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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r 28. 2021

서울뜨기, 시골뜨기

난 시골뜨기였다.

누구든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적이기에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긍정적 에너지가 스스로 가진 것보다 훨씬 늘이는 효과가 있기에.    

 

아침 출근 후, 청소모드에 돌입한 나한테 소꿉친구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결혼 후 줄곧 경남 창원에서 딸, 아들을 낳아 길렀고, 그 아들이 자라 이름 들으면 알만한 회사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직장을 구해 올라온 거였다.    

마침 아들한테 전할 물건이 있었단다. 남편 출장길에 같이 동행한 상태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봄 여행 삼아 같이 올라온 거였다. 출장지 김포까지 도착하기 위해 새벽 3시 30분에 준비해 출발했다니. 오전 9시쯤 도착해 업무 보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커피 한 잔 주문해 놓고 연락을 한 거였다.   

 

선릉역 근처 원룸을 얻은 아들이 하룻밤 묵을 호텔을 예약해 둔 상태란다. 그렇다면 무조건 저녁 퇴근 후 만나자  약속했다. 얼굴 본지도 오래고, 서울까지 올라온  소꿉친구를 못 보고 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내가 일하는 동안 차로 서울 한 바퀴 돌고 호텔 가서 짐 풀어놓고  퇴근 시간 맞춰 건대역에서 만나자 했다.


소꿉친구와 그 남편은 선릉역에서 출발하고 난 7호선 타고 나가 중간의  약속 장소가 건대역으로 하면 되니까.    

길도 초행길 지하철 타는 것도 낯서니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섰단다. 난 일 끝나기 무섭게 달려 나갔다. 중간중간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데, 처음 서울 올라왔을 때가 떠올라 우습기도 눈물겹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러 나갔다가 출구를 들여다보며  ‘어디로 나가야 할까?’ 찾는 동안 사람들에 떠밀려 저만치 이동해 있던. 심지어 몇 번 출구인지 몰라 짐작으로 나간 곳은 엉뚱한 데라 지하를 몇 번이고 오르내렸던 그때가 생각났다. 한눈에 봐도 시골에서 뜨끈뜨끈하게 막 올라왔을 거 같은 나의 서툴기 짝이 없었던 서울내기의 초보 시절.

 

지금이야 몇 번 출구인지 사람이 아무리 많은들 그 사이를 요레조레 비집고 빠져나갈 정도로 약삭빨라졌다 해야 하나, 눈치가 늘었다고 해야 하나.    

가는 동안 소꿉친구랑 카톡을 주고받다 보니 애들 어릴 적 읽어줬던 시골쥐 서울쥐의 이야기가 딱 맞다는 생각이 든다.   

 

 목 빠질 만큼 으리으리 높은 건물과 바삐 오가는  젊고 세련된 사람들이 많은 서울이.  젊은이가 일자리를 찾아 몰려오는 곳이라는데, 정신만 하나 없단다. 뭐가 그리 바쁜지 발걸음은 어찌 그리 다들 빠른지... 고민 한 가득, 겉멋 한 가득 구석구석 젊은이는 무슨 담배를 그리 많이 피워대는지.  

  

소꿉친구는 서울 사람들이 안쓰럽고 불쌍해 보였다며 맘이 괜히 싱숭생숭하단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귀하게 키운 아들이 서울이란 곳에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데, 시골에서 느긋하게 몸과 마음을 놓고 살아온 애가 치열하게 걷고 달리다 못해 나는 애들에 끼여 잘 살아가기나 할까 싶었단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어디서든 변화무쌍하게 자기식으로 만드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했으니 또 적응하며 살아가겠지만... 불편함을 내려놓으려 말은 그렇게 해도 맘이 푹 놓이지 않는가 보다.   

 

그에 비해 난 벌벌거리던 시골뜨기 모습 오데로 갔나. 서울 생활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내가 신통방통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니.  살으라고 집주고 멍석 깔아줘도 못 살겠다며 하는 말이었다.


늘 어설퍼서 손이 많이 가는. 소꿉친구가 있으면 난 손 놓고 있어도 될 정도였는데, 내가 진정시키고 있는 모양이라니.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태생이 부지런한 친구는 올라온 날과 같이 이튿 날도 역시 새벽같이 일어나 집으로 향했단다. 창원엘 다다를 즈음 그렇게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울 수 없었다니... 시골쥐의 모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난 내일도 약삭빠르지 못함을 감추며 눈치를 보고 여기저기 삑삑거리며 소리 지르는 누군가 나타날까 봐 숨어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는 서울쥐처럼 행동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지.

내 태생 시골 쥐 나 다름없는 시골뜨기니까 시골쥐처럼 당당하게 맘 편하게. 으음.. 장소가 시골이어야 가능한 일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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