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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Apr 19. 2021

나의 엄마 오리는

허당이어서  야무지지 못해서

“혼자 나왔음 벌써 집 도착할 시간인데,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린다.”

걷다 기다리다를 반복하며 그이는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해 댄다.    

휴일 아침, 밥 먹고 난 후  동네 한 바퀴 나가는 그이를 따라나섰다. 대개 혼자 다녀오는 사이 널브러져 있는 집 안 정리와 손빨래하는 게 오후 시간 밍기적 대며 뒹굴거리기 좋았다.     

거실 창으로 올려다본 하늘과 내려다본 놀이터 나뭇잎의 싱싱함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집만 나서면 경춘선 숲길. 일하면서 하루 한 두 번은 왔다 갔다 했던 길.

새롭게 조성된 것도 있고, 이전부터 있었던 거 같은데..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목적지만 보고 바삐 걸어서인가.    


같은 장소인데, 일할 때와 쉴 때 바라보는 차이였을까. 이런저런 생각하며 렌즈 속에 담느라 주춤하는 사이 저만치 그이는 많이 앞서 걷고 있다. 금방 간격을 좁히기 힘든 지점에 이르러  멈춰서 있는거다.


강아지 산책길에 땅 헤집어보고 영역 표시하다 저만치 앞선 주인 따라 달려가듯 내 모양이 딱 그랬을 듯. 힘껏 내달렸다. 가까이 왔다 싶으면 또다시 앞서 걷는다. 운동 흐름도 끊기고 따라붙을 생각 없어 보이니 시계만 들여다봐지고 다음엔 혼자 나와야지 다짐하게 했을 거다.    


모처럼 나왔으니 보고 듣고 들여다볼 게 좀 많은가. 못마땅하게 생각할 걸 알면서 이러고 있다.  그래도 무슨 일인지 한참 맘 내려놓고 기다려 줄 듯 맘 푼 곳이 있었으니...

눈짓하는 곳을 내려다보니 작은 개울  엄마 오리가 아기오리 열 마리 데리고 독립의 연습 현장에 데리고 나왔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따라 스스로 먹이 찾아 쪼는 녀석들 기다려 주며 한눈에 10마리 완전체가 되면 또다시 움직이는 활동이 반복되는.


작고 여린 것엔 감탄이 절로 샘솟는 것인지. 한참 왔던 길을 되돌아 미끄러지듯 졸졸 따라 걸었다. 봐도 봐도 앙증맞은 아기 오리들 사이 한 마리 되기라도 한 듯. 그 많은 식구 거느린 어미 오리에 눈이 갔다. 앞섰다 따라오면 또 앞서고 뒤돌아보는 모습을 보며 울 그이를 떠올렸다.    

뭣하나 제대로 똑 부러진 게 없는, 어설프기 짝이 없고  누구한테 속임 당하기 딱 좋은. 어떤 때는 넘 몰라서 놀림도 속임도 못 당하는 때도 많은 아내를  두었으니.  늘  어미 오리같은  맘이었을 다.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만 할 줄 알지 멀티가 못되다 보니 그이 손을 빌려야 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내가 야무지게 뭐든 잘하는 줄 아는데, 가족들이 다 아는 허당이다. 성실하고 꾸준하며 사람과 생명을 측은하게 여기는 착한 심성은 갖고 있어  그게 오늘까지 현직에 있게 한 힘이지  않았을까.    


나의 엄마 오리 같은 그이가 뒤돌아보며 걱정 않고 쭉 미끄러지듯 즐거운 유영을 즐겼으면 앞서 걷는 그이를 보며 생각한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삶이 그랬듯 앞 보고 걸으며 양 옆도 위도 올려다보고 사방을 둘러보는 맘도 곁들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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