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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y 20. 2021

먹고, 자고, 잘 싸고는 엄청 중요해!

주치의님 정말 고맙습니다~^^**

살면서 궁금증이 생겼을 때 어느 때고 물어볼 이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게 우리 삶의 0순위라고 할 만큼 중요한 건강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

80년대생이라 30대 중반이고 결혼할 생각이 아직 없다는 그는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자칭 나의 주치의라고 부르는 이다.   

 

내 눈엔 서 너 살 쯤 되는 어릴 때 노래 잘 부르는 모습만 가득해 그가 의사 가운을 입으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큰 오라버니의 둘째인 그는 시집 온 올케가 고교 음악교사여서 갓난 애기 때부터 울 엄마가 남매 둘을 키워주셨다. 애들이라면 무조건 좋아했던 막내 고모인 나의 사랑은 따 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누나에 비해 남동생인 그는 유난히 정도 많았다. 막내 고모가 가장 좋다며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을 테고, 그런 그를 많이 안아주고 같이 놀아주고 선물도 사 주었을 테니 어떤 어린이가 좋아하지 않았겠는가.    


그가 네 살 무렵이다. 성악가인 자기 엄마 피를 이어받았는지 노래를 곧잘 불렀다. 그 당시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란 노래를 tv에서 듣고 익혔나 보다.


“내 젊음의~~~~ 빈 노트에~~~ 무엇을 그려야 할까” 


무슨 뜻인지 알고나 불렀을까. 제법 높이 올라가는 대목을 거침없이 쭈욱 쭉 뽑아 올리는 게 신기해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불러달라고 갖은 아양을 떨곤 했다. 기와집의 대청마루에 동네 친구들이나 어른들도 꼬맹이가 곧잘 부르는 노래를 듣고자 많은 이가 모여들었던 기억이다. 우리 집은 골목 첫 집이어서 골목을 오가는 사람이 한 번쯤 들렀다 가는 아지트였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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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6층 빌라에 3대가 살았다. 결혼을 한 내가 명절 때 친정을 갈 때면 늘 만날 수 있었다. 한창 공부에 전념해야 할 고교생인데 누가 봐도 공부와는 거리가 먼 모양새를 하고 있다.

머리는 장발에다 노랑물을 들였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의 손톱은 왜 그렇게 길렀는지...    


엄마, 아부지의 고지식한 생각으로도 도저히 이해될 수 없었을 테고, 집안의 귀한 장손인데, 내가 봐도 큰일 났다 싶었다. 막내 고모 말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오해 없이 들어줄 거라는 어디서 나온 근자감이 있었는지 책상 앞에 앉은 그에게 다가가 내가 한 말을 나중에 되돌려 듣곤 쥐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었던.

   

“훈아, 4년째 대학이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평소 아무 생각 않다 명절 때 눈에 띄는 조카들에게 툭툭 던지는 말을 듣고 상처 받는 이들. 그가 얼마나 싫었을지 그런 말은 절대 묻지 않는 거라는 말을 우리 애들이 할 때 많이 미안했다.    


걱정해 주는 듯한 말을 듣고 그는 씨익 웃기만 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올케 또한 결과가 나올 때까진 모르는 일이라 그랬는지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고 묻지도 못했다.  

    

고3 수능을 앞둔 8월 여름 방학 즈음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눈알이 튀어나오는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거다. 친정에서 멀리 살았고, 일을 다니고 있어 가보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며 통화만 했다.  그 해 수능은 망치고 재수를 할 수밖에 없겠구나! 짐작만 하며 안쓰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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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아하는 조카라 해도 한 곳에 살지 않고 자기 집 식구 아니면 사람 일은 모르는가 보다.  

   

결과를 받아 들고 소식을 전해 올 때 요즘 말로 이게 무신 129?


서울대 공대와 한양대 의대를 합격해 의대를 가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듣고 난 누구보다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그런 수재인 아이에게 4년째 대학이라도 가야 할 거 아니냐며 운운하고 있었으니...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얼마나 웃었을까.

‘나를 뭘로 보고 이럼서.’    


아무 말이나 내뱉은 내가 잊고 있던 어느 날, 자기 겉모양만 보고 막내 고모가 그런 말을 하더라며 우스개로 말할 땐 정말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피아노도 곧잘 치고 누구보다 노래를 잘 부르던 그가 공부도 무진장 잘했나 보다. 음악을 했어도 잘하고 좋았을 텐데... 음악해 보겠다고 했을 텐데, 우리 엄마랑 아부지 입김이 컸을 테다.


‘무슨 남자가 딴따라를 하냐며.’    


늘 바삐 인천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안 본 지 꽤 오래됐다. 어느 순간 주치의님이라고 부르게 된 그.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와 문자, 톡으로 물어보는 건 잘하고 있다.     

며칠 전, 수술하고 나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그가 있어 다시 기분 좋게 되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들 한다. 먹고 자고 싸는 거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인데, 수술 후 몇 날 며칠 동안 변을 보지 못해 끙끙 댔다.     


금식이 있었고, 여러 날 죽만 먹었더니 똥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거. 실밥을 풀지 않은 상태라 배에 힘주지 못하니 더 조심스러웠다. 5일이 넘어가자 아랫배가 더부룩하니 병실에 같이 입원했던 그 어머님이 생각났다. 아랫배는 묵직한데, 똥은 나오지 않는 답답하고 갑갑함을.    


치매가 왔음에도 아들 앞에서 절대 기저귀에 눌 수 없다며 화장실 가고 싶다, 똥 마렵다를 간절히 호소하던 어머님이 얼마나 갑갑했을지 그 느낌 그대로 전해져 와 안타까움이 더 커졌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하루빨리 건강하시길...'  


밤이든 낮이든 화장실 변기에 한참을 앉아있다 그냥 일어서려니 허둥거려졌다. 옆에서 곤히 자던 그이도 이불을 들썩거리니 같이 잠을  설치곤 했다.

똥을 못 누니 밥을 굶고 싶은데, 약을 먹어야 하니  먹어 대다 보니 날이 갈수록 악순환이었다. 갑갑하고 묵직하고  불편한 느낌에 잠자는 시간이 괴로움 그 자체다.    

 

‘수술 부위가 조금 아물고 나면 아랫배에 힘을 줘야지!’


하루하루 참던 어느 날, 수술 회복이 잘 되고 있는지 반가운 주치의의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궁금한 이것저것 얘기하다 지금 불편함을 겪고 있는 걸 어렵고 힘들게 꺼냈다.


“근데, 슨생님~ 변이 나오지 않아 엄청 답답해유~~”


아무리  조카라해도  다  큰  성인 남자인 그에게 얼굴 마주 봤으면 정말 부끄러울 일일 텐데, 보이지 않으니 물어보기 그나마 좋아 다행이었다.    


“소장은 양분을 흡수하고 대장이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변비 증세가 있다며...”

생물시간이었나. 어디서 많이 듣던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우유를 500ml 마셔 보라는 거다. 변을 묽게 만들어주는 좋은 방법이라며.

해외여행 가거나 낯선 곳에 갔을 때 변 보기 힘들 때도 이 방법을 써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아하, 평소에 우유 마시면 장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좔좔~ 화장실 드나들기 바쁜데, 듣는 순간,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다.

역시 주치의 말이 맞았다. 우유를 꿀꺽꿀꺽 마신 그날 밤, 몇 시간 끙끙대던 고생은 어디로 사라지고, 나로 인해 잠 설치던 그이의 곤히 자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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