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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l 11. 2021

깡치

보이는 게 전부 아니다.

눈이 실수다. 시력이 아무리 좋다한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거다. 찜기에 호박잎, 감자, 고구마를 찔 때도 손으로 찢어보거나 젓가락으로 꾸욱 찔러봐야 한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거다. 옥수수를 삶을 땐 데일 것을 감수하고라도 한 알 빼먹어봐야 한다. 설익었을 때 이도 저도 아닌 맛을 맛보지 않으려면.


찌거나 삶음에도 눈과 함께 손과 입이 동참해야 하거늘. 무슨 자신감으로  봄부터 키운 키다리 옥수수를 한 점의 의혹 없이 뚝뚝 분지르기부터  했을꼬.


기다려졌다 주말이. 얼른 왔으면 싶었다. 주중에도 당장 텃밭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지난주 감자를 캐며 그이는 담주엔 옥수수를 딸 거라고 했다. 주말농장 4년 차에 접어들고 해마다 옥수수 수확해도 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올해가 기회였다. 직접 따 볼 수 있는.


여러 사람이 가꾸는 천 평 가까이 되는 주말농장. 그이가 모종과 씨를 심어 옥수수에 심혈을 기울인 건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안다.  다른 품종은 몰라도 옥수수만큼은 그이가 키운 게 두 번째라면 서러울 정도. 그 옥수수들 애정과 관심받으며 주욱쭉 뻗어 올리더니 불룩불룩 캥거루 새끼 품듯 둘셋씩 키워냈다.

일주일만 지나면 알이 꽉 찬 보들보들 옥수수 만날 생각에 바삐 달려 가고팠던 거.


도착하자마자 눈이 알려 주는 대로 따기 시작했다. 옥수숫대에 2개~3개 중 가장 큰 놈을 골라 꺼내가듯 당겨댔다. 안 뺏기려는 어미처럼 매달리다 옥수숫대를 부러뜨렸다.  그이도 못 봐 줄테고, 나 스스로 미안해서 서너 개 따고 물러났다.  요령 없이 괜한 옥수숫대만 망쳐놓을 거 같았기에.

남은 녀석들도 커야 하는데. 나머지는 그이 알아서 툭툭 잘도 따냈다. 금방 준비해 간 비닐봉지에 옥수수가 한가득이다.


감자 캔 작은 땅엔 가느다란 실파 모종을 사다 심고, 호박과 당근, 상추와 깻잎, 케일, 가지, 토마토를 거두었다. 그 많은 걸 수확하면서도 옥수수 껍질 벗길 생각에 설레었다. 알록이 옥수수는 한창 자라고 있으니 하얀 속살의 찰옥수수를 만날 생각에 가슴도 벌렁벌렁.


자루 한 가득 한 짐을 안고 텃밭 한쪽 거름 무더기 앞에 둘은 마주 섰다. 옥수수 한 자루마다 감싸 안은 것만큼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겨내기 위하여.


"어머, 어떡해?"

한 자루의 몸체가 다 드러나기 전에 펄썩 주저앉고 싶었다. 은근 불의 뭉근 더위에 삶는 듯 찌는 듯한 더위를 견뎌내게 했어야 했다. 주인장의 성급함에 채 익지도 않은 큰 녀석들을 죄다 따버렸으니.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타 들어가는 듯한 그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맘이 아팠다. 옥수수 2만 원 치 사면  상자 한가득 되겠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고로움이 있었던 걸...

따닝이 오종종 걸어 다닐 때부터 좋아했던 옥수수를 맛 보이기 위해  그 많은 구슬땀을 흘렸는데, 다시 갖다 붙일 수도 없고.


아이들의 이야기책에서 본 동화처럼 벼를 빨리 키우기 위해 손으로 뽑아 올렸다는. 뿌리 근육이 사라진 그 벼들은 한순간에 시들고 만 것처럼. 한 번 부러뜨린 설익은 옥수수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처럼 깁스를 해주는 것이 가능하려나.


농장 주인장께서 나오셔서

“아이쿠 저런, 아까워서 어쩐대나. 여린 옥수수 버리지 말고 푹 삶아서 깡치 째로 드슈. 사람 몸에 얼매나 좋은지 몰라유.”


깡치는 옥수수가 채 여물지 않은 어린 옥수수를 말하는 거 같은데, 뼈째 먹는 생선처럼 옥수수심을 연하니까 통째로 먹으라는 거다. 아깝게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을 알려주셔서 다행이다 싶었다. 모양도 비슷할 대나무 죽순처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되겠다는 상상까지 했다.

현실은 심까지  잘 여물었고, 알만 여물지 못한 거였다. 미리 하나라도 까 봤어야 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았어야 했다.  


요즘같이 하루 열두 번 오락가락하는 장마철에 하늘이 말해주고 있지 않았던가. 앞 발코니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 뒷발코니서 보이는 우람한 산 정상의 바위들도 맑은 날, 구름과 안개 낀 날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것처럼.


눈에 보인다고 해서 때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존재하거나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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