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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Sep 03. 2021

정의는 살아있다.

그 아주머니의 용기가 부러웠다.


시내버스 안이었다. 휴대폰을 잠시 들여다보다 금세 두 눈이 피곤해졌다. 눈을 쉬게 해 준다는 명목으로 두 눈을 감은 채 타고 가다 이내 까무룩 잠까지 든 모양이다.

[덜컹 끼리릭] 급정거를 하는 차의 센 흔들림에 눈을 떴다.


버스정류장 근처였는데, 여러 대의 차가 앞에 있다. 버스정류장에 차를 대기 위해 다가가는 차 앞에 택시가 갑자기 끼어들었나. 놀란 버스 기사님 앞 문을 열어 택시 기사님께 갑자기 끼어들면 어쩌냐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고 문을 닫으셨다.


그것이 잠시 후 일어날 소란스러운 일로 커질 줄이야!

잘 달리고 있는 버스 앞에 아까 그 택시가 멈춰 서 버스를 세우게 했다. 버스 기사님 운전석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게 하곤 다짜고짜 욕을 퍼부으셨다. 자기 잘못 없는데, 왜 앞문을 열어 욕을 하느냐는 것이다.

버스기사님은 그냥 가시라고 손짓을 해 보이셨다. 미안하다고 하기엔 버스 기사님도 잘못이 없다고 여기시는 듯했다. 나이 드신 택시기사님이 온갖 욕을 다 퍼부어도 그냥 가시라는 말만 하셨다.


도로 한복판이라 그런지 일단락되는 듯했다. 승객 보기 민망해하며 한참을 달리는데, 아까 그 택시 기사님  분이 안 풀렸는지 또다시 버스 앞에 택시를 세우더니 차를 멈추게 했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꺼내 버스의 번호판을 사진으로 찍으셨다. 신고하겠다며.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지.”

젊은 버스기사님 혼잣말을 하고 계셨다. 그러고 나선 택시는 휭~하니 가 버린 거 같다.


뒷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던 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들이 꿈인 듯 어벙 벙해하며 앉았다. 나 혼자 타고 있나 싶어 뒤돌아 봤더니 뒷문 내리는 바로 앞에 아주머니 한 분과 둘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의 정적을 깨고 뒷자리 앉으셨던 그 아주머니 버스 기사님께 다가가시더니 쪽지를 건네셨다.

“제가 다 봤어요. 기사님 잘못한 거 하나도 없으세요. 제 전화번호 적어 놨으니 혹시 도움 필요하시다면 연락 주세요.”


순간, 내 앞에 서 계신 그 아주머니가 거대한  푸른 산처럼 느껴졌다. 맘이 찡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버스기사님 말주변도 덜하고 택시기사님이 연세 있으신 분이  욕도  무지  잘 하시던데.


젊으신 분 억울한 일 당하고 맘 상해 기운 쭉 빠져  있는 걸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 거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아무 관련 없는 승객 분의  위로의 말을 듣고 풀 죽었던 모습이 되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정류장에 차를 잠시 세우시더니 내 전화번호도 적어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적어드리면서도 민망했다. 덜컹하기 전까지 졸고 있었으니 말이다.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 처음부터 그 상황을 다 지켜보신 그 아주머니 계시니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선 말을 거둘 수 있을 거 같았다.


곧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어 내가 먼저 내리면서도 그 아주머니의 정의로운 행동이 내 맘을 뜨겁게 했다. 그 아주머니랑 나의 상황이 뒤 바뀌었더라면 나는 과연 전화번호를 기사님께 건네며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구석지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들로 인해 아직 살맛 나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닐는지.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눈물이 날 만큼 두 눈이 시큰거리고 맘이 뜨거워지는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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