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중형 오토바이가 사무실 앞에 멈춰 섰다.
이내 오른 다리에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헬멧을 쓴 남자와
헬멧을 쓴 여자가 들어섰다.
근처에 나와 있는 집들 중 방 2개가 있는 전세를 찾으신다.
가진 돈은 오천만 원. 전세금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듯하다.
반 지하방을 겨우 구할 수 있는 금액이다.
감안하고 오셨는지 지하방이라도 괜찮으시단다.
한참을 걸어 안내해 드렸다.
대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데,
여든 넘으신 현 세입자 두 분이 살고 계신다. 낮엔 주로 바깥 어르신만 계셨다.
밝고 환하게 보여드려도 할 똥 말똥인데, 잘 보인다며 불도 못 켜게 하신다.
집을 보는 사람들도 불편한지 후다닥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어르신들이 갈 곳이 마땅찮아 나가는 걸 꺼리나 했다.
임대인 분과 얘기해보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먼저 말을 꺼내셨다니,
코로나 때문인가.
두 번째 집을 보여주러 갔다.
여기도 지하라 계단을 내려가야 방이 있다.
방 안내를 하려고 고개를 돌리니 남자분이 손으로 이마를 만지고 있다.
그 사이 콩! 찧었나 보다.
미리 알려주지 못한 미안함에 내 입술만 깨물었다.
반 지하에서 많은 사람들이 뜨악! 하는 곳이 화장실이다.
보통 방이나 거실 겸 부엌보다 화장실이 높다 보니 천장 높이는 낮아진다.
누가 봐도 사용하기 많이 불편해 보인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온 이라면 말이 없으시다.
조용히 나와서 집과 관련된 사람이 없을 때 말한다.
영화 장면이 생각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 주변엔 단독, 다가구, 다세대,
아파트, 상가, 작은 공장 등 부동산의 종류가 다양하다.
초보 중개사로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복잡하고 어렵기만 할 거 같아 걱정만 많았다.
이 분야의 일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는 요즘에야 조금 알 거 같다.
한 분야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선 그것만 배울 수밖에 없을 테고,
다양한 물건이 있으니 넓고 깊게 볼 수 있단다.
경험할 수 있는 사례가 많을 테니
어떤 물건이든지 일해 나갈 수 있고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거였다.
아파트만 주로 살다 집을 보여주러 다니며 다양한 집 형태도 알게 됐다.
결혼 후 2년 연립에 살다 그 후 계속 아파트에 살았으니 25년쯤 되었나(?)
남편 직장이전으로 온 가족이 울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강남 테헤란로에 회사가 있어 가까운 강동구 성내동에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새 아파트 1년 살고 판돈으로 서울 아파트 작은 전세밖에 구할 수 없었다.
서울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방에서 서울에 들어온 것만도
대단한 일을 마쳤다고 여겼다.
문제는 다른 데서 일어날 수 있었는데....
2월 달이었니 작은 아이 4학년 말, 어느 날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촌~~~놈 촌~~~~ 놈 촌~~~놈”
부른다는 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소리를 냈다.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지 못하고 시골 사람들의 로망인
서울 가면 모두 출세한 줄로 여겨줄 거라 우쭐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허나, 아이는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 아파트 대단지에서 이사 온 나한테 자꾸 애들이 촌놈이라 불러요.
반 지하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더 촌놈이더구만요.”
태권도를 다녔던 아들은 나를 어머니라 부르던 때인데,
친구들 집엘 놀러 가보고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다.
반 지하라는 곳엘 처음 들어가 봤을 테니.
시골엔 반지하가 없었으니.
사회 시간, 선생님이 아파트 대단지는 도시라 했다나(?)
분명 자기는 도시에서 이사를 온 건데, 친구들이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투였다.
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아들 뉘 집 아들인고(?) 싶더라니.
괜한 걱정을 했다 싶어
“그래, 그래, 니 말이 맞다!! 글치 글치 우린 대도시에서 이사 왔지.
누가 누구한테 감히 촌놈이라 하는 거야!!
그러면서 우리는 막 웃었던 기억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근처 근린공원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란 걸 어스름한 시간에 하는 거다.
아들과 구경차 나가 있는데, 어디서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이
우르르 떼로 몰려다니다 아들을 발견하곤
“촌~~~놈, 촌~~~놈!”
부르며 깔깔대는 거다.
엄마인 내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몰랐겠지.
안다고 한들 내가 나서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울 아들은 도시 놈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사회성이 좋았는지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에서 반장을 하고, 서울 아이들과 녹아들면서
촌놈이란 소릴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구나 싶다.
오늘 오신 분은 이 집이 인연이 아닌가 보다.
기생충이란 영화를 봤어도, 화장실의 천장이 낮아도
출입문이 낮아 머리를 콩! 찧어도
아무렇지 않을 사람을 만나면
그 집과 인연이 될 테다.
그러고 보니 좋고 안 좋은 집은 없는 거 같다.
내가 들어가서 이만하면 괜찮겠다!
이 정도면 우리 형편에 맞겠다 싶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집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