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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Aug 29. 2021

'너희들 최고다 최고!!'

누렁이 호박도,  결혼하는 울 따닝의 친구도

여름이가 떠나려 하자 가을이가 살짝 반짝이는 얼굴을 내비쳤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하루 몇 번이고 올려다보곤 했다. 언제 어디서든 고개만 들면 감탄과 경탄을 불러들일 만큼 곱고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졌다.

그 소릴 먹구름이 들었던 게지. 심통을 부린다. 일주일 내내 파란 하늘 한 번 보여주지 않는 게다. 거기다 보슬보슬 비까지 뿌려대니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날이 계속되었다.


지난 주말 농장 갔을 때 보슬비가 내렸고, 다음 날은 큰 비가 내릴 거란 예보로 배추 모종을 심지 않았다. 하루 오고 말겠지 하곤 누렁이 호박도 따오지 않았다. 좀 더 두며 주말마다 오갈 때 보고픈 맘도 있었고, 더 여물며 단물이 바투 스며들기의 바람도 있었다.


호박 모종 심을 때 손을 보태지 않아도 애정을 가지고 커가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봤었다. 요즘 토요 근무도 하지 않으니 주말마다 따라다니며 들여다보니 정이 더 돈독해졌다. 이렇게 긴 시간, 가을 햇살을  만나지 못할 거란 짐작을 못했던 터라 애가 많이 쓰였다. 다 자란 누렁이 호박들이 굽굽하고 축축한 날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지고 뭉개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차 운전이라도 할 줄 알면 휭~ 하니 다녀올 텐데, 기동력이 없으니 시골스런 그곳엘 찾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이 들으라고 중얼중얼거려 보았지만, 미동도 없다. 호박넝쿨이 넘어와 가지, 고추, 토마토를 다 망쳐 놓았다며 투털 대던 사람이었으니. 호박을 구하러 나설 위인이라면 기적이 일어나는 레벨 수준이 될 테니 바랄 걸 바라야지.


걱정 한 아름  안고 찾아간 이번 주말 텃밭이었다. 초입에 있던 맨드라미 꽃의 고혹적인 우아함도 지나치며 우리 밭으로 달려갔다. 누렁이 호박부터 살폈다. 잎사귀로 살짝 가려져 있는 펑퍼짐하고 둥글넓적한 걸 들춰보곤 웃음이 났다.


‘한여름 장대비와 그 뜨겁던 뙤약볕도 뚫고 나온 우리들입니다요!. 이런 간지럼 태우는 보슬비쯤은 사랑입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뜻이지요’라는 듯 태연하게 자리한 모습을 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너희들 정말 최고다, 최고!!’

 그 흔한 나무 울타리 하나 없고, 창고 지붕 하나 없이 오로지 땅바닥만을 바라보며 커온 너희들이 누렁이 호박 그 귀한 몸을 지켜내고 있다니. 텃밭 통틀어 너희들만큼 누렁이 호박의 자태를 뽐내며 자라는 녀석들도 드물어. 사실 이 넓은 텃밭의 호박들 중 단연 누렁이 호박은 너희 들뿐이란다.


두세 달 전 누렁이 호박으로 넘어가려던 찰나인 녀석들을 아무것도 모르고 또옥똑 따지 않았더라면 둥실둥실 완전 누렁이 호박들이 되었겠다. 지금도 충분히 누렁이 호박밭이지만.


솜털 보송보송했던 애기 호박 때부터 하루하루 안간힘으로 누렁이 호박으로 자라온 너희들을 보는 즐거움이 올해 최고 기쁨이었음을.



다른 공간 같은 시간, 고 2 때부터 줄곧 울 따닝의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코로나를 뚫고 둘 만의 사랑터인 보금자리 마련한다는 공식적인 선포 자리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다고.

여고 때 친구 포시즌 네 명의 멤버 중 한 사람.  제2의 울 따닝이라고 할 만큼 따닝이 자주 언급해 우리 가족 모두 더 가깝게 생각하는 친구. 여고 다닐 때 학교 앞에서 만났던 그 어린 모습으로 남았는데, 결혼이라니.

엄마 맘 가득 담아 울 따닝이 알려준 소식통으로 작은 정성을 보냈다. 잘 살겠노라 뜻밖의 선물에 놀라고 감동이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염려되고 걱정됐던 누렁이 호박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익고 여물어 가듯 웃음 가득 말괄량이 여고생이 야무지고 똘똘하게 잘 자란 숙녀가 된 것처럼. 내 맘 니맘 잘 맞춰가며 지혜롭게 잘 살고, 웃음 가득한 알흠다운 가정 일궈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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