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소리와 땅 속의 마른 흙먼지가 인다. 출근길 머리 감아 빗고 차려입은 옷인데, 저곳을 통과해야 함이 썩 내키지 않는다. 눈앞의 뿌연 먼지를 보고 바로 그 옆을 지나야 함이.
“이번엔 무슨 공사예요?”
길가 가로수였던 오래된 암 은행나무를 베어내고 그곳에 보도블록을 깐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멀쩡한 걸 왜 걷어내나 싶어 지휘봉을 들고 안전한 길로 유도하시는 분께 여쭈었다.
보도 블록 공사란다. 사람들이 늘 밟고 다니고 있으니 새 것은 아니라도 파이거나 뒤집히고 파헤쳐진 곳 없는데... 좁은 인도를 공사하니 도로까지 점령하여 대 공사장을 방불케 하니 곡예를 하듯 요리조리 피해 다녀야 했다.
그런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 그 사이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지는 신기한 체험의 시간이 있었으니 이건 과연 무슨 힘이란 말인가.
블록을 걷어내고 땅 고르느라 모래를 가득 쏟아부었나 보다. 발밑이 폭폭 빠져 드는 모래밭을 걷는다니. 구두를 신었음에도 딱딱한 보도블록을 밟을 때와는 다른 차이가 느껴져 바삐 서둘러 가야 하는데, 몇 번을 재빨리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 사이 생각의 미끄럼은 어린 시절로 쭈욱 타고 내려갔다. 강가 드넓은 모래밭의 작은 구멍을 파보면 그 속에 재첩이라는 작고 작은 조개가 들어있다. 온종일 손가락으로 비집고 그걸 친구들과 잡으며 놀았다. 모래 하면 떠오르는 어린 날의 기억이다.
우리 어린애들 키울 땐 아파트 놀이터만 가도 온통 모래밭. 모래 던져 눈에 들어가는 것만 관심 갖고 지켜보는 시기 지나면 모래놀이 세트에 담았다 부었다, 굴을 만들었다 부수며 온 옷에 모래 가득 묻혀가며 안전하게 놀 수 있었다. 넘어져도 무르팍 까이지 않고 완충역할 톡톡히 해 주는 모래밭에서.
어느 날부터 아파트 곳곳의 놀이터 어디에도 모래밭은 보이지 않았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고 모래나 흙도 묻지 않는 탄성바닥재가 대신하고 있다. 젊은 엄마들은 깔끔해서 더 좋아하려나.
모래를 밟아보는 일도 바닷가를 간다고 해서 다 누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 연안 침식으로 한 해, 축구장 18개의 면적이 사라진다는 걸 봤었다. 개발새발 욕망의 개발로 모래 없는 해수욕장도 많다는 거다.
무심코 내디딘 발밑의 모래 밟는 일이 바다를 간다고 해서 다 되는 일이 아니라니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모래 밟는 이 느낌이 이렇게 안정감을 준다는 걸. 딱딱 소리 나는 길만 오가다 보니 더 알게 된 것이리.
오늘 아침엔 또 다른 구역 공사가 진행 중이라 고막을 뚫을 듯한 굉음과 먼지는 지나가야 하는 행인들의 몫이었다. 그 와중에 바닥에 깔 모래성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