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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n 20. 2021

호박 예찬

소중함을 아는 이에게 소중하게 다가오렴.

빈주먹을 꽉 쥐면 쫘악  펼친 손보다 불끈 의지라도 든 것처럼. 벽이나 담이 있다는 건 그 속에 마구 밟히거나 함부로 다루면 안 될 무언가가 있을 경우가 다.


동네 한 바퀴 돌 때면 꼭 들여다보게 되는 담벼락이 있는 거다.

역시 그 속엔 어린 생명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더니 한창 열매를 매달고 익히는 중.


아파트가 빙 둘러 있는 속에 어깨 높이 빨간 벽돌담 너머 자유로이 들여다볼 공터가 있고,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생명이 움트는 즐거움을 엿보는 건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 속엔 여러 채소들이 자라지만, 나의 눈길과 관심을 끄는 건 단연코 호박.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한 호박사랑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 주말농장인 텃밭에도 누렁이 호박을 심어줄 것을 그이한테  부탁하였었다. 애호박과는 모양이 다르고 가만히 두게 되면 누렇게 익어 호박죽도 쑤어 먹을 수 있지만, 누렁이 호박 속에 한아름의 복이 들어있을 거 같은.


요리 못하던 내가 우리 애들 어릴 때 얻어먹기만 하다가 유일하게  이웃 절친들께 해 줄 수 있는 건 호박죽.  한 솥 끓여 나눠 먹던 때가 그리운 것도 한몫했을 테다.


이번 주말 농장 갔을 땐 옥수수 옆에 심어놓은 호박들의 전진이 눈에 띄었다. 누가 호박꽃을 못난이 꽃이라고 했던가. 푸짐하고 넉넉함에 폭 안기고 싶을 만큼 왕별 닮은 진노랑색의 호박꽃.


아침햇살을 받아 활짝 펴 보이니 꿀벌들이 윙윙 모여들어 뽀뽀 쪽쪽해 주느라 바쁘다 바뻐.

사랑의 꿀은 덤으로 얻을 수 있을 테고.


꿀벌들의 뽀뽀받은 호박꽃 토실토실 호박으로 무르익고 뽀뽀 못 받은 호박꽃의 열매는 맺히다가 시들해서 떨어져 버린다니. 사랑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 소중한 마법의 묘약 같은 거. 종족 번식을 위해서도 꼭 치러할 의식 중의 하나인 거다.


호박! 호박 앞에 붙은 이름에 따라 다른 모양의 호박이 열리고 있다. 애호박, 맷돌호박, 단호박, 럭비공(내 맘대로 지음) 호박 등.


애호박! 마트에서 파는 딱 그 크기일 때 따줘야 한다. 마트의 진열된 꽉 쬐는 비닐 코르셋 같은 옷을 입히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따야 할 시기를 놓치면 거인 호박같이 뻥튀기되어 맛도 없어지고 거인 호박으로 죽 쑤어 먹어도 맛이 없을 거 같다.


늙은 호박, 요즘은 맷돌호박이라고 불리던데, 우리 텃밭의 품목에 넣어 키워주길 부탁하기 잘했다. 맷돌 호박 처음 심다 보니 울타리 만들어 줄 생각까진 못한 거다.


땅을 기어가듯 한 주 지날 때마다 뻗어가는 속도가 어마 무시하다. 끝없이 뻗치는 그 줄기 꼭대기 부분 잘못하여 밟기라도 할라치면 참 미안하고 안타깝다.


동네에서 만난 맷돌 호박! 줄기가 앞으로 뻗어나갈 것을 예상한 듯. 땅 밑 사다리부터 시작하여 둥그런 호박이 열렸을 때 흙 묻지 않고 자리 잡고 앉을 수 있는 창고 지붕까지 기다리고 있는 곳엔 어떤 호박들이 열릴지 기대된다.


텃밭 한 바퀴 돌다 보니 럭비공(내 맘대로 지음) 호박 모양도 보인다. 마트나 시장 가면 참 예쁜 타원형 호박이 있는 걸 보긴 해도 사 보진 않았는데, 맛은 어떨까나.


나 어렸을 적 마당 있는 담벼락에도 이 맘 때쯤 호박넝쿨이 벽을 타고 오르며 창고 지붕에 잎과 줄기가 소복이 모였다. 우리 소꿉친구들과 꼬불꼬불 덩굴손이 라면 닮았다며 뜯어내어 소꿉놀이에 쓰곤 했다. 태풍, 강풍, 비바람도 꿋꿋이 버텨 낼 지지대를 뜯어내 버렸으니 얼마나 앞이 막막하고 흔들거렸을지 그땐 몰랐다. 자연 속의 생물체는 아무리 작은 거라도 사소한 건 없는 것인데... 어릴 적 만났던 덩굴손 많이 미안하구나.


지금엔 허공 향해 지지대 찾는 시늉이 느껴지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 놓고.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면 가만히 두기도 한다.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더 좋은 나와 달리 우리 집 그이와 따닝은 먹는 즐거움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호박나물, 호박 부침개, 호박 된장찌개 호박이 들어가는 거라면 뭐든 좋아하니.


한 때 호박맛을 잘 모르는 내가 놀렸더랬다.

“동족 만난 반가움이 있느냐며.”

못난이라고 돌려 말한 건데, 호박의 진가를 모르고 한 말이었다. 꽃, 이파리, 열매 어느 하나 버릴 거 없이 매력적인 너를 몰라보고 한 말이었다.


호박! 세상의 모든 호박들이여!! 소중함을 아는 사람에게 소중하게 다가 오려 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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