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음의 경계에서

by 수빈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왜 이러는 걸까. 이럴 수록 더 고립될 뿐인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도 아니고 누가 먼저 손 내밀어 준다고. 저 사람 왜 저러나, 진짜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되어 질 뿐인데. 진짜 웃기게도 나는 늘 반복한다. 매년. 지치고, 지치고, 지쳐서. 이정도면 이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나의 잘못. 선생님은 ‘나의 감정’을 자꾸 생각해보란다. 잘 모르겠다. 질투인가, 화인가, 어디서부터 오는 불편함인가. 도대체 왜 불편해하는 걸까. 자꾸자꾸 불편하고, 불편해지고, 더 심해진다. 입을 닫게 된다. 왜 그럴까. 나도 도저히 모르겠어서 더 답답하다. 월요일에 선생님에게 물어봐야겠다. 도대체 이 감정은 무엇인거죠.


// 0727_갈아앉는마음(일기 발췌)






나는 젊프(대구청년센터가 운영하는 청년 대상 프로그램 홍보 사이트)를 통해, 집 근처 청년센터에서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회기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 내게는 생명의 동아줄 같았다. 사실 상담이 처음은 아니었다. 20대 중반, 회사 문제로 꽤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보스로부터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만 참아라, 네가 참고 넘겨라. 그 말에 겉으로 수긍했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도무지 받아들일수 없어서 너무나 불편했다. 결국 사설 상담소를 찾아갔고, 10회 상담이 기본이라 결제를 한 뒤 두 번째 상담까지만받고 그만두었다. 그때 깨달았다. 각자마다 ’잘 맞는 상담사’는따로 있다는 것을.


그런 경험 때문이었는지, 이번에도 퇴근 후 상담하러 가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혹시 이번에도 기대가 좌절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컸다. 청년센터 구석에 마련된 아주 작은 상담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마주했다. 문득, (물론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 관련 피해자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나는 정신과에서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했고, 겨우 봉합해 두었던 상처를 다시 내 손으로 헤집었다. 새로 난 상처마냥 피가 벌컥벌컥 쏟아졌다. 상담 끝날 때까지 나는 울음을 멈추지 못 했고, 선생님은 그런 내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본인이 현재 가족센터에서도 상담을 진행 중이라며, 10회기 프로그램이 있으니 참여해볼 생각이 있으면 신청하라고 권유해주셨. 우리는 청년센터에서 2주, 이어서 가족센터에서 10주, 총 12주 동안 함께했다.





1️⃣ 언젠가였다. 꾹 눌러왔던 화를 터트렸던 그 날, "왜 필요하지도 않은 도움을 줘놓고는 도와줬다고 말하냐, 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날선 말을 뱉은 기억이 있다. 오늘 상담을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때의 나처럼 나 또한 누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도와줬다 생각하고 있었다고. 혼자만의 착각으로, 배려했다 생각했는데 나는 배려받지 못 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처럼 "나는 별로 도움받았다 생각하지 않는데?" 하면 나도 할 말 없다. 내가 그리 말하니 상담선생님이 주고 싶은 마음은 내 것이고, 배포 좋은 사람마냥 건너간 마음은 깔끔히 정리하라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혼자 착한 척 하고 있었던 거다.


2️⃣ 병원을 바꿨다. 깔끔한 로비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책이 있었다. 잠깐 살펴보다 들어간 진료실엔 무한도전 한의사 선생님 같은 푸근한 의사가 있다. 그는 잘 왔다고, 해결할 수 있다 했다. 나는, 정말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중략)


5️⃣ 선생님은 내가 반드시 단단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런 힘이 있다고. 충분히 성찰하고 있으니 이제 행동하면 된다 했다. 응원받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외면 당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나는 대답했다. 진짜 그렇게 되고 싶어요. 한 달 뒤의 나는, 조금이라도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 인스타그램 5월 피드 발췌




4️⃣ 혼자여도 온전하다고 생각한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때의 나는 무슨 힘으로 단단했던걸까. 마음이 넉넉했던 걸까. 그래도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 들어서 최근에는 기분이 좋다. 왜 고해성사를 하러 사람들이 가는 지 알겠다. 1주일에 1번 아무에게도 하지 못 하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선생님은 가차없이 내 숨기고 싶은 부분을 찌른다. 이런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지리라 생각한다.


5️⃣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토해낼대로 다 토해내서 그런건지, 아님 수신자가 정해져있어서 그런건지 막상 할 말이 없다. 감상적인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좋은 신호인 거 같다. 건강해지고 있는 거 같아서 좋다. 다들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 인스타그램 6월 피드 발췌




5️⃣ 마음이 요동치는 한 달이었다. 분명 잘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 하게 뒤통수를 맞으니 속수무책이었다. 생각보다 장기전이 되겠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선생님은 '기대에 돌아오지 않는 속상함'이라고 했다. 나는 수긍했다. 마음을 내어줬는데 내가 느끼기에 상처로 돌아오니 더 크게 느껴지나보다. 내가 상처받지 않을만큼 내어주고, 내어주더라도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어려운 숙제다.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을 잘 모르겠다. 그저 바라건데, 이 터널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 인스타그램 7월 피드 발췌







나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정신의학과를 추천받았다. 이전 병원과는 달리, 세트장처럼 세련되고 깨끗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한도전에 나왔던 한의사처럼 푸근한 인상의 의사가 나를 반겼다. 나는 또 다시 반복해서 얘기했고, 또다시 울었다. 지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겪었던 소화 장애를 토로하자, 의사는 내게 더 잘 맞는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 층별 안내판에는 층별로 병원 이름이 붙여져 있었는데, 여전히 정신의학과 버튼을 누르는 건 긴장되었고,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해 움찔했다.


다행히 새 약은 부작용이 없었다. 다만, 이전처럼 극적인 변화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사무실의 사소한 소음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다행히 외부 일정이 많아 사무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주말동안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지만, 그런 일상 속에서도 월요일이 기다려졌다.


선생님의 모든 말을 온전히 수용할 수는 없었다. 내게 일어난 일을 말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끔 엇나간 대답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선생님은 내가 외면하고 싶은 부분을 정확히 찔렀고, 나는 저항없이 정면으로 공격을 받았다. 내 오른편엔 항상 두루마리 휴지가 놓여 있었고, 상담을 마친 후엔 얼굴에 붙은 휴지를 떼는 일이 자연스러운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매주 쌓아두었던 감정을 쏟아내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도 예전처럼 나를 짓누루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고, 글을 쓰더라도 감정적 단어보다 상황을 서술하는 단어가 많아졌다.


그렇게 12주의 상담이 끝났다. 해결된 건 하나도 없었지만, 딱히 방법도 없었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또 어떻게든 지나간 2024년의 상반기를 떠올리며, 남은 하반기도 그렇게 흘러가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때때로 나의 낙담은, 어쩌면 이상할 만큼 근거 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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