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신체는 언제나 신비롭다. 어느 부위든 열 일 안하는 곳이 없을 터. 몸 안과 밖 어느 곳이든 움직임이 있다는 건 살아있음의 흔적이다. 손톱 밑 작은 가시하나에도 온 신경이 그쪽으로 가 있듯 어느 하나 소중하고 중요치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몸 중에도 제일 잘 보이는 얼굴이라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눈, 코, 입, 등 서로 자기가 없으면 안 되는 가장 소중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동화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만 봐도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신체의 일부분 중 누가 더 많이 활동하는지를 묻는다면 의견이 분분하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 똑똑히 보았다. 뭐니뭐니해도 두 손이 아니었나 싶은 거다.
연세를 거꾸로 보내시고 늘 활기차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임대인 분이 계신다. 오다가다 자전거를 사무실 앞에 세워두고, 새로운 원룸이 나왔을 때 소식을 알려주러 직접 행차 하신거였다. 2월 말쯤 방 3개가 나올 거 같다며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신다. 이 분 역세권 근처 신축 가까운 원룸 세 채를 가지고 계신 자산이 넉넉한 분일거란 짐작만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최선의 삶으로 부를 이루신 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항상 즐겁고 활력이 넘친다. 젊은 시절 건설현장에서 전국을 다니며 이름 대면 알만한 아파트 건축에 참여를 하셨다. 이름 하여 잘나가던 시절, 크고 작은 아파트 12채를 사들이는 횡재와 재수 옴싹 붙던 나날들.
아파트 한 채 사서 살다가 팔고 조금 더 넓고 깨끗한 새 집으로 이사 다니던 소시민인 나. 그마저 서울로 이사 오니 덥썩 사기도 쉽지 않았던 집이라는 터전을. 내가 여지껏 살면서 전혀 해보지 못한 것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오신 분을 눈 앞에서 대면하고 있는 거다. 집을 사고 사고 사고 또 사도 살 게 많았던 집들을. 같은 나라 다른 삶이 존재했던 거지.
건설현장 일을 하다 허리를 크게 다친 후론 원룸을 지어 임대사업이 낫겠다는 판단 하에 아파트 12채를 팔아넘기는데, 3년이 걸리셨단다.
아파트 12채를 보유한 적이 있으신 것이나, 신축 원룸 3채나 지어 임대사업 하고 계신 지금까지 부를 축척해 오신 비결이 궁금했다.
듣고 보니 아주 간단했다. 남에게 피해 주는 일 안하면 복을 받는다고. 복을 받다보면 집을 사고 또 살 수 있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렵다. 남한테 피해주지 않는 일이라 나도 모르게 피해주는 것이 많은 건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평소 눈여겨보지 않았던 양 손이 눈에 들어왔다. 씻어도 금방 씻기지 않을 손톱 밑에 낀 때가 말해 주고 있다. 비결은 그 곳에 고스란히 담겨있고 알알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부지런함. 성실함, 검소함. 근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라고.
“사장님, 손이 왜케 시커매요? 일하시다 오셨어요?”
두 손을 자랑스럽게 쫘악 펼쳐보이며
“일 많이 했쥬. 원룸 옥상 위에 인공 흙이랑 섞어 시금치랑 감자랑 심어놨시유. 1층에는 미끄럼 방지용으로 공사도 싸악 했지유.”
“혼자서요?”
“그럼 혼자 하지, 그거 얼마 된다고 같이 해유?”
“오늘밤 한차례 큰 추위가 온댔는데, 감자 심어놓은 거 얼어 죽지 않을까요?”
“안 죽어요. 지금 심는 것은 조금 깊게 심어요. 난 젊어서부터 워낙 일을 많이 하던 사람이라 잠시도 가만 못 있어유. 하다못해 여기저기 고칠 것이 없는지 살펴봐서 뜯어 고치고...”
그러다보니 두 손이 깨끗할 새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공흙이란 것도 있구나. 웬지 인공흙이라니 듣는 것만도 꺼림직한데... 인공 흙보다 자연 흙이 낫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있다.
인공 흙은 모래를 뜨겁게 달궈서(?) 아주 가볍게 만든 흙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 보니 화학품으로 만들지 않았을까란 생각은 무식한 거였다.
나와 다른 삶을 산 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잠시나마 누군가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다. 건설현장을 같이 누볐고, 원룸 건물을 짓는 현장에선 만감이 교차하는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두툼하고 손 때 묻은 손으로 휴대폰 속 잘 저장해 둔 전교 회장의 손주녀석 보여줄 때의 터치 실력은!
꿈틀꿈틀 살아 춤추는 날렵함이었다. 다음에 볼 때는 손톱 밑의 푸릇푸릇 생명도 따라오겠지.
[박완서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나의 때 묻은 손톱을 간직하면 열 손가락 손톱 밑에서 푸릇푸릇 싹이 돋지 않을까. 내 손톱 밑에 낀 것은 단연 때가 아니라 흙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