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하나의 팀워크이다!!
병원에서 생활은 일상에서 생각하는 일과 어긋나 있다. 한 밤중에도 의료인 분이 불쑥 들어와 혈압과 열을 재고 링거에 매달린 약이 잘 들어가고 있는지 체크하신다.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규칙과 질서 속에 이루어지는 일들이겠지만,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다.
환자 중에 응급한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그 시간이 언제든
“불 좀 켤게요.”
갑자기 병실 안이 환해지며 분주하게 오가는 의료인들로 까무룩 잠은 정신이 말똥 해진다.
대로변에 쌔앵 달리는 차 소리와 병원으로 연이어 실려 오는 앰뷸런스의 다급한 소리로
‘여긴 집이 아니고 병원이었지.’
밤낮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동네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입원 환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침대에 누웠다 앉았다 팔다리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 아니면 혼자 링거를 끌고 화장실 다녀오는 정도. 주사 달린 몸만 앞서고 끌고 가야 할 링거는 따로 두는 익숙지 않는 몇 시간이 지나고야 끄는 것도 같이 움직이게 된다.
워낙 잠탱이, 잠만보다 보니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침대에서 눈 감으면 잠드는 태평이 어딜 가지 않는다. 전 날 입원 뒤 수술 부위를 검은 사이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마취 담당 선생님 마취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자가 조치를 일러주셨다.
곧이어 수간호사님 알아야 할 입원 수칙이나 불편 호소할 곳 알려주시고 나가신다. 몇 분 후 수술할 담당 교수님은 아니신데, 같이 수술에 임할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수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얘기하시며 동의란에 이름과 사인하라는 종이가 왜 그렇게 많은지...
다 읽어보지 않고 대충 설명 듣고 이름과 사인을 했다. 뭐 수술하다 보면 이런저런 개연성 있으니 우리 의료인의 책임보다 환자 상황에 따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런 말이 아니겠나 짐작만 할 뿐. 동의 안 하면 수술해 줄 수 없다고 할 것이니 보호자가 대개 하는 건데...
코로나 검사 후 72시간 지나면 또 검사를 해야 한다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고자 혼자 입원을 하게 된 거였다.
아침 일찍부터 이 분 저분의 의료인이 들어오셔서 다시 한번 체크를 하는 듯했다. 아들은 내가 필요 물품 하나하나 추가 카톡을 보냈더니 이사 수준으로 한 짐을 싸가지고 도착이다.
수술이 오후 1~2시 사이에 잡혀 아들은 오전 9시 코로나 결과를 보고 온 것이다. 그전에 사인할 일이 많으니 그이가 있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잠시 들었다. 심신 허약한 환자가 동의란에 사인하고 수술까지 하려니 모양이 이만저만 빠지는 게 아닌 거다.
병실엔 보호자 1명만 그것도 코로나 음성결과받은 사람이 병실 들어올 수 있는 수칙이 까다로워 의료인 분도 어느 때완 다르게 보호자를 그렇게 찾진 않았다. 수술할 땐 누군가 있을 거란 걸 아셔서인지.
12시 30분쯤 수술실 들어갈 거라고 알려주었다. 맘 준비를 하며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고요한 음악으로 억지 진정을 하는 차 복도가 한바탕 시끄럽다. 나이 드신 남자 보호자의 고함소리다. 자기가 보호하는 환자 수술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거.
“죄송합니다. 앞 환자 분의 수술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려서요, 위급한 상황이 된 거 같습니다.”
큰 소리는 한참 나고서야 어디로 데리고 가셨는지 잠잠해졌다.
하필 수술실 들어가지 직전 우려했던 소란스러운 소릴 듣고 나니 심장이 더 두근두근 댔다.
나도 수술이 늦어지려나 했는데, 나와 다른 파트인지 예상 시간대로 부르셨다. 병실 앞에 대기된 휠체어에 올라앉고 치렁치렁 매달던 링거를 다 뽑으니 수술하러 가는구나 싶다.
몇 층인지 수술실 앞에서 아들에게 잔뜩 겁먹은 동공 지진을 보여주고 헤어졌다.
tv에서 보던 중앙수술실 문 앞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여기서 잠시 대기하실게요.”
마중 나온 듯 의사 선생님 수술부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말씀하셨다. 이럴 때 종교가 있는 사람은 마음 안정이 정말 도움이 되는 순간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젤 걱정할 가족들과 염려해 준 울 린토 님 생각을 하니 맘이 조금 편해지는 듯했다.
수술대 위 차가운 철판대 일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춥지 않고 포근포근한 수술 침대로 옮겨졌다. 훨씬 안정감이 느껴졌다. 곧이어 이마에 뭔가 붙이고 두 팔을 고정시키고 입을 벌리게 하더니 산소를 대주니 잠시 시원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그 후 마취제가 들어갔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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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눈 떠 보세요!! 환자분 눈 떠 보세요!!”
큰 소리로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깨났구나 살아났구나 감사합니다. 수혈까지 받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그이와 딸은 일하면서 신경이 한 곳에 온통 쏠려 있었다는 걸 수술 끝나고 병실로 돌아와 확인한 가족 톡의 일사불란함이 말해 주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후 아들의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수시로 물 뜨러 가고 몇 시간 물을 마시지 못하는 나를 위하여 가제를 적셔 코와 입 위에 올려주고... 링거의 익숙지 않음인지 화장실 갈 때 몸만 먼저 가버리면 아들이 링거를 끌어다 화장실 앞에까지 가져다주는 일이 반복되고.
수술부위가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하더니 무통 약의 효력인지 아픔이 덜 느껴졌다. 누웠다 앉았다의 불편함 최상에서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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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잤을까. 눈을 뜨니 아들도 비어있는 옆 침대에 모로 누워 쪽잠을 자고 있다. 수시로 궁금해하는 다른 가족들께 연락을 취해주고 병실 드나드는 사람의 기척이 있을 때마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잠 같지 않은 잠을 잤을 테다.
며칠 전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아들이 [어버이 자서전]이란 책인지 노트인지 모를 질문만 가득한 책 선물을 줬었다. 책이라고 하기엔 질문만 가득한 39번.
“저한테 가장 고마웠던 적은 언제인가요?”
물음이 있던데,
지금 이 순간도 포함되지 않을까. 아들이 준 책 속의 질문 하나하나에 대한 답을 천천히 해 나갈 거라 생각 중이라 다 쓰고 보면 정말 자서전이 되려나.
지금 이 물음에 답하라고 하면 엄마, 아빠의 아들로 와 준 게 무엇보다 고맙고 감사하다. 엄마, 아빠의 갈등이 생길 즈음 아들 의견 들어볼라치면 중립의 현명함이랄까.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듯 치우치지 않는 답을 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입원해 있는 동안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재빠르게 잔심부름해 줘 잘 지내는 것도 정말 고맙고.
전날 밤 앞에 계신 환자 분은 코에 연결된 줄이 답답해 자기도 모르게 뺏나 보다. 선잠 자다 발견한 아드님의 연락으로 의료진이 여러 번 오갔다. 코에 다시 줄을 끼우는 사람이나 끼움을 당하는 어머님의 아픈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드님께는 더없이 안타까운 일일 테고.
갑자기 밤 11시! MRI 검사하러 가야 된다니 보호하던 아드님을 놀라게 한다. 그 후 링거 맞을 때 수면제를 넣었는지 그렇게 물어대던 말 한마디 들어볼 수 없이 잠만 주무셨다. 잠시 눈뜨며 tv를 보기도 하셨지만, 지나다 보면 대개 잠들어 계셨다. 그 아드님도 밤새 설친 잠 보조의자에 모로 누워 병실이 떠나갈 듯 코 골며 깊게 깊게 빠지셨다.
아들과 난 그 맘을 아는지라 많이 시끄러워도 우리가 이해해 주자고 눈빛으로 말했다.
수술실 들어가는 것이나 끝나고 잘 됐는지는 환자와 보호자 톡으로 모든 걸 알려주는 걸로 대신했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보호자 불러 수술 상황이 어찌 됐는지 알려주는 건 없었다. 코로나로 바뀐 상황인가 보다.
늦은 오후가 되니 수술하신 교수님과 인턴, 레지 선생님께서 회진을 오셨다.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고 간단하게 수술 잘 됐다고 말씀하시며 퇴원 날과 외래 진료받을 날을 말씀하시고 바로 나가셨다.
코로나 속 수술은 많은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걸 예상은 했었다. 실제 현상에선 더더욱 와 닿았다. 나이 드신 환자 분이 대부분에다 기저질환이 있고 면역성이 현저히 낮은 상태라 코로나는 어느 때고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었다. 치료로 인한 마스크 사용이 거의 안 되는 사람도 많았고.
다행이라면 청결을 위한 청소가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는 거. 한두 사람 사용이 아니다 보니 끝없이 이루어지는 청소하시는 분의 손이 마를 날이 없는 부분은 옆에서 간호와 보호해 주는 아들만큼이나 감사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