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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Jul 27. 2021

유쾌한 사람의 에너지

오래가는 건전지였다.

아파트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학교 운동장이다. 그런 덕에 단지를 나서면 대학가 상가들이 즐비하다. 대학생들이 주로 이용할 게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맛있는 가게도 많다. 젊은 청춘들이 오가는 대학가의 상가는 새벽이 올 때까지 늘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작년부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대부분 상가들이 한산해졌다. 그럼에도 언제든 살아날 날이 있을 거라 여겨서인지 작은 평수도 권리금이 만만찮다.


얼마 전 이대 앞 사무실 개업식이 있어 갔을 땐 임대문의를 붙이지 않은 곳을 세는 게 빠를 정도로 많은 상가가 나와 있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막막함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우리 동네 아파트 주민들이 부담 없는 가격과 맛집을 이용하고  배달 시켜먹어서인지 학생들이 없는 대학가 상가들이 유지되는 듯 보인다. 학생들이 있을 때와 비교되지  못하겠지만.


저녁 찬거리 고기를 사기 위해 마트를 가던 중 잠시 머물게 하는 가게 앞이 있었다. 땡볕에 내놓은 화분 몇 개가 축 늘어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걷는 걸음도 뒤에서 누군가 잡아끄는 것처럼  전진보다 후퇴, 뛰어가기보다 걷기, 걷기보다 기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지는데, 그들을 보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정말 잘 컸죠?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간답니다.”

가게 안의 주인이 문을 열고 나오며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도 이것보다 많은 화초들 천지예요. 이건 기왓장을 구해다 심은 거예요.”

묻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은 녀석들까지 소개를 시켜주었다.

먹는 가게 앞에 와서 사 먹으러 들어올 생각은 않고 사진만 찍다 가는 사람일 수 있을 텐데...

떨떠름한 표정 짓기는커녕 환한 웃음 지어 보이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 못 하는 식물을 싱싱하게 키울 수 있는 팁까지 알려주시니 맘이 가벼워졌다.


담에 식구들과 이 왕짜장집을 꼭 들려야겠다는 맘까지 들었다. 유쾌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짜장맛은 얼마나 좋을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이 땡볕에 살아내느라 얘네들도 애쓰잖아요. 저 맞은편 꽃가게에서 식물영양제를 사다 한 번씩 주면 잘 자라더라고요. 얼마 안 해요.”


맞은편 꽃가게가 있다는 얘길 듣고 봐도 이 집이 더 화원 같은 느낌은 뭘까. 화분에 쏟은 정성과 손길이 짜장집 사장님께서 꽃 집해도 잘하실 거 같았다.


“꽃집보다 여기가 더 꽃집 같아요. 이다음에 꽃집 하셔도 잘하실 거 같으세요.”

“아휴~ 저는 여기 이 짬뽕집이 좋아요.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사람들과 얘기도 할 수 있고. 저것들은 말을 못 하잖아요. 하하하~”

말씀하시며 크게 웃으셨다.


공기 속으로 퍼지는 웃음 속에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요, 물을 주는 시간, 흙을 매만지며 잎을 다듬고 닦아주는 시간, 영양제를 주는 시간, 그냥 보고 싶을 때 들여다보는 모든 시간들을. 가끔씩 혼잣말로 물어보기도 하는데요, 큰소리로 대답은 한 번쯤 해줬으면 좋겠어요.’

많은 말이 생략된 듯 느껴졌다.


자식 품듯 그들을 보살피는 손길이 참 따스한 사람. 말 못 하는 살아있는 것을 아끼고 보듬는 그 맘이 참 뜨거운 날. 내 맘에도 서서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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