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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호 작가 Dec 29. 2021

골프 하이라이트

실패를 받아들이는 마음

집에 11살, 10살, 9살, 7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언제부터 TV를 보지 않게 되었다. TV의 주도권은 항상 아이들에게 있었고, 내가 무엇을 보려 하면 마치 먹이를 보고 달려드는 짐승들처럼 아이들의 강한 욕구 표현에 뒷걸음질 치며 리모콘을 살기 위해 반대쪽으로 먹이를 던지듯이 무리 속으로 던져 주고 빠져나왔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내는 "네명의 아이 키우면서 TV 볼 정신이 있어?"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굳이 해석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응~ 정신이 없어~!"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을 가면 오롯이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TV리모콘을 쟁취한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리모콘을 쟁취한다는 단어가 맞아 싶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쟁취의 순간이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에서 말이다. 


케이블 채널은 수백 개지만 무상으로 제공하는 영화도 수십 개지만 나는 골프 채널을 튼다. 그리고, 프로 골퍼들의 한 샷 한 샷을 감상한다. 영화를 보며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 몰입감을 더 주듯이 골프도 마찬가지다. 첫 티박스에 올라가 티업을 준비하는 프로골퍼의 마음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이 떨림은 그 골퍼의 떨림일까? 아니면 만년 보기 플레이에의 연습부족을 여실히 보여주는 첫 티샷의 떨림일까? TV 속 프로골퍼가 혹시 나의 아바타 인건 아닌가? AR증강현실 속에서의 골프는 어떤 모습일까? 순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프로골퍼의 샷은 임팩트때의 타구음이 다르다. 클럽해드로 가드다란 티위에 올려놓은 공을 치면 쩍~하는 소리가 난다. 한때 나도 프로 골퍼의 스윙이나 스코어를 따라 하려는게 아니라 그 타구음을 따라 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늘어만 가는 타수에 어쩔 수 없이 타구음 따라 잡기는 포기했다. 태어날 때부터 프로골퍼로 태어난 사람들과의 차이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가 치는 타구음은 그냥 그저 맑은 소리다. 타구음을 따라잡는 꿈을 포기했더라도 TV 속에서 나오는 타구음은 들을 수가 있다. 그걸 들으며 대리 만족한다. 지금 스윙을 하는 사람은 프로골퍼가 아니가 AR속의 나의 아바타.. 또 고개를 흔들어 나를 깨운다. 


아무튼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재미있는 게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지만 유명한 선수들이 카메라의 분량을 독식하기 마련이다. TV 중계도 결국 유명인이 많이 나와야 시청률도 올라가고 광고도 많아지니 어쩔 수 없지만, 세계 탑 랭크된 골퍼들의 스윙은 흠잡을 때가 없다. 트러블 상황에서도 어찌나 잘 치는지 한 번은 카트 패스 위에 있는 공을 롱 아이언으로 치는대도 잔디가 아닌 딱딱한 콘크리트 위에서 지면을 치지 않고 정말 1mm 차이로 공만 치는 걸 보면 또 그걸 클로즈업 앤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 걸 보면 그냥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와~~~ 침뚝뚝..


하지만, 가끔씩 전세계에서 최고로 골프를 잘 친다는 선수들도 실수를 한다. 어이없는 공을 치고 고개를 떨구고 물에 빠져서 해저드 벌타를 먹게 된다. 골프 대회는 대부분 4라운드 경기를 한다. 1,2라운드에서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골퍼들의 이름도 가끔 1위에 올라 가는 걸 볼 수 있다. 오히려 유명한 골퍼들은 중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3라운드 마지막인 4라운드에 가면 결국 유명한 선수들의 이름이 탑 10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급 선수들도 얼만큼 실수를 줄이느냐가 골프의 성공 방식이라 생각한다. 가까운 퍼팅도 놓치며 괴로워하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수천번 수만번 연습을 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1m도 안 되는 거리의 홀컵에 공을 땡그랑 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체 라운드를 보면 그 속에 골퍼들의 마음 상태를 조금은 엿볼 수 있다. 찡그리는 표정에 나도 같이 찡그리게 되고 홀컵을 한 바퀴 돌아 똑 떨어질 때 안도의 미소를 짓는 모습도 똑같이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하이라이트는 보지 않는다. 짧은 시간을 보더라도 중계영상을 본다. 하이라이트는 잘하는 모습만 담아서 짧게 요약한 것이니 그것만 보게 되면 그 선수들이 모든 샷을 완벽하게 쳤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 골프도 그렇지만, 인생도 하이라이트로 다 보여 줄 수 없고 잘하는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골프만을 생각하며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실수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게 정상이라는 마음의 안도를 느끼게 된다. 그들도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누가 그 실수와 실패들을 잘 극복하고 발판 삼아 더 성장하느냐가 인생의 중요한 열쇠이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배운 사람이 있을까?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억만장자가 된 부자가 있을까? 성공한 사람들의 현재의 화려한 모습에 희망을 잃지 말고 그들이 어떻게 노력했고, 실패했고, 또 그 어려웠던 시절들을 어떻게 활용하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는지에 집중해한다. 


실패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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