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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휘 Sep 23. 2021

속이 꽉 찬 여자 53.9

맘과 몸 무게로 속이 꽉 찬

외출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장신구와 명품백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만남을 가졌던  나이 적은 동생들이 들고 나온 백이랑 지갑, 반지, 목걸이가 명품인지 아닌지 알아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으니 산 적도 가져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등걸이처럼 봇짐 지듯 메고 다니는 가방이 만능이었다. 오늘 같은 날 약속 시간을 잘못 알고 일찍 도착이 되었을 때 근처 중고서점에 들어가 반값에 산 책을 손에 들고 다니는 번잡함이 없다. 가방 속에 집어넣고 짊어지면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명품백이나 장신구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돌고 있는 것일까. 실반지 실 목걸이 하나 끼거나 거는 것도 갑갑해하던 내가 아니던가. 지금보다 젊은 날 그이는 출장비를 아끼고 아껴 진주 목걸이를 사다 주었다. 옷에 딸려 들어갔는지 세탁기에서 쉼 없이 돌아간 진주알이 닳고 닳은 후 사다 주는 사람도 받은 사람도  미안한  맘에 다음을 기약하거나  기대하는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던 거다.


그랬던 내가 지금 반지와 목걸이, 명품 백, 지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걸 장식품으로 하고 나온 동생들이 정말 잘 어울렸기 때문일 테다. 나도 하면 그렇게 보일 거라 생각하는 거지.


사실 외출하기 전부터 평소 잘 입지 않는 원피스를 입었다 벗었다 했다. 따닝은 그게 그거 같은 원피스 둘을 두고 왜 입고 벗기를 반복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시엄니 연세되시는 분들 뽀글 머리 다 비슷해 보이는 것처럼.


잔꽃무늬 원피스의 톤다운을 위해 연보라 조끼를 하나 껴입어  보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닝이 하는 말은


“농사 지으러 가십니까? 꽃무늬 팔 토시 멋있습니다.”


울 따닝은 엄마를 제대로 골려주고 있다. 혼자 입었을 땐 맞춤처럼 잘 맞았다. 달라진 거라곤 따닝의 선두지휘 아래 내가 벗었다 입었다 하는 것이다.


결국 약속시간이 되어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원피스를 입고 나섰다.


79년생 둘과 72년생 한 명 그녀들의 세련됨이 한눈에 읽혔다. 순간 노티와 촌닭, 촌티 나는 키 작은 나이만 더 많은 언니 하나 있을 뿐.

마스크가 얼굴 반 이상을 가려준다는 이유로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라 거무티티한 초라한 몰골을 거울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안 보여도 다 느껴지는 건 뭔 일 이래.


하루 이틀 봐 오던 것이 아니었던 그녀들은 나에 대해 신경 1도 안 쓰고 있다. 나 혼자 그녀들의 전과 다른 여유와 평화로움에 작고 작아져 가고 있는 거다. 셋은 골프까지 치고 있어 최근 근황 이야기, 남편, 아이들 이야기, 정치 이야기, 자연스럽게 최종역인 골프에 이른 거다.


지난봄에 만났던 그녀들이 아니었다. 일 다니며 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거나 커가며 사춘기 겪는 아들들로 살짝 건들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듯. 울분과 화, 분노를 다 쏟아내고 들이부어 내버린 듯 비움, 여유, 평화, 전진, 성장으로 채워나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초등 저학년인 형제들 시아버님이 돌봐주시던 걸  베이비 시터로 바꾸고, 고등 아들 둘은 스스로 결정한 진로를 믿어주고 존중하기로 마음먹고. 중2 아들 용돈만 던져놓다시피 하던 것은 일을 그만두고 아들 곁에서 챙겨준다는 거다. 버는 것이 온전히 버는 것으로 남지 않던 의 빈틈이나 갈라짐을  경험과  현명함을  바탕으로  메워나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동안 말 안 하고 어찌 살았을까 할 정도로 툭툭 터져 나오는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즐겁고 웃음 한 가득.


시아버님과 얽힌 이야기는 요즘 며느리들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시간. 쌍방의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서야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이야기 중에 가장 우스웠던 건 초등 아들 둘을 둔 동생이 몸무게를 재기 위해 저울 위에 올라섰다. 그 옆을 지나가던 초 3 아들이

“속이 꽉 찬 여자 59.9.”

물 한잔 마시면 60킬로 넘을 위기의 순간인데, 아들 말에 웃음이  빵 터졌다는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젊은 동생들이랑 같이 어울리기 위해 명품백이나 지갑, 목걸이, 반지를 걸치거나  든다고 해서 그녀들이 아는 내가 변하는 건 아닐 테다. 명절 후 모임으로 자리매김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에 인품과 성품이 따뜻한 언니로 곁에 있어 주면 그녀들은 나를 불려내줄 것을.


속이 꽉 찬 여자 52.9로 유지나 할까 부다. 명절 때 맛난 음식 많이 먹어 52.9는 애초에 글렀다. 53.9나 되면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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