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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Aug 13. 2021

삶은 걷기다.

길 위에서

길을 걷다 순간 멈칫했다. 무심코 밟았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은 거다. 발바닥이 평발이지 않고 움푹 파인 것도 땅 위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는 미물을 살려주기 위함이랬나. 밟지 않고 알아차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흙길 있는 곳이 집 근처 있다는 게 이렇게 안온하고 평화가 깃든 곳인지 알기까진 오래 걸렸다. 경춘 숲길을 걷다 보면 서울 종점과 경기도 종점이 만나는 경계점에 이른다. 아스팔트가 놓인 자전거 도로와 철길, 흙길이 공존하는 서울과 달리 경기도는 300미터쯤 되는 곳까지 무슨 이유인지 흙길만 이어진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부턴 아스팔트 도로가 여지없이 놓여있지만 말이다. 그 흙길 위에서 그들을 만난 거다. 하마터면 성스러운 성을 한 순간에 짓밟아 무너뜨리고 말았을 거룩한 성을.


도로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경기도민이 아닌 것에 안도감을 느낀 적이 있다. 무슨 혜택이라도 받은 듯 서울시민이라는 것이 벼랑 끝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마냥 위태위태한 끝 지점이라도 매달린 게 축복이라도 된 듯 휴우 한숨을 내쉬는 모양새까지 취했다.


비포장 도로 위는 서울이 아니기에 발 디디면 안 되는 줄 알고 종점이란 글귀의 바닥 적힌 반환점을 찍고 되돌아오곤 했다. 더 이상 나갔다간 낭떠러지 툭 떨어진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안간힘을 써 댄 거였다.




어느 날, 같이 걷던 지인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점을 지나 좀 더 걸어볼 것을 제안했다. 속으로 했던 생각을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었다. 막상 흙길에 발을 올리고 나니 참 틀 속에 갇혀  꽉  막혀  사람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신선하고  아련한 추억 속의 길이었다. 온통 흙길에 모래와 자갈이 드문드문 보이는 어릴 적 어디서든 걸었던 그 길을. 유통 공장 창고에서 나오는 큰 트럭이 지나갈 때 먼지 폴폴 날려도 좋을  흙으로만 된 길을 얼마 만에 걸어보는 것인가.


맘만 먹으면 매일 걸을 수 있었던 그 길을 이사온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 거였다. 흙길을 찾으러 다녀야 겨우 디뎌볼 수 있는 길인 것을. 시멘트, 아스팔트, 보도블록으로 빼곡히 놓인 길만 걷는 게 익숙하다 보니 휴양림도 아닌 이곳에서 흙길을 걸을 수 있어 좋은데, 멋진 성까지 쌓아놓고 사는 그들을 만난 것이다.


지인 아니었다면 한 길 앞도 내딛지 못해 신세계를 접하지 못했으리. 그 길 위에서 성스럽고 경건함마저 느끼게 하는 성. 다행히 성을 지켜내며 발을 떼 놓았다. 성을 지키고자 병정이 군단을 이뤄 바삐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눈으로 읽었다. 성을 하나 마주하고 났더니 한 둘이 아니다. 곳곳에 수많은 성이 줄 지어 있다. 하필이면 길 한 복판에. 사람들이 오가다 밟기라도 한다면. 한 방에 밟혀 무너지고 말 텐데...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 성을 유지하고 있나 살폈더니 밟힌 발자국이 선명하다. 우왕좌왕 발 동동 구르며 울고 있는 녀석도 분명 있을 텐데, 보이는 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재건에 힘쓰는 듯.

으챠으챠!! 으라차차!!


어릴 적 모래놀이터에 가면 바삐 오가는 큰 개미들을 들여다보는 게 일이었다. 구멍 속에 들어가면 개미집 안을 볼 수 있을까. 꼬챙이를 들고 파헤치면 구멍 속으로 모래가 메워져 더 이상 개미가 오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자기 집을 찾느라 허둥대는 걸 볼 때면 어찌하지 못한 기억이 난다.


다음 날 그 자리엔 여지없이 막혔던 곳의 구멍이 뚫려 있고 개미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다. 괜한 일거리를 만들어준 거 같은 미안함에 집 안이 궁금한 건 여전하지만, 건들지 못하고 요리조리 들여다보기만 했던.


요즘 들어 다시 흙길을 만나면서 쪼그려 앉는 일이 잦아졌다. 성 안에 커다란 먹잇감이 들어있다는 거. 지킬 무언가가 있어 그토록 높다란 성을 쌓았구나. 지렁이도 매미도 자기들보다 덩치로 봐선 몇십 배일 텐데, 그걸 끌고 가기 힘들어서 그 자리에 성을 쌓은 것일까.


개미들 사람들이 사는 삶과 많이 닮아있다는 개미집을 직접 마주할 날이 올 거라 믿으며.

그땐 다양한 사람의 삶을 좀 더 깊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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