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둘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안 들으래야 안 들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울 따닝이 나한테 하는 말을 복사해서 갖다 붙인 듯 하니 귓구멍은 자동으로 더 크게 열리는 듯했다.
엄마와 아빠의 입장 차이로 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엄마 편이었다, 아빠 편으로 언제든 환승 가능한 딸의 시선에서 보면 객관적인 해답이 보이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2~30년 산 부부의 심리적 거리는 멀찍하더라도 물리적 거리는 가깝다 못해 붙어 지내니 더 보이질 않는 건지.
딸은 그나마 물리적이든 심리적 거리가 있는 상태로 보나보다.
그 엄마는 목청 높여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고 행동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딸은 엄마에게 목소리를 좀 낮추라고 꼬집는 듯. 그러면서 그 자리에 없는 아빠 입장을 대변이라도 하듯 열은 올리고 있다. 가끔씩 말이 안 통한다는 듯 한숨도 쉬어가며.
친한 친구한테 가족들 못마땅한 걸 이야기 하지만, 제 얼굴에 침 뱉기 밖에 더 되나 말이다. 이럴 때 딸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엄마의 친구이자 어쩌면 친구보다 더 냉철한 조언과 피드백을 곁들이는 사부 같기도 하다.
한참을 이야기해도 그 엄마 입장을 꺾지 않자 그 딸은 쐐기의 질문을 던진다.
“엄마, 할머니 댁에 정수기 필요하다면 사 줄 거야?”
“정수기 그게 거기서 왜 필요해?”
시골이라 물이 맑으니 필요없다는 듯 단칼에 거절이다.
“그렇다면 외할머니가 필요하다고 하면?”
“사 주겠지. 우리 엄마잖아”
“할머니는 아빠 엄마라고. 아빠 입장에선 똑같은 거야.”
뭔가 하나를 해주더라도 똑같이 해줘야 한다는 딸의 말이었다. 엄마는 시댁은 쪼큼 친정은 맘 내킬 때마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봐선 뭐 그런 논리인 듯.
히야, 스무 살 남짓 넘은 딸인 거 같은데, 말하는 쪽쪽 현명한 말만 하고 있다. 엄마도 들으며 우리 딸 많이 컸구나 하며 더 더 뻗대는 말을 하는 걸까. 아니면 자기 엄마를 더 챙기겠다는 말이었을까. 둘의 대화로 봐선 알쏭달쏭 잘 모르겠다.
지금은 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 아부지한텐 시댁과 똑같이 챙겨드리질 못했다. 그렇다고 시댁을 많이 챙긴 건 아니지만, 친정보단 훨씬 많이 챙긴 듯하다. 집 안 행사나 명절날 이쪽저쪽 다 챙기기엔 빠듯하다 느꼈을 테지.
조금이라도 아끼고 모아서 집도 사야 하고, 아이들 뒷바라지도 해야 했으니. 그럴 땐 엄마, 아부지는 다 이해하실 거야. 친정엔 막내라 내가 아니더라도 언니, 오빠들이 줄지어 있고, 또한 엄마, 아부지를 잘 챙겨드렸으니. 난 작은 소품 정도만 챙겨드려도 감지덕지라고 여기셨을 거라고 짐작만 했다. 시댁은 아들 둘에 맏이다 보니 소홀히 하면 단번에 표시 나 버리니. 더더욱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을 듯싶다.
지금은 양가 통틀어 시엄니만 살아 계시니 어느 쪽을 더 챙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오히려 울 엄니께서 사흘이 멀다 하고 택배로 손수 기르시거나 새벽시장 가서 산 생선을 손질하여 보내시고 계시니 말이다.
울 따닝은 아빠랑 별일 아닌 듯한 일로 말씨름을 할 때면
"엄마, 아빠랑 평생을 살고도 몰라?"
모른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평생 살았다고 그 맘을 다 알아차리고 안다면야.
두 사람의 균형 맞지 않은 시소를 올라탈 때처럼 조금 앞으로 조금 뒤로 맞춰가며 탈 뿐이다. 서로의 맘을 짐작 정도 가능하겠지만, 다 알고 행동하거나 말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훗날, 울 따닝이 결혼하여 시댁과 친정에 챙겨야 할 일로 남편과 다투거나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챙김 받기도 하겠지만, 챙김주는 형편도 좋을 듯 싶은 거다.
울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가정 일궈 잘 살아주는 것만도 고맙구나! 정말 감사하구나! 그런 말이 나오는 삶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