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을 가린다는 건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일 게다.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에야 겉으로 보기에 두 아이가 별반 차이나지 않지만 커오면서 많이 달랐다.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큰 아이가 낯가리미 심했던 건 둘을 키운 환경이 많이 달랐음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낳고 백일 지나면서 뭐가 그리 급했는지 어린 아기를 맡기고 일을 다녔다. 화욜과 토욜밤에 할머니 댁에서 데리고 와 1박 2일을 함께 하고 주중은 할머니 댁에 지내는 삶을.
할머니랑 함께 하는 날과 같이 한 시간이 길었으니 아기에겐 당연한 건데, 엄마도 못 알아보고, 자기 집도 낯선지 두리번대는 애기에게 서운해했었다.
둘째는 첫째를 경험한 뒤라 돌 때까진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짧은 생각이 있었다. 적어도 세 돌까진 엄마가 키우고 기관을 보내든 돌봐주는 분께 맡기는 것이 좋았겠다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데... 아무래도 양육자가 달라지면 아이가 받아들임에 있어 일관성이 떨어질 듯.
그럼 공백기가 길어져 경단녀가 되는 건가.
둘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 다른 건지 환경이 달라서인지 비슷한 여건이 아니어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다른 점이라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대면에 있어 우는 아이와 웃는 아이. 열 살이 넘어 낯선 도시 서울로 이사 왔을 때 사투리로 놀림받을까 봐 6개월간 입도 벙긋 못했다는 아이와 등교한 날 친구들 우르르 데리고 오고, 자기한테 촌놈이라 놀리는 녀석들이 더 촌놈 아니냐며 반문하는 아이.
같은 엄마, 아빠를 둔 아이 둘이 달라도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혜롭고 현명한 부모였다면 기질과 성향, 환경적인 차이로 다른 아이를 알아채고 맞춤식 부모가 되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일관된 잔소리로 아이를 변화시키고 바꿔보려 했지 획기적인 방법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았음을.
‘타고난 성격이니 어쩔 수 없어. 바꾸기도 바뀌기도 힘들 거야.’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지나쳐 온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의 한 사례로 알게 되었다.
큰 아이였던 따닝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혼자 알아서 준비해 나갔다. 내가 해 주는 게 맘에 안 들어 더 그랬지 싶은데. 젤 먼저 아침마다 긴 머리를 묶어주고 치장해 주던 것에서 내 손을 떼게 만들었다. 의견차가 커도 너무 컸다. 똑딱이 핀 열 개도 더 꽂아 머리띠를 만들 정도였다. 그러니 머리칼이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애교머리가 살랑살랑 있는 게 이쁠 거 같더구먼, 말하면 잔소리로 둔갑되었다. 6학년까지 이어지다가 중1 단발머리로 자르면서 어쩔 수 없이 머리카락이 내려오는 것을 참는 듯했다.
그 뒤 눈에 띄게 생긴 버릇은 하얀 운동화로 옮겨 붙었다. 그게 그거 같은 하얀 운동화를 사고, 그 날에 따라 용도와 쓰임이 다르다니 더 말하면 잔소리라는 이름표를 다는 수밖에.
여러 색상의 운동화도 많더만 늘 하얀색만 고집하는 하얀 틀 속에 갇힌 따닝이라 생각했다. 바꿀 맘이 없는 아이에게 또 잔소리라 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 잔소리 보태지 않음은 자기 돈 벌어 사는 것이 한 몫했을 테고. 운동화지만, 빨강, 초록, 검정, 노랑도 신어보는 하양의 틀 속에서 자유로왔으면 바람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