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로 여수 출장이 잡혔습니다. 미팅이 오전 10시라 비행기를 탈까? 기차를 탈까? 고민하다가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습니다. 새벽 5시 10분 기차를 타야 하는군요~! 평소 5시 전에 기상을 하지만 이날은 4시에 기상을 합니다.
미팅은 항상 그렇지만 들어가기 전에 느끼는 극도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닌데 살짝 떨려오는 긴장감은 사실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닙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내가 일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고객에게는 진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고객사 미팅을 마치고 협력사 대표님과 점심을 먹으며 두 번째 미팅을 합니다. 뜨거운 곰탕 한 그릇을 후~후~ 불면서도 연신 입에서는 프로젝트 진행 사항들을 꼼꼼히 체크합니다. 밥 먹으며 말이 많은 나를 보니 업체 사장님 식사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얼굴 보고 만났을 때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는 목표가 있다는 걸 사장님도 이제는 아시는지 그러려니 하며 식사를 하십니다. 얘기 중에 길쭉한 풋고추를 하나 집어 된장을 푹찔러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청양고추였습니다. 곰탕도 뜨거운데 속에 불이 타오르는군요~! 작은 고추가 매운 거 아녔나요? 분명 길었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게 다 맞는 게 아닙니다.. 고추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이렇게 두껀의 미팅을 마치고 서울행 기차를 올라탄 시간은 오후 2시10분 입니다. 일을 마치고 올라가는 기차안에서 미팅내용 정리해서 이메일 두통을 쓰고, 일찍 일어나 노곤한 피로를 잠깐의 꿀잠으로 날리고, 읽고 있던 책도 한시간 보았더니 용산역에 도착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침부터 서두른 이유는 가정에서 맡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야구하는 초3,2 두아들 녀석을 전적으로 매니져를 하고 있는데 미팅이 있는 날이면 저 대신 아내가 야구부를 캐어 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 야구를 시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려는 저의 의지인데 용산역에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겠다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어쩐 일로 아내가 이미 아이들 픽업하겠다고 합니다. 덕분에 피곤했는데 집으로 바로 갈 수 있어서 아내에게 감사했습니다.
저희 집은 2010년에 결혼해서 11살,10살,9살,7살 2남2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많기도 하고 역할을 정확히 분담해서 하는걸 좋아하는 아내의 의도에 따라 저도 10년정도 결혼 생활을 하니 공동육아자라고 감히 말할 정도로 성장 했고(성장한게 좋은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집안일을 아내와 나누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가정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내가 해야하는 것들을 원의 가장 중심에 두고 회사일, 나의 취미등을 그 다음 바깥쪽 원에 두어 왔습니다.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4명을 낳아 부부간에 별탈없이 동지애를 쌓아 가며 살아오고 있는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돌봐 주는 사람없이 부부가 4명의 아이들을 케어 할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와 함께 하는 요즘은 아이들의 외부 활동이 적어져서 부모의 역할이 더 많아져서 아내 혼자 감당할수 없었을 꺼라 생각도 드니 이런 가정구조로 생활 했던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드는 요즘입니다.
집에 들어 오자마자 내가 집을 비운동안 무엇이 부족했나를 스캔합니다. 몇초의 스캔후에 웃통만 벗고(몸은 좋지 않습니다.ㅎㅎ) 밥을 앉히고, 설거지 부터 합니다. 아내가 급하게 아이들을 픽업하러 나간 흔적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두명이 밖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데도 집에는 여전히 두명의 아이들이 있으니 그 두명도 챙겨서 시간에 맞춰 가려면 집안 정리를 하고 나갈 정신까지 없었을 껍니다.
고등어 두마리를 구워 식탁에 놓고 함께 차린 저녁상이 조금 늦었지만 맛있게 먹고 생선은 금세 뼈만 드러냅니다. 뼈를 드러낸 생선을 한번 보고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보고 생선을 보고 아이들을 보고..
"하~~ 돈 많이 벌어야 겠다"
부의 축척은 언감생심 아이들과 생존을 위한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팍팍드는 저녁입니다.
아이들과 저녁상 정리를 후다닥하고 아내에게 눈짓으로 탈출하자는 신호를 보냅니다. 아내도 안그래도 그럴려고 했다는 눈신호를 보내 옵니다. 재활용을 주섬주섬 집어 들고 부부는 잠깐의 탈출을 합니다. 재활용을 버리고 집앞 커피숍에 마주 보며 앉았습니다. 새벽에 출장을 다녀온것 뿐인데 며칠은 못본것 같은 느낌에 아내와 하루동안 각자 있었던 일들을 폭포수 처럼 꺼내 서로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깔깔대며 웃다가 진지해졌다가 미소짓다가 저는 아아를 한모금 아내는 뜨아를 한모금 마시며 잠깐의 침묵의 시간도 가집니다.
뜬금없이 아내가 한마디 건냅니다. "오빠 이제 영업에 날개를 달아 줄께. 아이들 키우는건 이만 하면 됐어. 이제 당신없이도 아이들이 좀 컸으니 잘 할수 있을것 같아. 나가서 돈좀 더 벌어오면 안되?"
항상 일을 더하고 싶어도 가족을 위해 아내를 위해 일을 더 만들지 않고 집으로 달려 왔던 나인데 오늘로써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것 같습니다. 무의식중에도 일을 최대한 빨리 마치고 집으로 향하게 했던 세포들이 순간 갈곳을 잃어 하는게 느껴 졌습니다. ㅎㅎ "생선 사라지는 속도를 보고 돈을 더 벌어야 겠다고 생각 했는데 잘됐어 그럼"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의 바람이 어제와 다르게 많이 선선해 졌습니다. 아내와 팔짱 끼고 나란히 걷는 순간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자리를 더 굳건히 하는 그림을 마음속에 그려 봅니다. 하나의 마음으로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가정이라 생각하고 10년을 달려 왔는데 이제는 부부가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더 확장해가는 두번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