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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r 28. 2021

아파트 분리수거장이 뚝딱!

장인이 따로 없다.

지난겨울 추위로 벌벌 떨며 걷던 출근길 아침, 아파트 출입문 앞 깊게 뿌리내린 나무 한 그루를 파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끙끙 대는 모습과 마주했다. 나무가 살아온 세월만큼  높게 뻗은 가지만큼 깊게 뿌리내렸을 큰 나무를 한 방에 뽑아내기 쉽지 않은 듯했다.

길가 가로수로 제 할 일 열심히 하던 은행나무들. 암나무라서 냄새나는 은행알을 떨어뜨리는 그곳을 지나는 사람이 밟는 일이 잦다는 이유로 무참히 베어지던 걸 보던 때라 무슨 일인가 싶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아파트 뒷문 근처이고, 그곳을 지나야 정문이 나오니 꼭 거쳐야 했다. 출근길 시간이 촉박하여 잠시 보다 지나쳤다.  

   

다음 날 아침, 그 자리에 눈길이 저절로 갔다. 많은 장비 동원으로 깊게 내린 나무뿌리까지 파냈는지 세월을 흙으로 덮어 놓았다. 오랜 시간 함께 했을 큰 나무가 자리했던 곳. 공동주택 주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야외 분리수거장을 만들기로 합의한 모양이다.    

 

그즈음 이 분이 나타나신 거 같다. 자로 재고 크기와 넓이를 가늠하고자 하는지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의 포스가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예술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사람의 긴 머리 질끈 묶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등 뒤에 걸머메고 있는 장비가 한눈에 봐도 쌀 한 가마니를 진 듯 아주 무거워 보였다. 본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맨 채로 숙이고 사다리를 올라가서 작업을 이어가는 광경이 놀라울 뿐이다.  

 

큰 나무 한 그루 옆 작은 공터. 비가 오면 비 맞고 눈이 오면 눈을 온전히 맞는 야외 분리수거장을 통째로 설계부터 오리고 붙여 나가는 과정을 아침마다 잠깐 보며 지나다녔다. 처음 자리했던 것에서 완전 다른 모습의 변화도 눈여겨볼 만했지만, 그걸 만들어 나가는 사람의 솜씨가 더 놀라웠다.    

 

주민들도 뚝딱뚝딱 매일 달라지는 모습이 나만큼 신기했나 보다. 다음에 우리 집 인테리어 할 일 있을 때면 이 분한테 의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생각을 나만 한 건 아닌가.

명함 한 장 달라시는 분께

“저는 이 아파트 직원입니다. 따로 나가서 일을 하진 않습니다.”

대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직원이었다는데 3년째 살아도 한 번 본 적 없었다. 주고받는 얘기를 옆에서 듣고 계시는 경비 아저씨께서

“우리 아파트 최고 보배예요.” 말씀을 거드시고 뿌듯해하시는 걸 봐선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이미 검증되고 인정받고 계신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느꼈던 뒷모습에서 읽히는 장인의 느낌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어떤 삶을 살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지 몸에 잘 맞는 옷을 멋스럽고 근사하게 입은 사람처럼 수형이 반듯한 나무에서 꽃과 잎을 활짝 피운 나무처럼 보이는 걸까.   

 

잘 살고 있는 나무 한 그루 괜히 뽑히는 거 같아 서운하고 아쉬운 맘 한 가득이었는데... 사람 마음 조석으로 변한다더니 내 맘이 그랬다. 그 자리 많은 사람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분리수거장을 묵묵히 만들어 나가는 한 사람. 뒤에서 스치며 보면서 멋지다는 또 다른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하루 자고 나면 요만큼 요만큼씩 뚝딱뚝딱 만들어 나가는 그의 솜씨 놀랍다. 한 분야 일을 꾸준히 해오며 긍지와 자부심 갖고 일하며 만들어진 만큼 주민들을 위할 분리수거장.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들이 놀라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어떤 맘이 들까. 그의 정성과 땀방울이 녹아든 만큼 이 아파트 생명 다할 때까지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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