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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r 18. 2021

신박한  주문 방법이

알고 보니 꽝이었으니.

“엄마, 주문한 책 왔던데. 이제 엄마 혼자서 주문도 잘~하네.”

네 살 아이 혼자 신발 신고 일어선 아이한테 칭찬하듯 말하고 있다.

“어, 그거, 그게...”


퇴근하기 전 내 앞으로 도착된 택배가 누가 봐도 책 크기였다.  

아드닝과 따닝 둘이 서로 에미 책 주문에 동참되었는지 물어봤던 모양이다. 둘 다 아니었으니 그렇다면 에미 혼자 성공인 걸 대견해하며 ‘우리 어무이 마이 발전했다~~~~~~~~~~~~~~~’ 말도 오갔을 테다.   

 

“아, 우리 소모임 팀원이 개발자라서 야심 차게 올려준 주소로 들어갔더니 간편 카드 입력에서 딱 막힌 거야.”

그거 대개 쉽고 간단하다며 둘이 합창하듯 말한다.

“오픈 톡방에 가서 주소와 신상 알려드리고, 카카오톡으로 계좌이체했는데...”

“그럼 그렇지. 히야 그런 신박한 방법을?”

어이없어하며 그게 무에 그리 어렵냐는 듯 생각하는 게 내 촉수 가득 느껴졌다.   

  

 아이폰과 애플 워치를 차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구석구석 들어있는 장치 하나 빼놓지 않고 사용하는 디지털 아부지와 전화 걸기와 받기, 문자와 카톡, 사진 찍기용이면 왜 스마트폰이 필요한지 의문스런 아날로그 어무이를 둔. 우리 애 둘은 동갑으로 살고 있는 엄마, 아빠를 보며 참 많은 뒷담화를 할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디지털 세계에서 먹거리부터 제약을 많이 받긴 하다. 집 앞에 써브웨이 매장의 빵이 맛있어 지날 때면 따닝이랑 같이 들어가곤 한다. 혼자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을 한 뒤론 불쑥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빵부터 시작해 마지막 소스를 뿌리기까지 쭈욱 따라가며 읊어줘야 하는데, 음음... 하다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손에 맞춰 주문 속도가 더뎌 뒷사람 기다림의 방해가 될 거 같은 거다. 따닝은 초를 다투듯 움직이는 손에 장단 맞추듯 읊음의 속도가 흐트러짐 없는 걸 보며 더 못 들어가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 한 어른이 햄버거가 먹고 싶어 매장에 들어갔다 무인 주문기 키오스크를 입력하지 못해 되돌아 나왔다는 이야기. 돌아 나오면서 딸에게 보낸 “난 이제 끝난 거 같아....”문자가 더 슬프게 했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얘기를 기사로 내 보낸 거 아닌가 싶었으니.    


작은 식당엘 가도 입구에 설치된 무인 주문기를 사용해야 하는 곳이 늘어난다. 매일 점심 먹으러 이 식당 저 식당 찾아다니면 익힐 기회가 더 많을 텐데, 앙증이 수첩에 적어 주시고 한 달 치를 계산해 주고 있으니 한 번이라도 익힐 기회가 사라져 좀 아쉽긴 하다.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인 디지털 세상을 따라가려니 늘 버벅거린다. 어쩌겠는가. 내가 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한 세상의 흐름에 따라야지. 그러고 보니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어찌 알고 컴퓨터 배우러 오라고 문자 왔던데, 거기 가서 또 한 발 떼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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