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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y 08. 2021

우주 품은 풀꽃들

위풍당당한 그들처럼

꽃피는 계절이다. 눈 닿는 곳마다 고유의 색 지남철처럼 끌어당기니 철가루마냥 스르르 끌려가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작고 낮은 꽃에 시선을 주다 보니 마주 보고 오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을 놓치는 일마저 벌어지고 말았다. 나의 눈길을 따라가다 보고선 그녀는 길에서 큰 소리 내어 웃었다.

“저게 그렇게 이뻐요?”

“네, 넘넘 신기해서요. 이름 모를 풀꽃이고 남의 집 가게 구석탱이에서 언제 뽑힐지 모를 운명인데, 부부 풀꽃처럼 나란히 피어있는 게요.”    

 

그랬다. 그 둘은 잘 어울리는 남녀 커플 한 쌍처럼 키로 보나 몸매로 보나 참 다정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바람에 실려 온 먼지 뭉치일 수도 한 줌의 흙이 남았을 수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꽃까지 피어 올린 그들이 가여우면서 대견해 보이는 건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삶을 엿보았기 때문일 거다.    


어버이날이 가까워서 그런지 꽃가게엔 카네이션의 비중이 높았다. 카네이션이란 푯말을 달았지만 색감이 많이 낯설다. 빨강이나 핑크를 주로 이루던 게 빨강반 핑크 반도 있고, 노랑 카네이션, 주황에 색을 희긋희긋 뺀 카네이션까지 하아 정말이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깜장 머리칼을 염색할 때도 다크 브라운, 애쉬 브라운, 쿠퍼 브라운, 내추럴 브라운. 갈색 톤도 다 같지 않고 미세하게 펼쳐지듯 꽃의 세계도 사람들이 고안한 품종개량이라는 이름으로 저렇게 각양각색의 색을 연출하게 한 거다.


얼굴도 이름도 낯선 아름답고 예쁜 꽃들도 참 많아졌다. 분명 장미라는 이름의 꽃인 데, 풍성함이나 개량된 모양이나 색감으로 봐선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손색없을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품 있는 사람처럼 꽃에서도 품위와 고급스러운 아우라가 줄줄 뿜어져 나옴에도 난 태생이 촌스러운지 앉은뱅이 작은 이름 없는 풀꽃에 더 정감이 가고 눈길이 머문다는 것.    


알던 사람도 못 보고 지나칠 정도로 관심 갖지 않으면 콩알보다 더 작아서 보이지 않는 꽃 이름을 찾다 보니 중고등학교 때 수예 시간 수를 놓으면 예쁠 꽃들 같다.

봄까지 꽃, 조밥 나물, 애기똥풀, 토끼풀, 꽃마리, 봄맞이꽃, 수레국화, 별꽃, 냉이꽃, 사광이 아재비 풀, 가시 모빌. 채송화 등 언제 한 번 수예점 들러 예쁜 천에 수틀 얹어 풀꽃 들꽃 수놓는 거 구경 가야지.  그러다 맘 내켜 내가 바늘과 색색의 실을 잡는 날이 온다면야 더 바랄 게 없을 테고.

 

앉은뱅이 풀꽃이 이렇게 우주를 다 품은 듯 사랑스럽고 예쁜 것을 왜 몰랐을까. 사진을 찍으며 줌으로 쭈욱 당겨보니 새삼 더 도드라져 보이고 위풍당당해 보인다. 하늘 아래 살아 숨 쉬는 것들의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그들과 눈부신 5월을 함께 한다.

시인 나태주 님은 오래전 익히 이들을 알아보신 분, 새삼 그분의 시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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