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상담을 종결하기 전,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추천해주셨다. 정부에서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나는 정신의학과 진료 기록과 상담 이력이 있어 신청 대상이 될 거라고 했다. 원한다면 선생님과 상담을 계속 이어갈 수도 있었고, 아니면 새로운 상담사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했다.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06040800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소개 페이지>
사실 마음 한켠 ‘다른 상담자와도 만나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더 컸다. 몇몇 병원을 알아보다 결국 포기했다. 그 무렵, 정신의학과에서도 “이제는 약을 끊어도 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스스로도 이전보다 많이 괜찮아졌다고 느꼈기에, ‘이제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 속에서 상담도, 약도 그만두게 됐다.
그리고 나는, 무리하게 바쁘게 지냈다. 마치 일정에 여유가 생기는 게 두려운 사람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획하고 만들어냈다. 늘 고민만 하던 대학원 진학도 덜컥 저질러버렸다. ‘왜 또 바보같이 자신을 혹사시키는 스케줄을 만들었을까?’ 하는 후회와, ‘그래도 그 바쁜 시간들이 잡아주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렇게 나는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엔 대학원 수업을 듣고, 목요일 저녁엔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그 와중에도 국가자격증 시험을 준비해 결국 합격했고, ‘오늘의 시리즈’ 모임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응이 줄었고,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됐다. 새로운 환경,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는 평소 같았으면 분명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텐데, 오랜만에 시작한 공부는 뜻밖에도 즐거웠다.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하게 되다 보니 배울 것도 많았고, 매주 쏟아지는 과제에 시간을 쪼개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지만 그조차 기뻤다.
하지만 정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피했고, 누군가 내게 직접 한 말이 아님에도 이유 없이 상처받곤 했다. 관계를 멀리한 건 나였지만, 정작 아무도 내 안위를 묻지 않는 현실에 괴로움을 느꼈다. 스스로 노력했다고 믿었는데, 그 모든 시간이 무색할 만큼 바뀌지 않는 일상 앞에서 다시금 좌절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이 헛되이 흩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바뀌겠다고 마음먹은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다시는 같은 자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내 안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