에는 독일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나중에 노벨화학상을 수상)가 플라스틱이 서로 연결된 수천 개의 분자사슬(고분자)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아낸 일이 있었다. 이에 따라 이후 플라스틱이 다양한 형태로 개발됐다. 한국에서 플라스틱 제품이 언제부터 대량 사용된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플라스틱을 알게 된 것은 아마 성장기가 훨씬 지나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20세기 (최대) 발명품 플라스틱을 정말이지 사랑하고, 정말 귀하게 여기셨다. 비닐 하나도 고이 접어두었다가 다시 재활용했다. 플라스틱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돌아가시기 전 허약한 기력으로 잘 못 드실 때 플라스틱 빨대를 정말 유용하게 사용했다. 컵에 든 물도 마실 수가 없었다. 유리 빨대는 무거워서 잡을 수가 없고 종이 빨대는 잘 빨아들이지 못했다. 약한 누군가에게 플라스틱 빨대는 좋은 물품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플라스틱 빨대를 쓸 때면 꼭 씻어서 깨끗히 말렸다가 한두 번이라도 더 사용하고 버리고 있다. 좀 귀찮기도 하고 집에 쌓여가는 비닐봉지니, 아이스팩이니 볼 때마다, 전혀 미니멀하지 못한 집안풍경에 약간 구질구질하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할머니 생각이 나서 썩 나쁘지만은 않다. 편리한 만큼 더 소중히 여기고 싶다. 


참고 

미세플라스틱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미래를 읽다 과학이슈11 시즌9> (동아엠앤비) 에 나온 이충환님의 글 <미세플라스틱의 습격>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선전 아니고요,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보던 중 알게 됐습니다. 


다이옥신Dioxins - 유해화학물질. 2,3,7,8-TCDD(테트라클로로다이벤조다이옥신)가 생물체 내에 농축되고 많은 환경 문제를 야기.  (2,3,7,8-TCDD는 베트남전 고엽제 구성물질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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