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휘 Jun 01. 2021

70년대 '삐삐'를 아시나요?

공릉동 경춘 숲길에서 만나다.

나의 자랑거리는 존재 자체.

우리 가족 자랑거리 또한 존재 그 자체.

우리 동네 자랑거리를 말하라 해도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 동네 자랑 하나 하기 위함인데 거창하게 되어버렸다.  

  

3년 전 이 마을로 오게 된 것은 우연이다. 7호선을 따라 울 따닝과 집을 구하러 다니던 중 집값이 우선 맞아야 했고, 다음으로 보게 된 것이 현재 살고 계신 분들의 향기를 눈여겨보았다.

    

어찌 된 게 집의 형태나 위치, 주변 환경 등등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제일 우선순위를 두었다. 집을 보러 가는 도중 중개사님이 말씀하셨다. 대입시를 준비하는 고3 학생과 아빤 건대 교수라는 걸. 네 가족 중 반 이상이 공부와 학문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게 맘에 들었다.    

 

 구경할 집에 도착했을 때 맞이해 주는 아내분도 인상이 좋으셨다. 그렇다면 일단 통과. 어차피 오래는 아니고 잠시 머물 곳이었기에 더 세밀한 부분은 다음 집을 살 때 생각하면 되는 거라 여겼다. 울 따닝은 엄마가 맘에 들어하는 눈치를 채고 가만히 있어 주는 센스.    


집 안은 낡았어도 하늘이 보이는 것이 좋았다. 온갖 참새와 까치, 직박구리 소리 들리고, 창을 통해 보이는 초록 세상과 드넓은 운동장이 숨통을 트이게 할 듯. 그것 외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2년 후 이사 갈 예정이라 그때까지 많이 많이 가까이하며 함께 하기로.    


다름 아닌 앞마당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경춘 숲길. 자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매력덩이. 집 앞에 난 도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바로 이어진 숲길을 잘 느끼지 못했고 한가로이 사람들이 오가고 강아지 산책도 시키는 걸 보면서도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이가 걷기를 시작하더니 좋은 길이 있다며 계속 그곳을 걷는다는 거다. 어느 날 하루 따라나섰다. 휴대폰을 가지고 가면 아무래도 사진을 찍게 되고 두고 가면 발걸음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갈 땐 호주머니 속에 꼭꼭 넣어두었다. 아무래도 걷기 운동한다고 나선 그이에게 흐름만 깨트릴 거 같아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엔 어느 정도 속도가 맞춰졌다. 손이 가요 손이 가~ 호주머니 속에 든 휴대폰을 만지작하다가 차마 꺼내진 못하고. 머릿속으로 찰칵찰칵 찍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구석구석 어디든 모두 모두 담고 싶을 만큼 좋았던 공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삐삐다!!!!”

경춘 숲길의 중간쯤 걷다 저만치 앞서가는 그이에게 들릴 만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으니.

   

그래, 그것은 분명 삐삐였다. 내 나이 열 살쯤 봄이 한창이던 날, 동네 아이들과 들로 산으로 헤매고 다녔다. 남자아이들은 칡이 어떤 것인 줄 알고 캤는지. 씩씩하고 용맹함은 그때 그 시절 어릴 적에 나타나는 남자아이들의 본능이었는지 칡넝쿨을 잘도 찾아내어 뿌리까지 뽑아 올려 질겅질겅 씹게 해 주었다.    

지금 아이들이야 입에 넣어주면 도로 뱉을 맛이겠지만, 먹을 게 별로 없어 뭐라도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꿀맛이었던 시절이었으니.     


그 사이 우리 여자애들은 풀밭에서 삐삐를 뽑고 있었다. 초록 풀숲에서 통통하고 보드라운 솜털 방망이가 들어앉음직한 것을 골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쭈욱 뽑아 올릴 때 나는 소리


“삐삐 삐삐”


우리는 모두 그것을 삐삐라고 불렀다. 한 겹 한 겹 감싸 안고 있는 대나무 죽순 껍질 벗기듯 삐삐의 마지막 속껍질까지 벗겨내면 그 속에 기다란 우유빛깔 솜털 방망이 쏘옥 얼굴을 내민다.     


입 속에 넣어 꼭꼭 씹으면 달짝지근한 단물 나오다가 오래오래 입 안에서 껌 역할을 해주던 삐삐.

반가웠다. 열 살 즈음 우리 동네 아이들이 한꺼번에 주르륵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오며 어린 시절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매일 학교 갔다 오면 가방은 기본으로 던져놓고. 마을 공터에 모여 놀다가 꼬챙이 하나 들고 뒷산도 가고 앞산도 가고. 그 동무들 그 친구들 흰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그이 따라 운동하러 나온 길, 자주 멈춰 서서 기다려야 하니 혼자 후딱 다녀오고픈 맘 누가 모르랴.  

저만치 앞서 걷다 한참 기다려도 따라오지 않는 아이에게

‘너 그렇게 안 따라오면 그냥 두고 간다~~~’ 어름장을 났던 것처럼.  어린 날이 떠오르며 내가 지금 어린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꼴이다.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은 꽃도 봐야 하고 나비도 개미도 어느 하나 넘을 수가 없다. 발걸음을 떼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돌아보고 들여다보고 또 돌아보고 들여다봐도 볼 게 많은.


예전엔 춘천까지 가던 기찻길을 지금은 흔적만 뚜렷이 남은 길을 군데군데 되살려 마을 주민들의 산책로로 잘 조성해 놓은 경춘 숲길에서

어린 날의 삐삐를 마주할 때의 반가움, 기쁨, 환희 그리움 속으로 한 번이라도 다시 돌아간다면. 긴 작대기로 남자애들 자두나무 뚝 쳐주면 치맛자락 펼쳐 들고 단물 줄줄 흘리며 깨진  자두들 주워 담던 그 계집아이의 시절로.    

그 계집애는 아줌마를 너머 할머니가 더 가까운 때로 향해 가고 있으니.

경춘 숲길에서 만난 열 살 계집아이  눈물 날 만큼 정말 반가웠단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메라는 화지, 자연빛은 붓이 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