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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n 18. 2021

연보랏빛 개망초

나! 개망초, 연인을 위한 꽃이고 싶었다.

분명 보랏빛이 감돌았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들여다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유월 중순, 어딜 가나 초절정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개망초. 쭉 이어진 길을 걷다 만나게 된 들꽃이다. 메추리 알보다 더 작은 계란 프라이를 닮은 꽃. 그래 너희는 분명 꽃들이었다.

철부지 풋사랑이 막 생길 즈음, 언덕배기 지천에 널린 꽃가지 툭툭 꺾어 부끄러운 듯 한아름 안겨주고 도망가는 소년이 눈앞에 있는 듯 환하게 웃음 지어본다.


길 위에 나를 올려놓고 걷기 시작한 뒤 만난 들꽃, 들풀들. 건강한 몸과 충만한 마음을 갖기 위함이었다. 걸음이 자꾸 멈춰졌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씨앗 뿌려 애써 가꾼 꽃모종. 옹기종기 꽃밭 만들어 놓은 영역 밖이라면 어디든 내 땅!! 땅땅땅 큰소리치듯 당당하게 쭈욱 뻗어 올린 몸매에 얼굴은 조막만 한 화면에 나온다면 너희 버금갈 이 없을 거 같은 해맑음이다. 얼굴이 작아도 정말 작은 지름 2cm 꽃인 개망초.


눈부셔하며 웃는 너희를 보기 위해 어찌 고개 돌리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눈길 주는 순간, 연보랏빛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젊은 연인들 꽃다발 속에 담긴 보랏빛 꽃들. 꽃말을 들여다보니 너희들도 그 속에 끼이고 싶었던 걸까. 변치 않는 사랑, 영원한 사랑, 진심, 천진난만 약속이나 한 듯 변함없이 오래오래 사랑한다는 말이다.


살아 있는 생물체이니 언제나 움직이고 변할지언정 찌릿찌릿 사랑할 때는 은은하고 달콤한 사랑의 향기를 늘 확인하고픈 확인 도장 꽝 찍고 싶은 증표 같은 것. 꽃다발에 얹어가는 것, 그것에 너희들도 동참하고 싶었던 것이었나.


망초에 ‘개’ 자를 더한 것이다. 망초는 묵정밭에 우거지는 잡풀이라는 의미이다. ‘왜 풀’이란 방언이 있는데 개망초가 일본을 거쳐 도입된 것을 암시한다. 다른 이름은 왜 풀, 개망풀, 여완, 아종소, 넓은 잎 잔대 꽃 등이다. 꽃말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게 해 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식백과에 나온 표현대로 너희에게 들려준다면 마지막 꽃말까지 듣지 않고 많이 서운해할 텐데. 중요한 일이나 말은 끝에 나오니까 끈기와 인내심으로 들어야지 누군가 잡풀이라고 확 뽑아내어 내동댕이치는 순간에도 웃음 잃지 않으며 천년만년 늘 꿋꿋하게 피워낼 듯.



유월, 넓게 번져가는 점유 능력으로 치자면 단연 개망초 따를 자 없고, 뽑아내면 또 피워 올리면 되고 용용 죽겠지? 놀리듯 세력 확장해 나가는 왕성한 생명력을 보노라니 웃음이 난다.



개망초 이름을 처음 듣게 된 때가 식물원에 산림 공부를 한다며 쫓아다닐 때였다. 무더운 여름 들길을 걸으며 그 많은 봄까치 풀, 괭이밥, 꽃마리, 꽃다지, 별꽃, 개망초, 닭의 장풀, 토끼풀 등 고유 이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서어나무, 때죽나무, 물푸레, 참나무 등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는 종류도 많아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도토리 모양도 다르고,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 흐르는 노랫말이 있는 것처럼 도토리만큼이나 나무이름이 정겹게 들린다. 그때 처음 들었던 이름 중 하나도 개망초란 이름이었다. 


살구나 복숭아도 개살구나 개복숭아란 이름이 붙기도 하는데, 살구나 복숭아보다 맛이 시고 떫거나 못난 이름으로 많이 불린다고 한다. 개망초도 그런 류인 거 같은데, 개살구나 개복숭아랑 달리 망초는 구별이 잘 되지 않았다.


그 개망초를 가까이 무심히 보던 어느 날, 연보랏빛이 감도는 걸 최근에 보게 된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건 이전과 다르리라.]

유홍준 님의 유명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요즘 들꽃, 풀꽃에 빠져 유심히 들여다보던 나날이 사랑을 불러들인 거.


꽃은 들여다 볼수록 그 어떤 미술재료의 색감으론 표현해 내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든다.

그 많고 많은 꽃잎의 색이 3가지 색소에 의해 좌지우지한다는 걸 어느 책에서 본 후 더 자세히 보았다. 


첫 번째, 안토시안 종류  빨간, 파란, 보라색. 색소가 짙으면 빨간 꽃이 되고, 옅으면 분홍 꽃이 된다는 거다. 파란색 꽃들도 많은데, 파란 색소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은 점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과학의 힘을 빌려 검증을 하는데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


두 번째 카로틴 종류. 이 색소가 있으면 오렌지색이나 진한 노란색을 띤다고 한다.


세 번째 플라본 종류. 이 색소는 거의 모든 꽃에 들어있는 옅은 노란색. 이 색소는 자외선을 잘 흡수하는 특징이 있단다. 


우리에게 보여주는 수많은 꽃 색깔은 이 3가지 색이 서로 섞여서 빚어내는 것이고, 빛에 따라, 시간에 따라, 흙의 성질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는 거. 


상상에 과학의 힘이 더 얹어지니 생각이 더 풍성해지는 듯하다.


사람들이 멜라닌 색소에 의해 피부색이 다른 것처럼 꽃의 피부색에 해당하는 꽃잎들도 색소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라니.


보랏빛을 띤 개망초 연인을 위한 꽃다발 속에 끼이고 싶은 줄 알았더만 이런 이유였던 걸까.

안토시안 색소, 너 어디를 통해 들어간 거니. 빛이니, 시간이니, 흙의 성질이니?


뭐든 어떠랴! 충분히 해맑고 그 어떤 꽃보다 화사하고 밝으며 말간 기운 가득 주는 꽃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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