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더 높아지고 더 맑아진 가을 하늘에 적힌 초대장이었다. 요 며칠간 가을음악회가 열리고 있으니 나와 보라고. 구름 위에 동동 떠서 우리 발코니 창까지 내려앉은 걸 보고 주말 아침 일찍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나섰다.
1층 통로를 나설 때부터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낮게 낮게 간간이 높은 소리. 소리의 정체는 풀벌레 들일 텐데, 흉내 내기 어렵다. 그들은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다양하고 독특한 소리의 주인공 여치와 베짱이, 귀뚜라미들이다.
꼭꼭 숨어 못 찾을 거라는 걸 아는지 지나가도 노래는 계속된다. 잠시 멈칫하는 녀석도 있는 듯한데, 쉬는 타임이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단원이 얼마나 많은지 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 들어도 되고, 조용히 거닐면서 들어도 되는 드넓은 음악회장은 경춘 숲길로 이어지고 이어진다.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에 풀벌레들의 은은하게 빠져드는 노래를 들으며 어제 받은 메모와 비타 500이 떠올랐다. 일곱 살 친구들과 마음 나누기를 위한 마음의 문을 열고 있을 때, 조용히 건네주고 간.
보이지 않았지만, 내 얼굴 한가득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아차렸다.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한다는 건 한 뼘씩 가까워져 서로를 알아가는 것. 다른 사람 맘을 말랑말랑 반죽하여 상대가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일터에서 서로를 응원해 주는 지원군이 있다는 건 맘이 넓어지고 넉넉한 여유가 생기는 것. 세찬 바람 불어도 끄떡없을 지지대나 버팀목처럼 참 든든하다. 믿고 위로 옆으로 뻗어나가도 되는. 넘실대다 흘러넘쳐도 기분 좋을 기쁨의 물이 가득 차오르는 듯하다.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고선 알고리즘이 선택해 주는 이어지는 유튜브의 같은 곡 비슷한 버전 곡처럼 풀벌레들 노래도 멈추지 않고 가을 소리 다른 버전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노랫소리 들으며 안에서 흩어져 떠도는 생각들 정리할 수 있어 상쾌한 이 아침.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님의 책에 나온 글귀처럼 징그럽고 혐오했던 거미들이 어느 날부터 사랑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엔 편한 일상을 보여준다.
아주 여유롭게 고기 식사와 집 짓는 모습을 내게 통째로 보여주며 놀라거나 도망가는 모습 보이지 않는 거다.
헤치거나 불편함을 주지 않을 거란 걸 어떻게 알아챘지? 눈이 여덟 개라 더 잘 보이고 우리들 못 보는 부분까지 보기 때문인가. 거미도 음악회에 초대되어 노래 들으며 거나한 아침 식사와 집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아침시간이 얼마나 평화롭게 느껴지는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가 입 밖으로 저절로 새 나왔다.
한 바퀴 돌아 나올 때까지 음악회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을이 머무는 동안 음악회는 이어질 테고, 맘을 동글동글하게 맹그는 가을날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높이 느끼는 나날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