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Mar 10. 2021

오늘밤도 운다. 암나무도 수나무도

은행나무야~  많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길을 걷는데 허전했다. 있어야 할 곳에 뭔가 빠진 것이 이상했다. 아침 출근길, 분명 자리했던 것인데 퇴근길 사라졌다. 다시 보려면 30년, 50년 백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다. 혹시 땅속에서나 가능할지는.   

  

길가 가로수로 미관, 경관도 담당하며 온갖 미세먼지, 차량 매연 등을 감내해 왔던 거대한 은행나무. 단박에 베어 없어졌다. 나이테로 지나온 세월이 얼만큼이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나무둥치를 베내고 속살이 바닥에 붙었다. 가지만큼 깊게 뿌리내리고 있을 텐데, 일이 커질 것을 염려한 건지 뿌리는 남겨두고 나무줄기와 가지만 싹둑 베어 내버렸다.    

병든 것도 아니었고,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었다. 멀쩡히 잘 는 큰 나무를 군데군데 이빨 빠진 것처럼 베 버린 이유는 뭘까. 며칠 전 내린 봄비가 새 이파리 틔울  생명의 물임을 알기에 힘주어 한껏 빨아올린 것도 한순간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침 출근길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로 빙 돌아가지 않는 한 그 도로를 지날 수밖에. 하나 둘이 아니었다. 제법 많이 베어냈다. 여기도 여기도 하며 안타까운 발걸음을 떼놓고 있었다.


가로수 심어진 끝부분쯤 다다르자, 베어낸 나무 잔가지와 몸통 살의 뜯긴 부분을 거대한 폐기물 차의 갈쿠리로 집어삼키듯 들어 올리는 걸 보게 되었다.    


사무실 도착해야 할 시간이 빠듯해서 곧장 갈까 하다 문워크 하듯 작업하는 곳 앞에 다가섰다. 아무 죄 없는 나무를 죄 없는 것뿐 아니라 도움 주는 나무를 왜 베어낸단 말인가. 이렇게 한아름 나무를 키우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할 텐데... 지각을 하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았다.  

   

   

----------------------------------------------------------------------------      



  

궁금해하지 말았어야 했다. 묻지 말았어야 했단 말이다. 어젯밤 허벅지 운동을 열심히 한 탓만은 아닐 거다. 휘청했다. 온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주저앉을 뻔했다. 너나없이 인간의 끝을 알 수 없는 이기심과 오만함에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암나무만 자른 거라요. 작년 봄에 꽃 필 때 보면 알 수 있으니 표시를 미리 해 놨죠. 민원이 하도 들어와서요.”    

구청 직원인지 폐기물 처리하시는 직원인지 알 수는 없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채는 내가 더 미운 거다. 편리함을 위해 같이 묵인하는 공범인 내가 말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줄지어 심은 가로수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걸 보아왔다. 공동구가 없는 곳이라 전깃줄에 닿아 불이라도 날까 봐 베어 내거나 더 무성하게 자라게 가지치기를 해 주는 거라 여겼다.     


지난겨울, 눈바람 맞으며 잘 견뎌내고, 올봄에 새싹 틔워 꽃피고 열매 맺을 꿈 꾸고 있을 거란 생각은 나만 하고 있었던가. 이 은행나무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이 슬픈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음을.


열매 맺어 떨어진 걸 누군가 밟아 냄새나는 걸 못 견뎌 민원제기를 했단다. 당장 냄새나는 은행나무를 제거해 달라고. 한두 명이 아니었던 게 결정타가 되었을 거다.    


몇십 년 전, 다양한 질병에도 강하고 오래 사는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었을 테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한 차량에서 내뿜는 매연도 흡수하고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빨아들이고, 우리가 필요한 산소는 맘껏 내뿜는 은행나무를. 거기다 몸에 좋다는 은행 알까지 주는 나무라니. 더 이상 말할 거 없이 눈 씻고 봐도 손색없을 나무였던 거.   

 

어느 해부터인가. TV 뉴스 대서 특보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가로수 은행 알을 먹으면 안 된다고. 중금속이 엄청 많이 검출됐다는 거였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한 알 줍기 힘든 은행 알이 천덕꾸러기가 되고, 늦가을 은행나무 심어진 곳을 지날 때면 은행 알이 발밑으로 곳곳에 굴러다니는 게 애물단지가 되기 사작하던 때가.   

 

떨어진 은행알을 치울 인력이 부족했나. 그 둘레가 한아름인 암나무를 모조리 베어내는 걸로 결론지어졌다는 게 맘이 아팠다. 내 집 앞 눈 치우기처럼 우람한 은행나무의 좋은 점이 더 많다면 자기 집 앞이나 상점 앞 치우기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편리, 간편, 신속함을 쫓는 우리 인간들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일까?    

사람들도 여자 남자가 나고 자라서 사랑하고 살 듯 암나무 수나무가 존재한다면 그들도 사랑 나누며 사는 것이 자연의 순리일 텐데, 우리 인간에게 당장 불편하니 없애버려! 비단 나무뿐만이 아니니 더 가슴이 아려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내사랑 목련화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