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대추나무에 사랑이 댕글댕글 열렸다.
가늘디가는 줄기 끝에 매달려 지난 태풍 바비, 마이선에
마구 흔들어 대는 대로 몸을 맡기더라.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유연하게 더 낮은 자세로.
내리 꽂힐 듯 무섭게 우르르 쾅쾅대던 천둥번개도 온몸으로
받아내더라.
초록으로 보호색을 띠는 대추알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뻔했다.
바람이 세찰 땐 육덕 찐 내 몸도 휘청이던데,
작은 고놈들이 댕대글 붙어 있는 게 신통방통했다.
이젠 때가 됐나 보다.
밤하늘의 달빛에도 붉게 여문 빛을 보이더라.
대추가 단단히 영근 걸 보니 그분이 생각난다.
집에 도착하니 택배 상자가 그대로 놓여있다.
택배를 주문하는 사람은 울 집에 그이와 딸냄이뿐이다.
뜯지 않고 그대로인 걸 보니 두 사람과 관련이 없나 보다.
그렇다면 내 껀가 본데,
'뭘까?'
보낸 이의 이름을 보자 놀랐다. 좀 아까
대추나무 아래서 그분을 떠올렸는데...
비가 오면 생각나는 게 아니라 대추 보면 생각나는 그 사람.
마음까지 한 발 빠르게 도착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참 좋은 사람으로 남는 건 쉽지 않을 터.
그분은 우리 가족의 좋은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딸아이가 돌 지나기 전이었으니
거의 3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계속되었던 셈.
그 옛날, 우리 가족과 어쩌다 모임이 있을 때면
아내 분께서 동생 가족 대하듯 잘 챙겨주셨다.
나눠 먹을 음식까지 챙겨 오시고, 공장 직원들 손수 밥을 해 주셔서인지
음식 솜씨 좋으셨던 사모님,
큰 가마솥 걸어 놓고 맛난 걸 뚝딱 해 주시기도 했다.
애들이 커가면서 어른들끼리 한 번 보는 것도 어려워졌고,
서울로 이사 오면서 아예 뵙질 못했다.
한두 해 선물이 왔을 땐 그냥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다른 곳에 살아도 해마다 선물은 해를 거르지 않으셨고,
이사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모두가 맘의 작은 선물 하나 받고도 고맙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지 않던가.
이 분은 자그마치 30년 가까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소포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택배로 대추와 함께 맘을 전해 왔다.
그 이가 아는 사람.
업무 차 만났던 사람인 거 같은데, 어려울 때 작은 도움드린 보답을 이렇게 한다는 거다.
작은 제조 공장을 운영하던 그분께 20대 후반의 그이가 도울 일이 무에 그리 컸을까.
그 후로 매년 이렇게 대추 선물을 보내왔던 것이다.
대구 사는 그분께 그 이가 어떤 도움을 드렸는지는 잘 모른다.
잘해드린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으니.
같은 서울 아래 살아도 못 보고 사는 친지, 지인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 첫 번째인 나도 두 번째인 애들도 아닌
대구 어딘가에 살고 계신 그분이 아닐까(?) 생각마저 든다.
자그마치 10년 20년 30년이 다 되어가도 선물을 보내는 그분께
딸아이가 하는 말
“아빠랑 그분은 전생에 연인 사이였지 않았을까?
아빠를 이렇게 아끼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현실에서 가능한 일인지 몰라?”
자기도 직장 생활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기에
생각하면 할수록 그분이 대단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나와 내 아이들은 안다.
아빠를 생각하고 잘 챙겨주는 순서대로 옆자리에 앉아보라 한다면
그 분보다 먼저 앉을 수 없을 거 같다고.
그분만큼 그 이를 알뜰살뜰 생각해서 챙기지 못했고,
앞으로도 자신 없는데, 도전해 볼까?
별걸 다 도전한다 싶겠다.
가족이 무엇인가?
내 옆에 머물고 나도 그 이 옆에 머물기 바라면서
정으로 사랑으로 토닥이고 어루만지며
어제, 오늘, 내일을 잘 살아가는 거.
그랬으면, 그러했으면 참 좋을 일.
오늘 택배 속에 큼지막한 대추가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