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때문에, 잠 덕분에!'

by 서비휘

밤 꼴딱 새는 걸 밥 먹듯 하는 사람도 봤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어쩌다 밤새워 놀거나 중요한 시험 공부하느라 그들처럼 흉내라도 내보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길 위에 나서면 노래진 하늘이 땅에 붙었다 파란 땅은 하늘에 붙어 있는

희한한 장면과 마주한다.

그 다음 날까지 맥을 못 추고 비실거렸던 나는 그들과 태생이 다르고 종족도 다르다고 여겼다.

그 후 까만 밤과 함께 꼴딱 새는 일은 엄두를 내지 않았다.


작년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위해 매달 모의고사든 실제시험을 앞 둔 날이든

3일을 헤맬 것이 분명하기에 몇 번의 유혹이 있었지만, 날 밤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한 여름을 지나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몸 상태가 심상찮다며 링겔을 너도나도 맞으러 갔다. 이번에는 주사바늘이 무서워 따라나서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너도 너도 그이들도 링겔의 효능에 대한 체험 단들처럼

정신 집중과 몰입력의 특효 처방처럼 얘기하는 바람에 큰 맘 잡숩고 따라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던가. 내 앞사람까지 맞출 한 병 밖에 없다는 거다.

아쉬움보다는 휴유! 그 뒤에도 나는 링겔을 맞지 못했다.

주사바늘이 무서워서. 대신 밤잠을 충분히 잤으면서 중간 중간 졸기도 쪽잠도 자야 했다.

그랬던 내가 아이를 키울 때는 그걸 아예 생각지 않고 범했던 우가 많았다.


애들이 집 공기보다 바깥 콧바람 쐬기를 좋아하던 시절이다.

“다른 가족은 주마다 애들을 들쳐 업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콧바람 쐬러 나가는데,

우린 맨날 집 안에 틀어 박혀 이게 뭐람.”

들으라고 큰 소리로 중얼중얼 거리며 우당탕탕 청소기도 설거지도 했다.

소파랑 잠시라도 떨어지면 무슨 큰일이 생기는 마냥 소파를 부여잡고 있는

그 꼴이 얼마나 뵈기 싫던지.....

“멀리는 못가도 동네 놀이터라도 데리고 가서 놀아야 하지 않아요?”

TV보며 소파 부여잡고 자다가 깨다가 하는 그이가 얄밉고 보기 싫어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따따뿌따 쏘아대었다.


그 소리 듣기 싫어 불만 가득한 표정 앞세우고 마지못해 두 애들을 데리고 나가는 뒷모습에 발로 콱 차버리고 싶었다. 난 잠시 한 숨 돌리고, 애들이 늘어놓은 장난감 제자리 하나 놓이지 않은 물건들

정리타임 가졌겠지.

아빠랑 놀아본 애들은 신나지도 재밌지도 않다는 걸 알아버렸나(?)

소파 사랑 가득한 아빠랑 함께 있는 모습 보며 같이 놀자 해도 재미없겠지 싶었는지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즐겁단다.

자발성이 100% 빠진 활동은

모두를 지치고 힘 빠지게 한다는 걸 그 땐 몰랐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회사 생활이 몸에 익었는지

아이들과 놀자며 화해의 손을 내밀었을 땐, 때는 이미 늦었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시간이 훨씬 재밌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휴일이면 아이들과 배드민턴도, 캐치볼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나이라

글러버와 방망이도 사놓고 기다리며

희망에 부푼 꿈은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바람이었던 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잠을 잠스럽게 자지 못하고

늘 피곤에 쩔어 있는 그이는 보이지 않고, 다른 집 아빠처럼,

다정하게 더 친밀하게 할 수 없냐고 원망지수만 높였구나 싶다.


각자의 평화로운 시간, 아들, 딸들은 맘 맞는 친구들과 지내면서 하하호호 깔깔대며

웃었을 테고, 난 주말마다 좋은 강좌나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그이는 집이나 영화관에서 영상미를 즐겼는데, 중국 무술 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머지 장르 또한 가리지 않고 영화라고 생겨 먹은 것은 거의 봤을 정도로 영화 광팬이다.


큰 딸아이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잠 때문에의 구박이 다시 시작되었다.

학교 갈 시간 촉박하여 파닥거릴 것이 분명한데,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다.

‘야행성이 뭐에요, 그런 말도 있나요?’

할 정도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랑곳없다.


공부 시간 확보가 많지 않을 거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따발총처럼 말 총알이 따따부따 잘도 날아간다.

마구 쏘아대는 말 총알을 피할 생각 없는 건지

꿈쩍 않는 아이의 행동은 여고생일 때 절정에 다다랐다.


특단 책이 필요했다.

그냥 놔두면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이 날 것 같았으니....

그 즈음,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한방에 깨울 수 있는 비법을 전수 받았다.


말 총알 쓰지 않고 우아하게 이름 하여 분무기 물총이라!

두세 번 부르다다 반응 없으면 내 출근길 바쁘다는 핑계로 곧바로

“뿌우뿌우욱~뿌우욱!!”

“아이 차가!! 엄마마아~~~~~~~~~~~~~~~~~~~~~~~~~~~~~~~~~~~~~~!”

떠나갈 듯 소리 지르며 짜증을 내고. 대화는 실종됐지만,

손쉬운 방법으로 쉽게 깨우는 아침이라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지 싶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면서.


잊고 있었다. 아니 몰랐다.

그 때는 이 얼마나 무식한 엄마였던가를.


작년 공인중개사 공부를 한답시고 벌여놓긴 했는데,

오도가도 못하게 막다른 코너에 몰려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자니 앞이 안 보이고, 뒤돌아서 그냥 나오자니

아이들이 두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날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것 봐, 엄마 공부하는 거 맘만 먹으면 맨날 뚝딱 다 되는 듯

성적 금방금방 오를 거 같지?’

‘어무이도 해보니 쉽지 않죠?’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있었으니....

시도 때도 없이 졸고 또한 잠이 많아도 너무 많다며

한 때 우아하다고 생각했던 그 분무기 물총으로 뿌려주겠다는 거다.

“엄마도 그 분무기 물총 뿌려야겠다!”

한 방에 잠이 확 달아나고 깰 수 있을 거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며.


단숨에 거절했다. 알아서 한다고. 그딴 거 필요 없다고.

“그 때 얼마나 짜증나고 엄마가 싫었는지 알아?”

왜 안 그랬을까. 뭐든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아들 딸 맘조차도 모르는 거다.

미안하다고. 정말 많이 미안하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늦은 나이에 수험 공부라도 하는 바람에 알게 됐지,

안 그랬으면 뭘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을 거라며 딸에게 용서를 구했다.

"우리 엄마 나이에 공부한다고 맘 먹은 것만도 대단해서 내가 봐준다."


머리만 갖다 대는 건 당연하고, 앉아서도 졸 수 있는 내가

작년 공부 중에 딱 한 번 밤잠을 못자고 뒤척였다.

같이 공부하는 동생 주희가

"언니, 난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낼 어떤 어떤 공부를 해야 할 건지 미리 생각하면서

머릿 속으로 싹 그림을 그려놓고 자."

사실 그 말을 들으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머리만 갖다대면 자는 내가 속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 날밤 나도 누워서 낼 공부할 것을 이것 저것 떠올렸나 보다.

그러다가 잠이 들 시간을 놓쳐버렸다.


밤이 깊을수록 더 말똥해지는 정신.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라

일어나서 꼼지락 거리거나 공부를 한답시고 다시 책을 펼 수도 없었다.

3~4일 공부할 분량이 강제중단이 예고되기에 어떻게든 잠들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러면 그럴수록 선명해지고 더 맑아지는 정신머리라니.

이리 돌아눕고 저리 돌아눕기를 반복하다가 동틀 시간이 가까웠다.


뒷마당이 대학교 운동장이고, 앞 베란다 쪽엔 학교 앞 분위기 좋은 술집이줄지어 있다.

젊은 새내기 대학생들의 술기운과 함께 밤샘 토론이 늘 끊이지 않았던 때였지.

그 모든 것이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한 밤 중 잠이 깨어 화장실 갈 때면

‘거 참, 젊음이 좋다 좋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부러움 가득안고 다시 잠들곤 했었다.


잠을 뒤척였던 그 밤은 어찌나 그 소리 또한 선명해서 귀를 틀어막고

몸부림을 치게 하는 소음으로 들리는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저리 가서 떠들 수 없냐고 내쫓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러웠던 청춘들만의 특권의 소리가

그 때문에 잠드는 게 힘들고 거슬리는 소리로 돌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지나고 보니 모든 문제는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아는 순간이었다.


급기야는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정신병자가 된다는 것은 특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밤 또 다음 다음 밤까지 잠들지 못한다면 나 일수 있겠구나!’

지금까지 식구들에게 잠 때문에 안 놀아줬고, 잠 때문에 공부를 못했고,

잠 때문에 때문에 뭐든 못하고 못했다고 생각한 어리석음을 어찌할꼬.


머리만 갖다 대면 잘 잘 수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시간이었던 것을.

엎드렸다, 낮게 더 낮게,

“잠님, 제발 잠 좀 자게 해 주세요!

앞으로 ‘잠 때문에’는 없고 '잠 덕분에'만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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