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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n 19. 2021

 토마스 타반 아콧 전공의

톤즈의  후예여!! 큰 꿈을 이루소서.

“어어~ 나 저분 아는 사람인데...”

어머님이 보내주신 감자를 쪄 한 김 날리며 먹을 준비태세를 갖추고 tv를 켰다. 유 퀴즈 온 더블록 방송 중이었는데, 낯익은 사람이 나온 것이다.


5월 중순 배꼽 탈장과 그 외 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했었다. 지금이야 다 나아 찬물이든 따뜻한 물속에도 몸을 담글 정도로 회복이 되었지만, 한 달 전에는 세상 큰 짐 한아름 얹은 듯 맘이 무거울 때였다.


코로나로 보호자도 한 사람만  곁을  지킬 수  있고, 면회는 일절 안 되는 상황에서 검사 완료 72시간이 지나면 또 검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자 수술 전날엔 혼자 입원을 했어야 했다. 수술 전엔 그래도  멀쩡했으니까.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맘을 진정시키고자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 때. 외래 진료 시 보지 못했던 레지던트 의사 선생님 두 분이 체크하러 병실로 들어오셨다.


젊은 남자 선생님이 머리를 질끈 묶은 것도 낯익지 않은데, 그 옆에 서서 지켜보고 계신 선생님도 많이 낯설었다. 피부색이 까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더 놀라워 눈길이 갔다. 수술할 부위가 어딘지 물어보고 사인 펜으로 웃옷을 걷어올린 배에다 표시를 하는데, 순간 움찔거려졌다. 언어가 서툴 텐데, 소통은 제대로 되는 걸까. 직접 수술하지 않더라도 도움을 줘야 할 텐데, 못 알아듣는 말이 있으면  어떡하지? 뭐 그런 걱정을 했더랬다.


직접  수술하실 교수님이 계시고, 머리 묶은 남자 선생님이 계시고, 외쿡 선생님은 참관하시며 배우시는 분이실 테지. 잠깐 뵈었지만, 그만큼 눈에 들어올 정도로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고.


다음 날 아침, 수술이 오후 시간에 잡혔다며 아침 일찍 담당교수님과 어제 들리셨던 두 분 선생님도 함께 살펴보러 오셨다. 간밤의 몸 상태와 수술부위 다시 한번 체크하시고 좀 있다 수술 때 뵙자며 다들 나가셨다.


오후 12시 30분 수술 준비를 하기 위해 휠체어에 뭄을 싣고 중앙 수술실을 향하였다. 수술 때는 마취과 선생님들만 잠깐 뵈었을 뿐 전신마취 후 진행될 땐 누가 어떤 수술을 하셨는지 알지 못한 채

“환자분 정신 차려 보세요.”

누군가 큰 소리로 깨우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드는 동안 수술실 어딘가 머무르며 온전히 깬 상태로 돌아오는 걸 확인하고서 병실로 되돌려 보내주었다.



 수술 전 날은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 휴게실 갈 일도 없었다. 수술 후 화장실에 들렀다 목이 말라 휴게실 갔을  눈에 띄는 벽보를 보고 많이 놀랐다.


어제 오후와 아침시간 들리셨던  외쿡 의사 선생님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붙어있는 것이다.


울지 마 톤즈의 후예

토마스 타반 아콧 전공의를 소개합니다.로 시작된 문구로 시작된 글에는 남수단 국민의 치료자이자 스승이었던 고(故) 이태석 신부


그리고 그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한 소년은

이태석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마침내 의사가 되었습니다.


탈장, 맹장, 외상 환자가 많지만

응급수술을 받지 못해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은 남수단 톤즈 국민을 위해

외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토마스 타반 아콧


그가 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어

남수단 국민을 치료하기 위해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외과에서 전공의 수련 중이니

따뜻하게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그걸 읽고 나니 그 선생님에 대한 잠깐이나마 서툴고 믿음직하지 못한 건 아닐까 생각했던 것마저 미안할 정도.

진정한 의사 선생님이고 한국어를 배워 의사 국가고시 통과할 정도의 의지라면 많은 사람을 살릴 의사 선생님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잠깐 동안이나마 의심의 눈초리로 본 자신이 참 못났다는 생각에 마주치면 인사라도 정중히 해야지 했는데, 병실에 들어와도 담당교수님 뒤편에 서 계셨기에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다.


그런데, 그분을 유 퀴즈 프로그램의 화면에서 보게 된 것이다. 남수단으로 가서 팔방미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헌신과 봉사로 많은 사람을 살린 이태석 신부님을 보며 의사의 길로 걷겠다는 어린 소년의 결심과 신부님의 권유로 한국에 와서 의사 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고 교육 시스템도 다른 나라에 와서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3~4년을 하루 3시간 자며 공부하셨다는 토마스 선생님. 한국인보다 100배 넘는 시간 공부를 하고 또 했다며.

학교를 졸업할 때 학사모를 부모님께 씌운다는 전래에 따라


“이태석 신부님이 아버지니까 학사모 씌워 드리세요.”


부모님만큼 감사했던 이태석 신부님의 흉상에 학사모를 씌우고 절을 하며 펑펑 운 이야기를 할 땐 나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남수단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의사의 꿈을 가졌던 어린 소년 토마스. 고국의 의엿한 학교 후배로 공부해 낸 걸 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시고 대견해하셨을지. 자신이 봉사했던 나라로 되돌아가 그동안 어렵고 힘들게 공부한 걸 많은 생명 살리는데, 힘을 보태게 될 거란 걸 아신다면.


토마스가 기억하는 이태석 신부님이 의사로 진료를 할 때 인상 깊었던 장면을 얘기할 때 얼마 전 수술한 환자여서 그런지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무리 많이 아픈 환자가 와도 바로 진료하기보다 환자의 마음을 살피고 분위기를 살펴 마음을 읽어준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굳었던 표정이 진료하고 나갈 땐 웃으며 나가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며 그런 의사가 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한다는 거.


한국과 달리  맹장이나 탈장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기 위해 외과를 지원했으며, 공부가 많이 되고 나면 남수단으로 되돌아가 의료시설이 열악한 사람들을 위하여 의료 활동을 할 거라는 큰 포부 꼭 이루실 거 같은 믿음이 팍팍 생겼다.


Q. 무엇이든  심으면 자라나는 만 평의 밭,

거기에 어떤 씨앗을 심고 심으세요? 질문이 이어진다.

토마스는 병원 씨앗을 심고 싶으시단다. 몇 발자국만 가면 병원이 있는 한국과 달리 남수단엔 병원이 많지 않다는 거다.


이태석 신부님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린 제자 토마스가 신부님의 권유로 한국에 와 의사고시 패스하고 전공의 과정 공부 중인 토마스 타반 아콧 선생님.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며 실천해 나가시려는 모습. 정말 멋져요.


당신의 큰 꿈 이루어 많은 생명을 존중하고 살리는데, 큰 힘이 될 것임을.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맘이 있기에 그 모든 것이 가능할 거라 봅니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수련 중인 토마스 타반 아콧 선생님의 큰 꿈  꼭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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