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까지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먼저 읽고 난 뒤, 『내게 무해한 사람』(2018년)에서 다시 만난 문구가 하나 있다.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내게 무해한 사람』 중 단편 「손길」에서 (235쪽)
이 표현은 훗날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2023년)의 제목이 된다. 다시 말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문구는 나중에 붙여진 게 아니라, 이미 초기 작품 속에 존재하던 언어였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먼저 읽었기에,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이 문구는 '회상'이 아니라 '근원'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한 표현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떤 말은 이후의 작품을 낳기도 하고, 혹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머물던 언어가 뒤늦게 하나의 주제로 완성되기도 한다.
최은영에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란 문구는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그녀가 오래도록 천착해온 정서는 늘 비슷한 결을 지닌다 — 상처 입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 이해의 한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어슴푸레 감싸는 연민의 빛.
그 점에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그녀의 문학을 꿰뚫는 하나의 핵심 이미지로 읽힌다. 두 작품을 연이어 읽다 보면, 서로 다른 작품임에도 하나의 정서적 세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느껴진다.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희원은 글쓰기 수업을 계기로 한 젊은 여성 강사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 그녀의 글과 삶을 동경하며, 자신의 글쓰기와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지만, 정작 멘토라 여겼던 강사는 공부와 대학원에 대해 회의적인 말을 건넨다. 그 말은 악의 없이 던져지지만, 희원에게는 실망으로 남는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마주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희원은 그 강사와 같은 위치에 선다. 그리고 그제야, 과거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아주 희미한 빛’은 누군가를 즉각적으로 비추는 구원의 빛이 아니라, 같은 어둠을 지나온 뒤에야 겨우 도착하는 인식이다. 이해는 늘 늦게 오며, 그래서 빛은 희미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이 수록 단편의 제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통 단편집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예외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은 단편 「고백」 속에서 미주가 진희를 회상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가 한 인물의 대사에서 제목을 따왔듯, 최은영 역시 문구 한 줄을 집약된 감정으로 끌어올려 책의 얼굴로 삼았다. 그 선택은 작가의 시선이 단편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전반적인 인간관계의 결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고백」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은 따뜻한 위로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배려와 평화를 뜻하지만, 서사의 맥락 속에서는 오히려 방조와 침묵, 그리고 책임의 회피를 드러낸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만든 자기기만이자, 애증의 고백이다.
최은영은 이처럼 평범한 표현에 복잡한 감정과 도덕적 딜레마를 압축해 넣는다. 그녀의 표현은 늘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관계의 가장 아픈 지점이 응축되어 있다.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은 치유의 언어가 아니라, 그 이전에 마주해야 하는 부끄러움과 상처의 이야기다.
최은영의 소설은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기보다 먼저 멈춰 세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보이는 것은, 타인의 상처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자신의 얼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