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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Aug 04. 2022

뜨거운 여름

플로깅 61, 62번째 

날이 무척 덥다. 엊그제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났다. 간만이라 반갑고 좋았다. 그리고 건강한 모습이라 더 좋았다. 아플 때 모습도 물론 반갑지만 깨면 마음이 좀 아프니까.      


몇 해 전 할머니 살아계실 적에,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방문하며 “춥다, 추워, 아효. 손 시려”하고 불평을 했다. 누워 계신 할머니가 언 내 두손을 잡아당겨 할머니 침상 밑 이불 속에 넣어줬다. 그러면서 같은 방을 쓰고 계신 (역시 누워 계신) 어르신들과 함께 “겨울은 겨울다워야지.”하며, “추워야 맞다.”고 맞장구를 치셨다.      


아니, 할머니! 나랑 같이 살 적에 모질게 추운 날이면 하늘에 대고 쌍욕 많이 했잖아. 과감하고 솔직하게 욕을 퍼부어댔잖아. 왜 이리 갑자기 관대해진 거야? 할머니의 마지막 겨울. 그날은 많이 웃었다.   




덥고 습한 날씨. 이런 날씨여야 여름이라 할 수 있겠지. 짜증도 나지만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걸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런데 날도 덥고 바쁜 일도 일단락되니까 또 의욕이 사라졌다?      


아니,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그런 이야기를 꼭 친구한테 전해 뒀어야 하는데. 같이 밥 한끼라도 먹었어야 하는데. 뭐라 할 수 없는 자책이 마음속에 파도치듯 왔다 갔다 한다.      


아직 49일도 안 지났으니까 당연하다. 이런 땐 쉬고 놀아야 할텐데, 코로나 확진자가 크게 늘었다. 여행 가려던 계획을 좀 미루었다. 뭐, 여행 못 가도 괜찮다. 한 여름이라 길가다 그냥 하늘만 올려다봐도 노을이 무지 아름답고, 근처 산에만 걸어가도 나름 휴식이 된다.     


한 여름 노을 찰칵,  그리고 어느 산기슭 카페에서 한 컷


플로깅에 나갔는데 골목 코너에 아이구. 냄새야. 악취. 신 김치도 쉰 김치도 아니고, 말 그대로 썩은 김치다. 썩어서 버린 것인지 더운 열기에 길바닥에서 썩고 만 것인지 모르겠다. 한 뭉터기 김치가 하수구 옆에 놓여 있다. 


플로깅을 시작하기 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지나가던 자동차에서 문을 열고 동네 쓰레기터에 휙하고 통째로 버린 신김치를 치운 적이 있었다. 그때 이래로 두 번째네, 김치 줍기. 하려다가.  에이, 뭐야. 갑자기 다 부질 없어서 그날은 그냥 안 하고 가볍게 불법 대출 광고 명함이랑 마스크 같은 것만 줍고 왔다. 


오른쪽이 썩은 김치를 치운 종량제 봉투. 냄새가 지독해서 페트병에 물도 갖고 나가서 뿌려줌.


그러고 한 사나흘 지났는데, 여전히 썩은 김치가 제자리에 있었다. 내가 자주 지나는 길목이기도 하고, 키움센터라고 방과 후 아이들이 가는 곳도 가까이에 있고 해서, 썩은 김치 버리는 법을 검색해보고 그냥 내가 줍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썩었는데 며칠 그대로 있어서인지 냄새가 심해서, 누가 왜 김치를 이리 함부로 버렸는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고 일단 치우기에 급급하게 된다. ㅎㅎ   


찾아보니 썩은 음식은 음식물쓰레기로 분류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료나 퇴비를 만드니까 그런가 보다. 10리터 종량제 봉투를 들고 나가서 담았다. 봉투에 담아보니 절반 정도 된다. 5리터가 좀 넘는 김치였다. 


오늘의 정리 

지난 겨울에 기분이 처져 있었을 때, 억지로 책을 찾아봤다. 제목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 과학>(가토 토시노리 지음, 정현옥 옮김, 갤리온, 2021년)이다.      


책 초반부 내용은 의욕이 많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일수록 뇌다발이 튼튼하다는 것(MRI와 비슷한 무슨 검사를 해서 뇌를 찍으면 그렇게 나온다고)이다. 의욕에 찬 사람은 전전두엽 뇌영역이 발달해있다. 전전두엽은 이마 바로 뒤. 이 영역은 인내력이나 스트레스 내성 역할을 담당한다고. 어쨌거나 요새 스트레스 내성이 크게 떨어진 게 틀림없는 사실이라 덩달아 의욕도 없다 보다.      

책에는 뇌를 꾸준히 단련해야 의욕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도 나와 있다. 좋은 내용이긴 한데, 단련이고 뭐고 간데 의욕을 내려는 실천을 하기까지는 좀 산 너머 산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꾹 참고 읽었다. 책 ‘들어가며’의 부제가 ‘아무것도 하기 싫은 하루에 갇힌 당신에게’ 였어서 ‘오, 나잖아’ 싶어서였다.       


의욕 없을 때 해보라며 저자가 알려준 팁은 의외로 평범하다. 1) 상황과 필요에 따라 견디면서 의욕을 일으키고 의지를 밖으로 표출하면서 무기력한 삶을 극복하자. 2) 내면적으로도 외면적으로도 에너지 넘치는 사람을 만나자. 에너지를 전달받자는 것이다.      


“에너지가 없는 사람이 활동적인 사람과 있으면 함께 기분이 좋아지고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차츰 생겨난다. 그 안에서 탄생한 에너지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도움을 줄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 과학> 나가며 220~221쪽)      


위 인용문은 2)번 팁 관련인데, 올봄에 좀 실천해봤다. 의욕이 없는 내가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한테 기력을 뺏나 싶어서 처음에는 내심 미안했지만, 반대로 내가 의욕을 얻게 되니 에너지를 좀 나눠줄 수도 있었다. 꽤 괜찮았다. 이번에는 1)번 팁을 행동으로 옮겨보려 한다. 요새 읽은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에도 삶에 견디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눈물. 


강렬한 김치 냄새 여운 속에서 부서지기 쉬운 인간이란 존재를 생각한다. 여전히 마음이 좀 쓰라리고 한편으로는 하늘에 대고 욕도 원망도 좀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있는 그대로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하루. 또 하루하루. 삶의 의욕을 스스로 일깨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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