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똥 됐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by 서비휘

지난 4월 봄볕이 대지를 들썩이게 하던 어느 날,

텃밭에 심을 모종을 사러 그이를 따라 나섰다.

그이는 주말농장의 초보 농사 3년 차다.

첫 해는 13제곱미터 땅에 상추만 종류 별로 심어 주말마다 갈 때면

한 잎 한 잎 뜯어내어 지인들 나눠주고 나눠줘도

자라는 상추에 묻혀 살았다.

그 기억 때문인지 이번에는 이 것 저 것 여러 종류별로 잘도 골랐다.

방울토마토, 고추, 가지, 애호박, 옥수수, 상추, 당근, 감자 등등.

나는 토란 모종이 눈에 띄었다.


사무실에 토란잎과 닮은 고놈은 나와 같이 출근했다.

안간힘을 쓰며 한 잎씩 싹을 틔울 때마다 대견했다.

내가 1도 몰랐던 새로운 일을 배우고 익히는 만큼이나 고군분투함이 느껴졌다.


어느 날, 물을 주면서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니 뿌리에 힘이 생겼는지

그 연두색과 진초록이 어우러진 이파리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돌돌 말려 있던 잎이 펼쳐지는 시간에 따라 오묘한 다른 색이 눈부시기까지 했다.

그 이파리와 토란잎이 닮아 보여 2포기를 집어 들었다.

그 이는 토란 같은 건 텃밭에서 잘 자라지 못한다며

‘진즉 아서라!’라는 듯 두 손을 세게 내저었다.


모종 파는 아주머니는 둘의 실랑이가 끝이 없어 보였던지

텃밭에 심어 주면 잘 클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하여 당당히 우리 텃밭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대문 역할을 담당 시켜주었다.

정성들여 잘 키워서 토란대는 말려 두었다가 육개장 끓일 때 넣어 먹고,

토란은 들깨 듬뿍 갈아 넣고 토란국을 끓여 먹을 요량이었다.


가끔씩 주말 농장에 갈 때면 토란이 제법 자리를 잡고

문지기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게 느껴졌다.

고구마나 감자알처럼 토란이 대롱대롱 많이 달릴 것을 상상하며 물도 듬뿍 주었다.

무더웠던 여름 뙤약볕도 받아내고, 가을 선선함에 잎이 조금씩 갈색빛을 띄고 있었다.

2주 전에 갔을 때 그 이가 토란을 캘 때가 됐다고 했다.

토란대를 잡고 뽑으려고 잡아 댕겼다.

쪽파나 대파 뽑아 올리듯 줄기를 잡고 쭈욱 댕겨 올리면 금방 빠져나올 줄 알았다.

옴싹달싹도 하지 않았다.

땅딸한 낮은 키에 허벅지 딴딴한 체조 선수마냥 버티는 힘이 대단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나,

텃밭에 더 있고 싶어하는 거 같아 좀 더 두기로 했다.

토란 알도 더 여물어지고 줄기 또한 단단해지길 기대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지난 주 혼자 다녀온 그이에게 토란의 안부를 물었더니

아주 잘 지내고 있음을 전해주었다.

이번 주엔 토란을 캐자며 농사에 큰 도움 안되는 나를 데리고 갔다.

토란 주인은 나니까 직접 캘 기회를 주고 싶은 그이의 맘이 느껴졌다.


지난 번 버티는 힘을 봐선 밭에 조금 더 두고 싶었지만,

마냥 그대로 두면 안된다는 거였다.

잘 익은 토란대의 이파리를 떼 내고 줄기는 삶고 햇볕에 잘 말려 추운 겨울날,

육개장 끓여 먹을 생각을 하니 속이 뜨듯해지는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20여분을 달려 남양주에 있는 텃밭에 도착했다.

4월 텃밭 푸르름은 풋내음이었다면, 가을 텃밭의 푸르름은 눈부심이었다.

배추와 무, 청갓, 홍갓의 싱싱함으로 눈이 시릴 정도였으니.


우리 토란들 잘 있나 싶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토란을 마주한 나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그 단단한 근육질의 몸은 어디로 가고 물컹거림 가득한 채

거무튀튀한 빛으로 쓰러져 있었다.

'단단함을 뽐내던 녀석들, 하루아침에 이렇게 무너져 내려

풀썩 주저앉을 수 있구나!'

무식함으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 지경으로 만든 거 같아 많이 속상했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 들으며 정성 먹고 자란 녀석들,

"아이, 아끼다 똥 됐다!"

안타까운 맘을 안고 주말농장 한 바퀴를 쭈욱 둘러보았다.

주말농장 안에는 가꾸는 주인의 마음에 따라 땅에 품어지는 녀석들이 제각각 다르다.

돌다보니 토란의 두 녀석들처럼 같은 꼴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무성하게 뻗쳤던 고구마 줄기와 붉고 매운 몸을 키워냈던 고추대가

물컹하면서 시꺼멓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녀석들과 다르게 한 쪽에선

‘이 따위 밤추위 쯤은 아주 상쾌한 걸. 시원하고 좋~다!’

푸르게 더 푸르게 싱싱함을 뽐내는 가을 채소들이 알을 채워가고 있었다.

땅이 있다고해서 아무 때나 심고 씨를 뿌린다고 자라는 것이 아니고

수확 때가 있는 것인데, 대충의 감으로 더 둔다고 여물고 실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때를 놓치면 한 순간에 훅 간다는 걸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키울 때는 그 식물이 싹을 틔우거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적정 온도를 주인이 맞춰 준다고 한다.

노지에서 크는 녀석들은 절기에 맞게 씨 뿌리고 모종을 심어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심고 거둬들여야 함도 알았어야 했거늘.

토란이나 고구마, 고추대 녀석들이 온 몸으로 시위하듯 보여주고 있다.


아깝고 아쉽게 토란대는 수확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토란은 캘 수 있었다.

새로 알게 된 거라면 고구마나 감자 알 캐듯

올망졸망 토란이 딸려 나오지 않더라는 것.

줄기 끝자락 땅 위와 땅 속의 경계점에 빙 둘러 조랑조랑 몇 알이 달려있었다.

토란 2포기 심어 요만큼 알았으니

내년엔 6포기 늘려 심고, 늦지 않게 거둬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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