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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r 19. 2021

가정경영,재정비할때

덜 사고 안 사면 모일거다.

“뭐야, 265,000원 결재됐어. 이제 초등 1학년인데, 영어학원엘 꼭 보내야 하나.”

초등 1학년과 5살 두 아이를 둔 젊은 아빠가 날아온 결재 문자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잠시 후, 아내에게 바로 전화를 거는 듯 신호를 보냈다.

“우리 K만 보낸다구? 친구 M이는?”

좀 전에 결제 문자 띵~ 올 때의 푸념 섞인 반응과는 다르게 얼굴빛이 환해졌다. 결제 문자 왔길래 등록했나 싶어 전화했다며 잘 호응해 주고 기분 좋게 전화를 끊는 듯.    


전화 끊고 난 뒤 묻지 않았는데, 약속된 마냥 자동 브리핑 시작이다. 초등 1학년 아들 녀석에게 한글 한 번 가르친 적이 없었단다. 외출을 할 때면 스스로 간판에 적힌 지하철역 이름과 가게 이름에 관심을 갖더니 어느 순간 다 익혀버렸다니. 말만 들어도 영재와 천재 가까울 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5살 동생 나이 때 형은 모든 걸 익혀버렸는데... 동생은 아무것도 모를 뿐 아니라 관심조차 없으니 한글, 수를 모르는 건 당연한 일. 그래도 마냥 이쁘고, 애교와 눈치 백 단에 살살 녹기까지 한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웃었다.    


둘째에겐 한글 따위 대수냐 알 때 되면 알 거라는 맘의 여유 느긋함은 첫째를 키운 경험에서 오는 걸까. 아무것도 못해도 밉기는커녕 사랑스럽기까지 하시다니. 이런 얘길 듣다 보면 집집마다 첫째와 둘째의 성격 형성은 타고난 기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보다 부모 양육태도가 상당 부분 차지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젊은 아빠 얘길 듣노라니 큰 아이는 영재 아들임에 틀림없다. 혼자 영어 알파벳까지 다 익힌 상태란다. 그런 덕에 영어 학원 등록까지 무사통과. M이라는 아들 친구는 알파벳을 몰라 등록마저 거부됐다는데. 아내 말을 들으며 좀 전 카드내역 알람 때 했던 혼잣말이었던 어린애한테 거금 들여 꼭 영어공부시켜야 하는가는 깡그리 사라져 버린 듯하다. 똑똑한 아들을 위한 건데, 그까짓 거 아까워하면 안 되는 것처럼 하하하 웃음까지 나오는 아빠 마음이 되어있다.    


젊은 아빠만큼 어린 날, 우리 부부는 자녀교육 문제로 단합이 되지 않았다. 예능교육에 치중했던 나와는 달리 무조건 국  영  수가  좌우한다며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것에 탐탁지 않아했다. 이 시기에 배우지 않고 넘어가면 되돌릴 수 없을 거 같아 악기든 몸동작의 유연성이든 접점이 생기지 않았다. 서로 자기 말이 맞다며 서로를 답답해했다.   

 

예체능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그이 생각과 삶을 풍성하게 살기 위해선 재능과 상관없이 어떤 악기와 운동이 됐든 하나쯤 할 줄 알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이것저것 발 들여놓게

 였다.  


공부도  그렇지만  예체능도  자기가 좋아하고 즐겨야지  어려운 고비마다 실랑이  벌어지는 걸  옆에서 보려니  더 화딱지가 나기도 했겠다.  돈이  줄줄  새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테니.  그것이 살면서 도움이 될지 아무 쓰잘데기 없는 건지 정답이란 게 있을지는  모를 일.    


집 장만이 아무래도 큰돈 들다 보니 쓰임을 생각해 돈 모일 시간조차 주지 않고 보이는 대로 펑펑 써대는 아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사람들은 대개 비슷비슷하니까.    

짠순이처럼 살아준다면 더없이 바랄 게 없을 텐데, 먹고 싶고,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것을 다 누리고 살고 싶은 아내를 평생 믿고 살아도 되냐는 고민도 자리했을 거 같다.    


지금도 내가 가족카드를 쓰면 문자내역이 나에게 오는 게 아니라 그이 폰에 전달되고 있다.

안 쓰도 될 것을 풍풍 쓰는 것도 아닐 텐데, 지금 어디서 무엇을 샀고, 어디쯤 머무는지 혹시 큰돈의 카드를 긁을까 봐 전전긍긍한다면 피곤한 삶이지 싶은 거다.    


퇴근하며 마트에 들러 사 온 게 벌려보면 지불한 액수에 비해 초라하고 먹을 게 없을 때가 많다. 별 산 것도 없는데...  입 안에서 몇 번 꼼지락거리고, 꿀꺽 한 번 삼키고 나면 또 마트에 가야 먹을 게 생기는 돈 쓰임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물가에 비해 돈 가치가 없긴 하다.    


카드 쓴 내역 문자가 달갑지 않았던 처음에 보인 젊은 아빠 반응이. 비단 그 사람 표정만은 아닐 듯하다. 영재 아들이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해 주고 있다면 또 모를 일이긴 하다.     


이것저것 쓸 때처럼 내가 마트에서 카드 쓴 알람이 울릴 때면

‘이 여자 어디서 또 카드 쓰고 있구먼.’

편치 않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정경영을 좀 더 알뜰하게 해야 하나.

버는 것은 아주 많이, 쓰는 거 쪼금이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새 플래너에 다른 것보다 돈 쓴 내역을 일단 적어 볼까나. 내게 있어 참 어려운 걸 해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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