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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n 08. 2021

안다는 건  상처를 만들고, 치유해 나가는 일

오순도순 사는 일만 남은 사람.

안다는 것은 상처를 만드는 일이고, 더 깊이 안다는 건 아픈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일이다.     


그녀는 얘기 중에 울컥하는지 눈시울이  자주 빨개지곤 했다. 마주 앉은자리를 옮겨 작은 내 품이라도 내주어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열린 공간은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의 물기마저 빨리 마르게 하는 증발의 힘이 있어 가만히 줄줄 흐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거.    


몇 년 전 쪼꼬미들과 지내던 시절, 그녀는 바로 맞은편 교실의 6세 반 담임이었다. 분명 결혼했다고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마 살지 못하고 헤어졌다는 얘기를  힘겹게 덧붙였다.

그런 얘기까지 해도 그걸 빌미 삼아 뒷말까지 이어지지 않으리란 걸 알기라도 한 듯.   

 

그렇게 홀로 지내던 중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고 뜨겁게 사랑을 이어가던 중 하늘이 무너지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대 초 불꽃같은 반짝 사랑으로 혼자된 이혼남으로 알았던 그 남자에게 초등생 남매가 할머니 댁에서 커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휘청했을 터.

말하기도  전  무거움이 전해졌다.


재혼까지 생각했던 게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은 본인이 아니고서야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가족이 된다는 건 둘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그녀 부모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 이 세상 그 누구든 아이 낳지 않은 딸애가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애 둘의 엄마가 된다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아이들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부르게 안 할 수도, 아무렇지 않게 부르게 할 수도.

듣기만 해도 막막하고 먹먹한데...    


그 당시 그런 저런 이유들로 여러 번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다 끌어안기로 했다는 마무리 얘기를 해주었다. 다 큰 성인이었고, 선택 또한 본인이 했으므로 책임감을 갖고 잘 살아보겠다고.    


잘 결정했고 잘한 일이라고 마냥 축하를 할 수도, 잘 못한 선택이니 그만두라고 잡아당길 수 없는 어정쩡한.

어떤 결론이든 그녀가 두 번 다시 사람에게 상처 덜 받으며 잘 살기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바라는 맘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이차가 이모 뻘 정도였으니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물어오고 최선에 가까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많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성심성의껏 문제 해결점에서 가장 지혜롭게. 마음은 한결 가벼운 쪽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해 주려고 했을 테다.     

컴퓨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후다닥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뭐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 굴뚝이었을 테니...   

 

막상 결정했는데, 아이 둘이 초등 고학년 사춘기 돌입해 있고, 새엄마를 받아들이는 것도

엄마라고 불리는 이름도.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선 상황.


말로 전해 듣는 내가 그 속사정을 만 분의 일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때를 떠올리는 듯 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있다.    


그 후 물리적 거리로 우리는 같이 일하는 곳을 떠났다. 어렵고 힘든 순간이 찾아들 때면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해오는 건 잊지 않았다. 언제나 큰 이모처럼 말하고 있고.    


각자 자리에서 맞는 일을 하다 모처럼만에 마주 앉았다. 1년에 한두 번 만남에 계속 연락을 취해서 그런지 오랜만의 만남에도 어색함이 없다. 어제까지 같이 일하던 사이처럼.  

  

그 아이들이 자라서 벌써 고2, 중 3이 되었단다. 고 2 아들은 방황하는 시기가 넘 길었던 게 맘 아프고, 작은 애가 딸아인데, 하나고나 이대부고를 가고 싶어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주고 끊임없이 찾아보고 관심 가지는 게 넘 고맙다며. 딸 자랑이 마구 하고 싶은 눈치였다.    


완성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해 아이들은 친할머니 댁을 오가며 조율을 해 왔었고, 그게 지금은 그렇게 미안하고. 친정부모님은 아직 아이들을 마주할 용기까지는 내지 못하시는 게 느껴진단다. 밑반찬이나 먹거리를 갖다주려 오셔서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면 짐을 얼른 챙겨 나가신다는 거다.

 큰 아이들이 불편해 할까봐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을 용기도   아직 못 내시는 듯.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맘이 넘 아프 아리다고


그 주변 사람들을 이해시키며 엄마 품으로 모두를 끌어안고  삶의 미로를 찾아가는 그녀 모습이 우람해 보이기까지 하다.  

  

“제게 있어 오늘 이 시간이 정말 유의미한 시간이었어요.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좋아요. 제가 중심을 잡고 단단한 저를 세우는데 넘 넘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나보다.

누군가에게  나도 이런 얘길 듣는 걸 보면.    


모호하고 불확실하여 앞이 캄캄하던 시절 속에서도 미친 듯이 일했단다. 밤낮없이 남편과 하는 사업 잘 일구어 현금 마련한 돈으로 래미안 원베일리에 청약 넣을 거라는데, 꼭 당첨되어 네 가족 오순도순 잘 살았으면.

곧 좋은 소식 전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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