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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Apr 08. 2021

아파트 입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안전 또 안전이 최고!

“치지직 삐~ 아파트 입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우리 아파트는 장기수선 충당의 계획으로 내, 외벽 수선 및 도색할 예정이니 해당일은 차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주시고, 외벽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이 창문에 보이더라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리사무실에서는 주민들의 불편함을 최소로....”    


며칠 전부터 아침 일찍, 저녁 시간 몇 번이고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낮 시간도 했을 테니 지금까지 몇 번을 했는지 모를 일. 아침, 저녁 들은 것만 귀에 쏘옥 박힐 정도이다.    


미처 방송을 접하지 못한 세대가 외부에 주차해 놨다가 페인트가 묻거나 무심코 내다보던 창밖으로 사람 얼굴 디미는 모습으로 착각하여 까무러칠까 봐 반복 또 반복하여 방송을 내 보내는 것 같다.    


1층이나 경비실 곳곳에 도색할 날짜와 방법 등 친절하게 붙여놓았던데, 그것마저 안 읽고 안 보는 사람도 많을 테니. 불상사 생기면 관리실 직원과 입주민이 서로 얼굴 붉혀야 하고, 방송을 했네, 못 들었네 왈가불가 못하게 수시로 방송을 하는 듯 보였다.    


며칠 째 사전 안내방송 이어지더니 오늘이 그 날인가. 아침 일찍 발코니 쪽과 주방 창문 쪽으로 밧줄이 축 내려지며 이쪽저쪽 흔들거렸다. 물 호수를 세게 쏘아댈 거라 창문을 꼭꼭 닫으라 했었는데... 어떻게 작업이 진행되나 보고 싶어 고개를 빼고 기웃거렸다. 창문 열고 재빨리 내다보다 작업하는 사람과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서로 민망할 노릇이라 창문은 열지 못하고.    

 

내다보고 싶어도 작업하는 사람 없을 때를 기다리며 봐야 했다. 드디어 우리 층에 다다랐나 발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15층 꼭대기에서 한층만 내려오면 된다 생각했는데. 밧줄에 매달린 사람은 14층 높이에서 온몸을 줄 하나에 맡긴 채 작업해 나간다는 걸. 건너편 동에 매달려 작업하는 이들을 보니 더 실감이 났다. 고소공포증 있는 내가 매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살짝 후덜거렸다.     

 

가족들과 싱가포르 여행 갔다 센토사섬엘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갈 때도 바닥에 주저앉질 않나, 우리나라 곳곳의 여행지에 가면 바닷가 절벽 가까이 더 가까이에 유리다리 만들어 놓아 지나갈 때면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라니. 그 정도로 무서움이 많았는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 공포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미리 안내방송하지 않았더라면 웬 사람이 매달려서 놀라 뒤로 나자빠질 수 있겠다. 사전 안내방송 힘으로 미리 짐작하니 이렇게 다르구나 싶다.     


출근길 집 밖을 나서니 한참 일하고 계시는 분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안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무겁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단단하게 고정은 잘 시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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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 일하다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침에 봤던 잔상이 남아서인가.

‘대구 외벽 작업 근로자 추락사고 잇따라’란 기사가 눈에 띄었다. 로프를 타고 현수막을 설치하다 로프가 끊어지는 사고가 났다는 거다.


얼마 전 tv 속의 극한직업 소개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잠실 롯데타워 123층의 꼭대기를 점검하는 모습을 보며 아찔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나 무서움을 느끼기보다 자부심이 단단하다는 걸 보며 저분들이 계시기에 안전함을 누리며 살고 있구나 싶었다.


한 집안의 가장일 수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일 텐데, 밧줄 하나에 매달려 일하시는 그들이 안전하게 잘 마무리되기만을 바랐다.


공사 계획된 며칠이 지나면 우리 아파트는 우중충한 모습 확 벗어던지고 봄날처럼 화사한 모습 보일 텐데,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그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임을. 새로이 단장된 우리 아파트 더 많이 올려다 봐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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