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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l 04. 2021

손수 키운 유기농 채소들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사랑이들!

“아빤, 좋겠다!”

걸쭉한 국물에 푹 익힌 열무김치 내놓은 걸 보더니 밥 먹다 말고 불쑥 내뱉는  따닝 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것도 아닌 밥 먹다 말고 뜬금없이 무신 소린고 싶어 따닝 얼굴을 쳐다봤다.


"이 열무 아빠가 심은 거고, 열무김치는 엄마가 담은 거지?"


아빠의 취미생활 중 하나인 주말농장. 이것저것 농사지은 품목으로 엄마가 요리로 쿵쿵 짝 해주니 아빠가 농사지을 맛이 날 거 같다는 거다.


차로 20~30분 떨어진 농장. 혼자 다니던 걸 시간 맞아 내가 따라나서기 시작한 건 몇 주 되지 않는다. 따라나섰으면 손발 걷어붙이고 일할 자세 취하지 않는다며 도움될 일 찾아주길 원했을 터. 


핑계일 수 있지만, 백 평, 천평, 만평도 아닌 12m2(4평) 정도이니. 혼자 꼼지락꼼지락 해야지 둘이 밭에 얼쩡거리면 부딪힐 게 뻔해 보인다며 이리저리 빠져나온 상태다.


그이는 목표지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주변 기웃거리기 거의 않는다. 앞만 보고 달려간다. 급하게 해결할 일 빼곤 나는 할 일은 조금 뒤에 하면 되지... 궁금한 거 지나치면 끝나버릴 수 있어 그때 아님 어렵겠다 싶어 기웃거리거나 머물고 있으면 여지간해서 열불 안내는 그이의 화딱지 내는 모습을 봐야 한다. 기웃거리고 살펴보는 게 정말 좋은데... 흥칫뽕!!


그런 엄마지만, 아빠가 농사지은 걸 잘 다듬어 알뜰히 반찬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게 또 놀라운가 보다. 애써 농사지은 걸 버리게 되면 아까울 텐데... 나눠주는 것도 잘하는 엄마가 남은 걸 버리지 않고. 요리조리 요리에 사용하는 걸 보니 그럴 땐 아빠가 흐뭇해할 거 같다는 말이었다. 


진해 어머니께서 택배로 보내주신 거나 그이가 농사지은 건 더더욱 버리지를 못하겠다. 식구들 먹을 걸 떠올리며 땀방울로 가꾼 것일 텐데, 어찌 마구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배추나 열무로 김치를 담가 먹으려면 연중행사로 김치 담는 내겐 준비할 게 정말 많다. 엄두가 나지 않을 땐 살짝 데쳐 냉동실에 넣어둔다. 육수 우려내고 된장 풀어 넣어 보글보글 지져내면 한여름 입맛 없을 때 꿀맛이다. 


열무 뿌리 조금 굵은 것도 버리지 못하고 댕강댕강 잘라 놓은 걸 지져낼 때 넣었다. 맛있고 시원한 맛의 기대와 달리 쌉싸름한 게 찌개를 망치는 건 아닌지 잠시 아깝다고 뿌리까지 넣은 걸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히 된장 맛에 파묻혀 열무 뿌리 맛은 온 데 간데 없어져 다행.


손가락 크기 솎아내듯 뽑아냈던 당근 2 뿌리는 점심 겸 간식으로 감자와 호박 부침개에 썰어 넣었다. 당연한 건데, 울 따닝 눈에 알뜰히 쓰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아빠가 애써 가꾼 걸 귀히 여기며 그걸 요리에 요모조모 쓰는 엄마. 쓰다 보니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보일 텐데, 그건 아니고.


돼지 앞다리살로 갖은 양념으로 조물리고 여러 쌈으로 싸먹고, 호박잎은 껍질 벗겨 쪄내고 매운 고추 송송 썰어 양념장 만들고. 간식으로 감자는 그냥 쪄도 포슬포슬한. 저녁상이 푸짐해졌다. 


유기농으로 잘 키운 싱싱한 채소들. 건강한 먹거리를 버리지 않고 요리해서 잘 먹는 일에 조금 다가가는 일. 한 번도 군소리 않고 씨앗, 모종 때부터 열매 맺어 익을 때까지  애쓰는 어머니와 그이에게 보답하는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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