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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May 27. 2021

카메라는 화지, 자연빛은 붓이 되고.

수채화를 카메라에 담는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그 친구 주변으로 여럿이 잽싸게 모여들었다. 살짝 찢어온 노트 한 장 손에 살포시 든 채로. 모여든 친구들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책상 앞에 앉은 그 친구는 연필 한 자루 들고 쓰윽 쓱 한 두 번의 손놀림으로 스케치해서 내밀면 그걸 받아 든 아이는 흐뭇한 얼굴로 돌아서 나온다. 벌써 다음 그림은 다른 친구 손에 이미 들려진 상태. 화장실도 못 다녀왔는데, 쉬는 시간 종은 이미 쳐 버렸다. 


만화책을 돌려보며 낄낄대던 우리들. 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척척 그려내는 걸 누군가 보았을 터 나도 너도 그려달라던 입소문이 반전체로 번져 친구는 쉴 새 없이 그리고 또 그리는 중. 


아무리 만화를 많이 본 들 뭘 그려야 하며 어떻게 그리는지 몰라 끙끙대던 대부분 아이들과 달리 원하는 어떤 것이든 만화 속 캐릭터를 단숨에 그려줬던 중 2 때 친구.

아, 그림 그려 주던 친구는 화장실엘 제대로 한 번이라도 가기나 했을까. 종만 치면 우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으니...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 친구가 전시회나 미술작품 감상할 기회가 주어질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 당시 꽤나 기억 속에 콕 박히듯 강렬했던 모양이다.     


쪼꼬미들이 서 너살 즈음 작대기나 동글뱅이 하나 그려놓고 자기가 끄적거린 걸 가리키며

“엄마, 아빠, 선새이임”

부를 때면 어린 피카소를 만난 이상 기뻐하고 환호하며 최고라고 외쳐주었더랬다. 


쪼꼬미들 으쓱해하며 좀 전에 그렸던 그림과 비슷하게 그려서 오고. 그만 그려줘도 된다며 정중한 사양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반복 또 반복해 그려올 기세. 오래전 세상 다 가진 듯 상기되어 그림 그려주던 중 2 때 친구 표정과 비슷한 얼굴 보이며.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선 많이 그려보는 것 이상 무엇이 있을까. 안타깝게 나는 미술시간 주어진 시간조차 낑낑 끙끙대고 있었으니. 늘 그림 잘 그리는 이를 지금까지 부러워하고 있다.     


우연히 수채화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사물이든 풍경이든 얼마나 눈여겨보고 들여다봤을까.

 그림 그리는 사람 못지않는 자유로움이 보는 이들도 있다는데, 자유를 누리면서 어딘지 모를 갈증 또한 남았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붙잡아 글로 옮겨 적듯 그 글에 담긴 맘에 어울리는 작대기나 동글뱅이라도 그려 색채 덧입혀 글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나타내고픈데... 많이 아쉬운 거다.    


수채화 속 색채들이 잔상에 남아 머릿속을 맴돌던 어느 날, 사진 속에 담긴 계절이 펼쳐 보이는 향연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과 저녁 무렵 서산으로 쉬러 가는 노을빛, 구름이나 비가 조명이 되고 물감이 되어 색을 입히면 자연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내뿜어 광채 나듯 빛나는 색채감에 난 온몸에 전율이 일렁였다.    


수십 년 동안 자연의 색에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며 그렸을 화가들의 정성과 혼에 견줄 바 아니다.

다만 쪼그리고 엎드려 카메라 속에 자연을 담아온 색으로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아보려 한다. 하늘의 빛과 구름과 비가 도와 담아낼 다채로운 색감이 잘 담기길.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창고 구석탱이 어딘가 처박혀 있을 수채화 도구들을 꺼내들 수 있는 날이 온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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